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이랜드 사태’가 또다시 발생하려 하고 있다. 그것도 명색이 공영방송인 KBS에서 비정규직의 대량해고 사태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6월 24일 열린 이사회에서 KBS 경영진이 보고한 ‘연봉계약직 운영방안’에 따르면, 비정규직 420명 중 331명은 자회사 정규직 등으로 전환하고, 89명은 계약을 해지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이달 말에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18명 전원에 대하여는 즉시 계약을 해지할 방침이라고 한다. 우리는 KBS 경영진의 비정규직 대량해고 방침을 공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최악의 조치로 규정하면서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KBS 경영진은 ‘경영악화와 비정규직법’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현행 비정규직법의 본래 입법취지는 2년의 사용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지 이들을 회사에서 무조건 내쫓으라는 것이 아니다. 경영악화도 회사 경영진이 책임질 문제이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묵묵히 견뎌온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사항이 아니다. 요컨대 KBS 경영진의 이번 비정규직 대량해고 방침은 본말을 전도하여 현행 비정규직법의 입법취지에 반하고, 부실경영의 책임을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떠넘기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자회사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KBS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수십 년을 근무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경영진의 일방적 조치로 정든 직장을 떠날 수는 없다. 근로자를 그가 고용된 기업으로부터 다른 기업으로 적을 옮겨 다른 기업의 업무에 종사하게 하는 이른바 ‘전적’은 원칙적으로 당해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효력이 생긴다는 것은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이고, 해고를 협박수단으로 삼아 얻어낸 동의가 효력이 없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반원칙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자회사 전환방침도 근로기준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명백한 불법행위인 것이다.
공영방송인 KBS에서 이처럼 불법적이고 파행적으로 비정규직을 대량해고 하겠다는 방침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국민들에게는 연중기획으로 ‘일자리가 희망이다’라고 캠페인을 벌이면서 정작 자신이 고용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한 마디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하겠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KBS의 주인인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이번 비정규직 대량해고 방침이 고용불안을 부추기고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KBS 경영진이 이제라도 이성을 되찾아 비정규직 대량해고 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진지한 대화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또한 정부와 국회는 이번 KBS 사태를 통하여 드러난 현행 비정규직법의 한계와 문제점을 명확히 인식하여 제2, 제3의 이랜드 사태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근본적 보호대책을 수립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