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

2005-02-11 257

법원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 가처분 일부 인용 결정에 대한 우리의 입장

2005. 1. 31.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10.26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관하여 영화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영화 상영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가처분결정을 하였다.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결정은 예술 창작자들로 하여금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예술적 표현물을 창작함에 있어 스스로 엄격한 자기 검열을 하게 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표현을 사전에 봉쇄하고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결정이다.

물론, 사법부에 의한 영화상영금지가처분은 법 논리적으로는 사전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또한, 우리는 표현∙예술의 자유 못지 않게 개인의 명예와 인격권 역시 함부로 침해될 수 없는 중대한 권리라는 원칙에 동의한다. 그러나, 사법적 판단에 의한 가처분결정이 비록 형식적으로는 검열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반 시민이 예술창작물의 내용을 향수,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그 실질적인 기능은 검열과 다를 바 없다.따라서 법원이 영화의 상영 전에 영화상영금지 또는 일부 장면의 삭제를 결정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되어야 하며, 그를 위한 고도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 허용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더군다나, 위 영화는 고도의 공적 성격을 가진 전직 대통령과 우리 현대사의 가장 문제적인 사건 중 하나를 소재로 하여 이에 허구를 가미한 창작물인 바, 이를 통상적인 개인의 명예나 인격권의 침해와 같은 차원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창작자와 시민들은 그러한 역사적 중대 사실을 다양한 차원에서 해석하고 음미하여 미적, 사회적 차원에서 반성적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이 사건에서 그러한 우리들의 헌법적 권리가 제한되어야 할 만큼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법원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법원 스스로도 공적 인물인 전직 대통령으로서 고인과 그 유족들은 이 영화에 묘사된 정도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수인하여야 할 정도이고, 이 영화로 인하여 고인의 사회적 평가가 바뀔 것으로 예상되지도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유족들조차 문제삼은 바 없는 다큐멘터리 부분의 삭제를 명하면서, 그 부분으로 인하여 일반 관객들이 허구와 실제를 혼동할 우려가 있고, 다큐멘터리 부분들이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승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거나 작품의 완성도 유지나 흐름상 필수불가결한 장면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근거를 들고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부분이 삭제되었다고 하여 이 영화가 완전한 허구라고 믿을 국민이 어디 있으며, 그 부분이 삭제되지 않았다고 하여 이 영화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또한, 보다 근원적으로 영화의 예술적 가치나 작품의 완성도에 대하여 법원이 판단한다는 것이 합당한지, 나아가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법이 개입하지 말아야 할 순수한 창작 자유의 영역에 법이 개입함으로써 법원 스스로 마땅히 자제해야 할 경계를 허물어뜨렸다고 본다. 우리는 이번 결정이 자칫 표현과 예술의 자유에 대한 사법 우월주의, 사법 만능주의를 선언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의 명암을 온몸으로 체현했던 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정도의 풍자적 표현도, 감상도 온전히 허용할 수 없다는 법원의 결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우리는 이번 법원의 결정이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 발전, 더 나아가 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로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하는 결과를 야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향후 이번 사건에 관하여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결이 있기를 기대한다.

2005.   2.   4.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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