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우리는 용산재판을 인정할 수 없다

2009-10-28 203

 

[논 평]


우리는 용산재판을 인정할 수 없다



지난 1월 20일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 중이던 철거민 5명과 이를 진압하던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이른바 ‘용산참사’로 인해 기소된 9명의 철거민들에 대하여 오늘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7형사부(부장판사 한양석)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치상죄 등 기소된 범죄사실 전부를 유죄로 판단하고 7명에 대하여는 징역 6년과 5년의 실형을, 나머지 2명에 대하여는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후 현 정부는 용산철거민들을 도심테러리스트라 비난하며 농성 중인 철거민들이 고의적으로 방화하여 경찰관을 사망하게 한 것으로 몰아붙였다. 검찰 역시 이에 부화뇌동하여 용산철거민들은 대거 구속기소하면서도 공권력을 투입하여 무리한 강제진압을 결정한 경위와 책임의 소재에 관하여는 명료한 해명도 없이, 그리고 삼성 등 건설사와 용산구청, 용산경찰서 등의 유착관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수사를 마무리 짓고 말았다. 논란이 일던 ‘경찰과 철거용역의 합동작전’에 대하여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방송사가 보도를 하자 그제야 몇몇 용역직원들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공정한 수사’의 시늉만 내었을 뿐이다.


 그 뿐인가. 기소된 용산철거민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자 검찰은 이를 무산시키려고 의도적으로 61명의 증인을 신청하는가 하면 변호인들이 수사기록의 완전한 공개와 등사를 요구하는데도 이를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법원이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허용하라고 명령하였음에도 ‘조사받은 경찰들의 사생활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말도 되지 않은 이유로 그 명령의 이행을 거부하였다.


 검찰이 이처럼 공익의 대표자라기보다는 특정한 세력의 편에 서서 한쪽 편들기를 하는 순간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을 기본전제로 하는 이 재판의 기본은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 없다.


 용산사건을 담당한 법원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모름지기 형사재판은 검사의 주장처럼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는가라는 실체적 진실을 밝혀 그에 따라 국가의 형벌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런 형사재판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재판절차는 엄격하게 공정하여야 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에 맞서 피고인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함은 우리 형사사법의 기본이자 원칙이다.


 그러나 용산사건의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그렇게도 원한 국민참여재판을 성사하기 위하여 검찰의 무리한 증인신청을 제어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보여주지 않은 채 이를 무산시켰고, 더 나아가 검찰이 공개를 거부한 수사기록의 공개를 공개하여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제공하라고 스스로 명령하고서도 이를 거부하는 검찰에 대하여 어떠한 불이익이나 사법적인 제재를 가한 바 없다.


 일찍이 우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변호인들이 원하는 수사기록을 검토할 수 있어야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고 검사는 수사기록 중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고 분명하게 판시하였고, 이를 들어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은 검찰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3,000쪽 가량의 수사기록 없이는 공정한 재판이 불가능하다며 최소한 검찰이 수사기록을 공개할 때까지 재판을 잠정 정지함으로써 검찰의 적극적인 응답을 유도해 달라고 재판부에 간청도 해보고, 검찰이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재판부가 형사소송법에 따라 압수수색이라도 해서 이를 피고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촉구도 해 보았지만, 재판부는 ‘이미 입장을 밝혔으니 더 이상 논하지 말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향한 의지가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심지어 수사기록 없이는 더 이상 피고인들을 위해 변론하기 어렵다는 변호인들에게 ‘변론할 수 없다면 퇴정하라’고 겁박하기까지 하였다. 그와 같은 재판을 두고 누가 공정하다 할 것이며 오늘 내린 재판부의 판단과 선고를 누가 순순히 인정하고 신뢰할 것인가.


 오늘 용산사건의 재판결과는 이처럼 피고인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자료는 모조리 감춰둔 채 일사천리로 진행된 재판이 사법의 치욕이며 그 재판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법조계의 예상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나아가 공익의 대표자가 아니라 사익의 대변자로 전락한 검찰의 후안무치와 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법원의 비겁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례임도 분명하다.


 용산참사의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고 재개발과 재건축, 뉴타운사업 등으로 길거리로 쫓겨나는 수많은 철거민들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해 온 우리들은 오늘 그 결과가 선고된 용산재판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전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 역사가 그러했듯 오늘의 선고에도 불구하고 3,000쪽의 수사기록에 감춰진 진실이 언젠가는 드러나고야 말 것임을 확신하며, 진실을 은폐한 채 애꿎은 철거민들만 책임을 물으려 한 검찰과 이를 눈 뜨고 방치한 채 형식적인 재판으로 진실을 덮는 데 앞장 선 재판부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09월 10월 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  장  백 승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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