[공동성명서] 2차 국가폭력, 국가가 나서야 한다
삼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은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가의 적극적인 고문 등 가혹행위를 겪은 과거사 피해자들은 최근 사법부의 역사에 거스르는 판결에 대해 토론회를 통해 분출된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여 아래와 같이 그 입장과 소회를 밝히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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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은 1970년대 대표적인 민주노조운동을 하였던 동일방직노조, 무궁화메리야쓰, 원풍모방 노조 조합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상 재판상화해규정을 적용하여 기각하거나 파기환송을 하였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막을 내린 계기가 되었던 YH사건, 그리고 오종상 긴급조치 제1호 위반 국가배상 청구사건에서도 동일한 쟁점으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에 있다.
또한 현장에서 발견된 혈액형과 피고인의 혈액형이 엄연히 다름을 수사당시에 알았음에도 파출소장 딸을 살해하였다는 혐의를 씌워 15년을 인고의 세월을 지내게 한 이른바 춘천 강간살인 사건이 있었다. 피고인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형사재심 무죄판결과 1심 국가배상인용판결에도 불구하고 형사보상 확정일로부터 6개월, 그리고 10일이 경과하였다면서 시효를 이유로 기각하였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2008. 9. 사법부 60주년 기념사를 통해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따라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미래를 향하여 새로 출발하려면 먼저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도덕적 용기와 자기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재심절차’를 통해 바로 잡아가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조 하에서 2009. 9. 민청학련 재심 무죄, 2011. 6. 30. 울산 보도연맹 판결(대법원 2009다72599) 이래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한 위헌판결 등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전향적 판결에 힘입어 과거사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사법부의 과거사를 향한 반성은 너무 짧았다. 사법부는 과거 국가권력이 위헌적인 긴급조치로 또는 고문과 폭행을 통한 간첩사건을 ‘창작’할 때 이를 묵인․협력한 잘못을 가지고 있다. 보안사가 민간인을 수사하였음에도, 형사소송법이 정한 구금기간을 도과하여 피고인을 체포하고 고문하였음에도 이를 당연시하면서 침묵하고 외면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사법부가 과연 사법적 정의를 지키고자 어떠한 희생과 노력을 하였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16.판결(대법원 2013.5.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에서 피해자들의 입증책임을 강화하고 특별한 규정이 없음에도 갑작스럽게 시효를 6개월+특별한 사정에 의한 3년으로 판시함으로써 퇴행의 전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 재판상 화해규정을 적용하여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기각(2014.3.13.선고 2012다45603판결. 민사 제2부)함으로써 대법원이 과거사 해결의 의지가 없음을 명백히 하였다.
일제 강점기를 논하지 않더라도 4.3제주항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사건, 민청학련 및 긴급조치위반 사건,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등 아직도 입법적으로,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긴급조치, 그리고 재일동포 등 일부 재심사건에서 보여준 법원의 양심어린 사과와 위로, 그리고 무죄판결은 분명 피해자들에게는 그간 30-40년의 세월, 굴곡진 인생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 위로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국가가, 사법부가 이러한 반성적 기조를 뒤엎고 입증책임, 시효, 재판상화해, 지연이자 기산점 등 낡은 형식적 법논리를 통해 과거사해결을 외면하는 것은 분명 2차 국가폭력에 다름 아니다.
현재 피해자가 법원에 그 손해를 구하는 사법적 구제방식은 피해자가 재판과정을 통하여 겪는 기간․경비 등 2차 피해, 그리고 과거사의 온전한 진상규명과 배상, 명예회복이라는 과거사 정의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2차 진화위법과 피해자들을 위한 배상․보상법안을 통해 일괄구제함이 바람직하다. 국회는 과거사가 한때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지켜야할 민주주의, 인권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입법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수개의 진화위법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에서 논의조차 못한 채 잠자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국회인가.
사법부 또한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인권유린, 헌법유린행위에 묵시적, 명시적으로 가담하였음을 반성하고, 낡은 법 논리보다는 보편적 민주주의, 그리고 짓밟힌 인권회복을 위한 고뇌와 실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사법부는 사법부가 겪은 치욕스럽고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될 것을 거듭 촉구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
2014. 5. 21.
긴급조치-재단준비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 정신계승국민연대, 민청학련계승사업회, 4.9통일평화재단, 역사정의실천연대, 올바른과거청산을위한단체협의회(준), 포럼진실과정의,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가나다순)
[최종] 토론회 성명서 1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