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영등포역에서 부터 여의도까지 행진을 진행하며 <국가보안법 폐지 제1차 범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모임 이석태, 김진, 김진욱, 송호창, 장경욱 회원 등이 참여한 이 날 범국민대회에서, 특히 모임 이석태회장은 결의문 낭독을 통해 “열정과 혼신의 노력들은 기필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범국민적 힘을 만들어낼 것이며 56년, 국가보안법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끝내게 될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 아래 기사 제공 <통일뉴스>
지난 7월 2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출정식을 갖고 46일간의 행진을 나섰던 국가보안법폐지전국도보행진단이 5일,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다.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전상봉 의장과 이승호 집행위원장, 실무진 등 단 4명으로 단촐히 떠났던 도보행진단은 연인원 1100여명과 함께 1260여km의 아스팔트를 걸으며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을 ‘육탄돌격’으로 국민들에게 홍보해왔다.
전상봉 의장, 이승호 집행위원장과 실무진 등 한 달여 남짓한 시간 동안 고통을 함께 나눠온 전국도보행진단은 영등포에서 여의도까지 2시간 20분에 걸친 행진 끝에 국회 앞에 당도하자마자 서로를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행진단의 손을 부여잡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등을 토닥이는 원로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기는 마찬가지였다.
46일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전국도보행진단은 원점에 선 만큼 이 날을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이날 오후 3시 45분 경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1차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1500여명도 5일을 기점으로 국가보안법폐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원점’을 ‘출발점’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1차 국민대회가 열린 이날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향한 열망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날이었다.
영등포에서 여의도까지, 550여명 행진단과 함께
안양대학교에서 전야제를 마치고 영등포까지 행진해온 40여명의 도보행진단을 맞은 것은 여의도까지 함께 걸어갈 550여명의 동료들이었다.
5일 오후 1시 20분 경 전국도보행진단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영등포역 앞마당에 마련된 도보순례단 환영식 장에 도착하자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흡사 노숙자 같은 모습에 검붉은 얼굴을 한 도보행진단은 ‘국’, ‘가’, ‘보’, ‘안’, ‘법’, ‘폐’, ‘지’ 깃발을 앞세우고 당당한 걸음으로 무대 앞으로 향했다.
범민련 남측본부 나창순 의장은 “더 강해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온 동지들이 고맙고 반갑다”며 도보행진단이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국가보안법 폐지 의지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전국방방곡곡에 찍은 발자국과 도보행진단이 흘린 땀방울은 전 국토에 국가보안법 투쟁의 함성으로 남을 것이다”고 환영인사를 했다.
전국도보행진단 단장인 한청 전상봉 의장은 이날 아침 남태령을 지나며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서울구치소에서 재판을 받으러 가기 위해 호송차에 실려 이 고개를 넘었던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렸다며 “도보행진에 참여했던 동지들과 각계 대표자, 회원들의 뜻을 모은다면 반드시 2004년 국가보안법을 폐지시켜 야만의 굴레를 벗고 통일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답례했다.
환영식을 짧게 정리한 이들은 열린우리당사 앞을 거쳐 여의도로 향했다. 특히 2시 45분 경 열린우리당사 앞에 도착한 이들은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당론 결정에 국가보안법 폐지의 열쇠가 달렸다고 주장하며 “개정놀음 중단하고 국가보안법 안전히 폐지시키자”,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질렀다.
여름햇살보다 더 뜨거운 가을햇살, 이제 막 초가을에 접어든 날씨는 열린우리당사 앞에 지나며 후끈 달아올랐다. 2시간 남짓한 거리를 뙤악볕을 그대로 쬐며 걷는 강행군이었지만 550여명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비치지 않았다. 70대, 80대의 고령의 노인인 대부분인 원로들 또한 젊은이들과 함께 거리를 달렸다.
특히, 고령으로 서울지역 도보순례단 행진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쭉 서명대를 지켜왔던 박정숙 선생 또한 이날만은 함께 달려 도보행진단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결국 영등포에서 여의도로 넘어가는 다리쯤에서 행진을 포기하고 자동차를 이용해 행사장인 국회의사당 앞으로 향했지만, 80세가 넘는 박정숙 선생의 투혼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또한 민가협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초홍 감사도 다리가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목발을 짚고 노구를 이끌고 행진을 강행했다.
국보법 폐지 국민대회 날에 국보법 적용
한편, 행진이 진행되는 한켠에서는 국가보안법으로 청년과 학생 2명이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해 참석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퍼레이드용 차량 7대에 붙은 ‘국가보안법폐지’ 글자모형이 문제가 된 것이다. 경찰은 불법 선전물이라 하여 이들 차량의 통행을 허가해 주지 않았으며 이 과정에서 경찰과 말다툼을 하던 관악청년회 박원준 회원이 잠시 연행되기도 했다. 행진단은 잠시 행진을 중단하고 차량통행 허가와 박원준 회원 석방을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승호 집행위원장은 “46일 동안 전국을 누비며 도보행진을 해왔지만 이 같은 일은 처음”이라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도 빼앗기고, 억압받는 것도 참을 수 없는데 연행은 있을 수 없다”며 석방될 때까지 움직이지 말자고 제안했다. 결국 대열은 박원준 회원이 석방 된 뒤 발걸음을 옮겼다.
행진시작 전에는 하반기 최대규모로 진행된 국가보안법폐지 1차 국민대회에서 경찰이 국가보안법위반혐의를 물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서 활동중인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동규(32세) 학생을 연행해 가 공안당국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김동규 학생은 현재 옥인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며 학생들은 1차 국민대회가 끝난 뒤 대공분실로 몰려가 항의집회를 진행했다. 8월 31일 미리 체포영장을 작성해놓고 연행한 공안당국의 행동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에 맞서 공안당국이 계획적으로 조직사건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시하고 있다.
“56년, 국보법 역사 우리가 마무리하자”
영등포에서 여의도까지 행진한 550여명의 행진단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 1500여명은 국가보안법폐지 1차 국민대회를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다짐하는 손도장을 찍었다.
한청 전상봉 의장은 이 자리에서 전국도보행진단이 해산하게 됨을 선포하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때까지 행진은 멈출 수 없으며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그 순간까지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오종렬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공동대표는 “민중, 역사, 민족 앞에 이 나라 청년들의 위대함이 자랑스럽다”며 “여러분의 노래와 피와 땀, 행진이 이 나라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 강조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의 냉전의 유물이며 역사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말에 찬성한다며 격려의 박수를 청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석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이 낭독한 결의문을 통해 “열린우리당 일부의원들조차 말도 안 되는 개정안을 내놓고 국민여론을 모아야 한다느니, 한나라당의 반대를 최소화해야 한다느니, 운운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국민적 배신감과 함께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정치적 생명을 걸고 국가보안법의 전면적인 폐지 대열”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온.오프라인에서 펼쳐지고 있는 “열정과 혼신의 노력들은 기필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범국민적 힘을 만들어낼 것이며 56년, 국가보안법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끝내게 될 것”이라 선언했다.
결의문을 낭독한 뒤 참가자들은 손에 물감을 묻힌 뒤 ‘국가보안법폐지’가 적힌 대형 현수막에 손도장을 찍어나갔다. 길이 2m, 넓이 2.5m인 현수막에 손도장이 어지럽게 찍혀나갈 때 마다 1500여 참가자들의 가슴에도 국가보안법 폐지 약속이 깊게 새겨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