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공동보도자료] 일하는 사람 곁에 없는 산재보험 60년 기자회견 –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산재보험으로 개혁하라!

2024-06-25 146

보도자료

일하는 사람 곁에 없는 산재보험 60년 기자회견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산재보험으로 개혁하라!

 

수신 제 시민사회단체 및 각 언론사 사회부
발신 건강한노동세상, 김용균재단, 노동건강연대,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반올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제목 일하는 사람 곁에 없는 산재보험 60년 기자회견
일시/장소 2024년 6월 25일 (화) 오후 1시 /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주최 건강한노동세상, 김용균재단, 노동건강연대,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반올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담당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기자회견 순서

사회: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 처리 지연과 입증 책임 문제
  • 석원희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 전기노동자 직업성 암과 근로복지공단 규탄
  • 전수경(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산재보험이 있어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노동자들 : 청년 여성 산재 노동자의 경험
  • 권미정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 산재 카르텔 발언 이후 산재제도 개악시도 규탄
  • 김성호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회장)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산재보험으로!
  • 기자회견문 낭독
  • 퍼포먼스

 

 

 

발언 1. 심각한 산재 처리지연 공단과 노동부가 제대로 책임져라.

노동자 입증책임 부당하다. 폭넓은 인정기준 마련하라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

 

일터에서 다치고 병들고 죽는 노동자들이 없어야 하는데 사람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기업들에게만 특혜를 주고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과 정책은 한없이 약하기만 한 가운데, 자꾸만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어제 중대재해로 최소 22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망자들 대다수는 가장 열악한 지위의 일용직,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리튬 전지 생산이 화재, 폭발에 매우 취약하다는 위험성을 모르지 않았을 회사가, 얼마나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기에 20여명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는지 정말 참담한 마음입니다. 사망한 노동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철저한 규명과 함께 리튬베터리 제조 등 위험한 산업에 대해서는 하도급 전면 금지 등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합니다.

 

일하다 다치고 병들고 죽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국가의 공적보험으로 치료와 생계비 보전이 되도록 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산재보험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산재보험이 도입된 지 무려 60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기가 너무도 힘이 듭니다. 특히 중소 하청 비정규직, 특수고용, 이주노동자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경우는 산재보험의 적용을 더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이라면 아파서 병원에서 진료를 본 첫날부터 건강보험처럼 산재보험이 적용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신속한 보상은 산재보험의 가장 중요한 원칙 임에도, 근로복지공단과 주무부처 노동부는 처리지연문제의 심각성을 나몰라라 하고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업무상질병 산재처리 소요기간을 보면 지나치게 깁니다. 2023년 기준 근골격계질환 질환의 경우 146일이나 걸렸고, 정신질환은 205일, 직업성 암은 289일, 난청은 333일이나 걸렸습니다. 전체적인 통계는 214.5일로 업무상질병 산재처리에 무려 7개월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이래도 노동부와 공단은 “내 곁의 산재보험”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울 수 있습니까?

 

직업성암 피해자의 역학조사의 경우는 더욱 참담합니다. 2023년 기준 634.6일이나 걸렸습니다. 역학조사 운영규정에 명시된 180일의 처리기한은 단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습니다. 몇 년씩이나 역학조사를 기다리다가 5년간 무려 111명의 노동자가 숨지기도 했습니다. 살아생전 산재인정 소식만 기다리는 피해자가 아무런 결과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비극은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원칙적인 조사기간이 넘어, 지연이 되면 ‘산재국가책임’으로 우선 보장하는 ‘선보장’ 제도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또한 ‘추정의 원칙’이 대폭 확대되어야 합니다. 해당 산업과 직종에 반복해 나타나는 질병에 대해 특별진찰을 거쳐야 한다며 몇 개월씩 기다려야하는 사태를 반복해선 안됩니다. 간단한 직무력 확인으로 산재를 폭넓게 추정해 인정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입증할 정보나 능력이 부재한 노동자에게 산재의 입증책임이 있다고 보는 현재의 산재법은 너무도 가혹합니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같은 첨단산업에서는 수백종의 화학물질이 집약적으로 사용되고 방사선 등 물리적 위험인자도 도사리지만 대부분의 정보가 영업비밀로 가려져 있어, 입증할래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사업주의 비협조, 행정청의 조사부실 등 노동자에게 책임없는 사유로 유해요인의 노출정도와 수준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법원은 오래전부터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라는 것은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엄격한 입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제반 사정을 종합해서 고려할 때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수준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의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규범적 인과관계로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여전히 의학적 인과관계 중심으로 판정을 하여 노동자 보호라는 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공단에서는 안되니까, 법원으로 가라며 소송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은 바뀌어야 합니다.

더 이상 처리지연으로 고통 받지 않도록, 더 이상 불승인이 남발되지 않도록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는 지금이라도 산재제도를 전면 개혁해야 합니다.

 

 

발언 2. 산재보험 60주년 기념식! 무엇을 기념하는가?

 

석원희 (전국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

 

지난 6월 11일 서울고등법원 제1-3행정부는 배전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20년 넘게 22,900볼트의 특고압 전기를 만지며 활선작업을 해온 배전노동자의 갑상선암을 산업재해가 아니라고 부정한 것입니다.

 

배전노동자는 2015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이듬해 산재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뒤 2022년 행정소송 1심에서 산재를 인정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했고, 결국 2심 재판부는 배전노동자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 산재 신청한 지 벌써 9년, 앞으로 대법원 판결을 받을 때까지 얼마나 오랜 기간 배전노동자의 고통이 이어질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곳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는 산재보험 6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보험인 산업재해보상보험은 과연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안전하지 못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노동자의 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채, 60주년 기념식을 연들 과연 한국 사회에서 산재보험은 어떤 의미인가. 산업재해로 병 들고 다치며 심지어 죽어가는 노동자를 외면하고서 도대체 무엇을 기념한단 말입니까?

 

배전노동자는 22,900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만지며 작업해야 했습니다. 극저주파 전자기파에 노출됨은 물론, 생사를 넘나드는 작업이기에 긴장감과 과도한 스트레스가 배전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1심 재판부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하며,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과거 배전노동자들은 직접활선 공법이라는 상식 밖의 작업 방식으로 일해왔습니다. 살아 있는 2만 2천볼트의 전기를 직접 고무장갑을 끼고 손으로 만지며 일한 것입니다. 안정적 전기 공급을 위해 안전을 뒤로 하고정전 최소화를 명목으로 직접활선 공법을 1990년께 도입하면서부터 배전노동현장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배전노동자들이 팔·다리를 잘라내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한 백혈병을 비롯하여 각종 암 환자가 줄줄이 발생하고 있다. 배전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에 비해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이 심하다는 사실이 연구결과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배전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채 이제 직접활선 공법은 폐기되었고 이제는 직접활선 공법이 얼마나 위험한지 연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배전노동자들은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했을 뿐, 어떤 유해·위험요인이 있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직접활선 공법으로 극저주파 전자기파에 노출될 때 노동자의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예방책을 세워야 할 의무는 근로복지공단에 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할 일은 산재승인 취소 소송에 목 매는 것이 아니라.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하면서, 병들어가는 노동자의 치료를 위한 뒷받침을 하고 예방대책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바로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책무입니다. 직무 연관성을 입증할 의무를 왜 배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가.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업무와 재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음을 근로복지공단이 직접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산재보험은 노동안전보건상의 위험을 노사 일방에 전가하지 않고 사회 전체가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취지에 맞게끔 노동자 개개인에게 입증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작업환경으로 병들고 죽어가는 노동자에게 우리 사회가 뒤늦게나마 보상하는 산재보험 제도를 정립해야 노동자 모두가 안전하게 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법정에서나 거리에서나 현장에서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발언 3. 보이지 않는 산재를 만든 산재보험 60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산재보험 이용을 포기하는 이들은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한 이들, 산재보험을 신청하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기에는 하루의 일당, 한 달의 월급이 급한 이들입니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이런 노동자의 존재를 아예 지운 채로 산재보험 60년을 자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산재보험 이용자 수에 집계되지 않는다고 해서 있는 산재가 없는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산재통계 지표에는 ‘산재요양 승인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임에 유의’하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2022년 통계에도 2023년 통계에도 이 말이 쓰여 있습니다. 다치고 아프지만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못하는 사람들, 신청했지만 ‘승인’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산재의 숫자에 더해지지 않습니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받는 노동자, 프리랜서라고 계약했지만 사실상 고용된 노동자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라고 추산되고 있습니다.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노동을 하는 이들은 늘고 있는데 이들이 다치고 아파도 기댈 수 있는 사회보험이 없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찔끔, 시늉만 낼 뿐입니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 묻습니다. 신분이 무엇이든 노동으로 생계를 잇고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들의 안전망으로 산재보험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해 보았습니까.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노동하는 사람의 자격부터 따지자고 하면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은 계속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산재요양 승인’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비용과 시간의 소요’는 정보탐색과 상담, 법률서비스 구매,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생계문제 등을 개인이 모두 짊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바로 일자리가 없어집니다. 산재의 조건을 넓히고 사회적 흐름에 따라, 필요에 따라 변화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빗길 배달을 가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사망한 배달 라이더, 고속도로 야간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나서 사망한 화물차 기사의 죽음이 교통사고가 아니라 산재이고, 살얼음판 같은 노동 조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여성의 질환들, 정신건강의 문제도 산재입니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재보험으로 치료해야 할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일을 하다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의 21.0%~42.4%가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바 있습니다.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2022~2023년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시행하며, 일하다 아프고 다친 만19세에서 만34세의 청년 여성 노동자들에게 산재신청 현황을 물었더니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600명의 청년여성 노동자 가운데 단 1%만이 산재보험을 신청해 보았다고 답했습니다. 여성 노동자의 산재는 아직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승인 노동자를 집계하면서 성별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고용이 더 불안정하고,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이들일수록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상황, 이러한 불안정한 조건에 여성의 비중이 큰 현실을 고려하면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너무 안이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푸는 여성노동자, 패스트푸드점에서 버거를 만드는 여성노동자,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는 여성노동자, 웹툰보조, 방송국 뉴스 보조 같은 수많은 보조의 이름을 달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기 전에는 산재보험이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산재를 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으면서,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 60년을 자화자찬하는 것은 공허합니다.

 

 

발언 4. 증거없는 산재카르텔 발언이 산재제도를 개악시키고 있다

 

권미정(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

 

근래 근로복지공단에 가보신 분은 산재보험 부정수급 신고를 받고 있다는 안내 배너나 안내판을 보신 적 있을 것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에 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밝혔습니다.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감사를 진행했고 노무법인과 병원의 의심 정황은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부정수급은 없었습니다. 나이롱환자는 없었고 산재카르텔은 실체가 없었습니다.

산재환자들은 나이롱환자이고, 서로 짬짬이로 불법을 저지른 카르텔이 있다고 전제하고 특정감사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산재카르텔을 자꾸 들먹이며 산재보험 제도를 바꾸겠다고 합니다.

60년이면 바꿀 때도 되었습니다. 일하는 사람 곁의 산재보험이 되지 못한 채 60년이 되어버렸으니 바꿔야지요. 그런데 정부가 가르키는 방향이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더 악화하는 잘못된 방향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없는 증거를 있는 것처럼 주장하며 산재보험 제도를 더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산재보험 카르텔 발언 이후 일부 지역에서는 산재보상 실태조사를 한다며 논란을 벌였고, 산재 승인을 받자마자 치료종결 처분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산재승인을 위한 특진명령도, 대학병원 검진도 다 하고 있지만 늦어지는 산재 승인이 불안하기만 한 노동자들입니다. 기일만 늦어지는 게 아니라 산재 승인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입니다. 주치의의 진료계획서는 2개월 요양이 더 필요하다고 했지만 한 달도 되지 않는 요양기간을 승인받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산재처리 기간은 2017년 대비 2023년에 더 길어졌고 역학조사기간도 2017년 대비 3.5배 기간이 더 소요되었습니다.

 

산재요양기간이 너무 길다며 단축해야겠다, 직업성 암 인정범위를 축소하겠다, 사업주의 의견을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서 결정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벌써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프다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쳤다는 것이 기업의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노동자의 고통을 쳐다보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을 하며 산재보험을 설명하면 말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인데 사장님은 싫어하고 신청하기 어렵다는 것을. 한 번도 산재보험을 신청해본 적 없지만 그런 현실을 자연스럽게 말합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직업훈련을 받는 노동자도 말합니다.

“이 좋은 제도를 왜 회사들은 싫어할까요?”라고.

 

회사 눈치 보느라 아파도 참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아지고만 있습니다. 치료받는 기간 동안 여전히 생활은 불안정하고 다친 몸과 마음 때문에 불안한 삶을 그나마 받쳐주던 산재보험제도가 이제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60년이면 이제 바꿔야 합니다. 정부의 손가락이 가르키는 방향을 바꿔내야겠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바꿔냅시다.

 

 

발언 5. 노동재해를 온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라!

 

김성호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잘 아시다시피 산재보험은 올해로 시행된 지 60년이 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보장보험입니다. 사회보험은 질병, 사망, 노령, 실업, 장애와 같은 사회적 위험을 국가 구성원의 사회 연대로 대비하는 제도입니다. 산재보험에 대해서는 일하는 모든 사람이 보호받지 못하는 협소한 적용 범위 문제와 노동자가 자신의 사고나 질병 원인을 증명해야 하는 증명책임 문제, 그리고 불충분한 보상 문제 등을 개선하라는 요구가 6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60년이 지난 지금, 산재보험은 얼마나 나아지고 있을까요? 그 중 저는 협소한 적용 범위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통 30년을 한 세대라고 하니 산재보험이 시행되고는 두 세대가 지난 것이고,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강산이 여섯 번을 변한 기간입니다. 이 긴 기간 동안 농림어업 중심이었던 산업구조는 제조업 중심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변했습니다. 직종의 경우에는 농림어업과 숙련공, 기능공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사무직, 서비스직의 비율이 더 많아졌습니다. 고용 관계에서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 사장이라는 단순한 원칙이 흔들리며 간접고용, 프리랜서, 특수고용, 플랫폼노동 등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수많은 고용 형태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산업과 직종의 다양성만큼 일하는 공간도 기존의 제한된 사무실과 공장으로부터 이제는 가정집으로, 거리와 도로로, 그리고 각자의 주거지 등으로 다양해지게 되었고, 사용자의 시설관리범위에 대한 경계는 더 이상 기존의 관념으로는 정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일과 관련된 재해의 유형과 양상도 달라졌고, 재해로부터 보호해야 할 고용관계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긴 기간 동안 정부는 산재보험의 보호 대상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제한하는 기본 틀을 고집스럽게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7년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조항이 신설되고, 2022년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포괄하는 노무제공자에 대한 특례가 만들어져 2023년 7월부터 시행되었지만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무제공자의 범위를 시행령으로 제한하고 있어 현재는 불과 18개 직종의 노무제공자만이 적용을 받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들 18개 직종이 적용받게 된 역사를 보면 노동자들의 고단한 투쟁으로 만든 것을 알 수 있으며, 아직 조직되지 않아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무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의 문턱조차 넘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가 산재보험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것은 산재보험을 사업주 책임보험의 성격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재보험제도가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에는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가 직접 보상책임을 졌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재해자가 종속노동을 하는 노동자라는 전제가 필요했습니다. 재해 노동자에게 보상할 사업주의 책임을 보험의 방식으로 분산시킨다는 개념을 여전히 산재보험에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의 보호 대상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산업구조의 변화와 고용형태의 다양화” 시대에 일터에서의 재해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더 이상 산재보험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 적용하는 기본 틀은 그 생명을 다했다고 봐야 합니다.

즉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노무제공자 등 일부에게 특례로 조금씩 문을 여는 산재보험의 기본 틀은 현재의 산업구조와 고용형태에 맞지 않는 방식인 것입니다. 산업구조의 변화와 고용형태의 다양화로 얻어진 과실은 사업주와 사회가 누리면서도 그로 인한 일하는 사람들의 위험을 애써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2002년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근로자대책 특별위원회”는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중 「업무상 재해로 인하여 그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자」에 대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방안을 강구한다”라고 합의하였습니다. 이는 산재보험을 더 이상 사업주의 책임보험 성격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에 따라 적용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한정지을 필요가 없고, 산업재해로부터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산재보험의 경계석을 고쳐세우는 과감한 결단을 통해 산재보험을 사업주 책임보험이 아닌 온전한 사회보장보험으로 자리잡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재보험제도를 도입한 독일의 경우 재해보험을 근로자 뿐만 아니라 근로자와 유사한 자, 취업자, 취업자와 유사한 자처럼 현재 취업 중인 자는 물론이고 학생, 자원봉사자와 같은 공익 활동자, 구직 신청한 실업자 등에게도 당연 적용 대상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일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재해의 피해를 사회보장보험제도로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산재보험제도 도입 60년

산재보험이 온전한 사회보장제도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보장받는 산재보험제도로 탈바꿈하길 요구합니다.

 

 

 

<기자회견문>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산재보험으로 개혁하라!

 

2024년 7월 1일은 산재보험법 시행 60년이 되는 날이다. 산재보험은 한국에서 최초로 도입된 사회보험이다. 일하다 아픈 노동자가 경제적인 부담 없이 제대로 치료받고, 원래의 일자리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꼭 필요한 제도이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60년간, 일하는 사람 곁의 산재보험이었다지만, 그동안 아픈 노동자들의 경험은 매우 다르다.

 

산재보험은 시작부터 군사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목표로 위로부터 도입되어, 500인 이상의 대기업에서부터 선별적으로 시작됐다. 점점 더 작은 사업장까지, 특수고용노동자와 최근 플랫폼 노동자들까지 적용이 확대되는 데에도 골프장 경기보조원부터 배달 라이더까지 당사자들의 끈질긴 투쟁이 있었다. 산재 보험 보상 범위 확대도 마찬가지다. 사고 중심에서 뇌심혈관질환, 정신질환, 직업성 암, 출퇴근재해에 이르기까지 산재 보상 범위가 늘어나는 데에는 유가족과 당사자, 노동조합과 노동단체들의 투쟁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하다 다치거나 아파서 산재로 치료받으려는 노동자들은 산재 신청부터 종결까지 다양한 제도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산재 신청이 무엇인지 모르고, 주변에서 도움을 얻을 수 없는 노동자도 부지기수다. 신청 과정에서 노동자 의견을 무시하거나,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도 많다. 어렵게 신청해도 산재 판정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너무 길고, 직업병이 아니라고 불승인되기도 한다. 심지어 승인이 된 뒤에도 비급여 발생이나 휴업급여 수준이 낮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산재 노동자들에게 ‘산재 카르텔’, ‘나일롱 환자’등의 프레임을 씌우면서 요양 기간 제한과 종결, 불승인 남발, 모욕과 비난에 나서고 있다. 산재보험이 개악될 때마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산재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어져 왔다. 산재보험 60주년을 자화자찬하며, 뒤에서는 산재 노동자를 압박하는 정부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을 모든 일하는 사람으로 더욱 확대하고, 산재로 보상하는 업무상질병 범위를 확대하는 것, 산재보험 비급여 부담을 줄이고 휴업급여 수준을 높이는 것, 산재 처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업무상재해 판정 절차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 산재 처리 전 과정에서 노동자를 존중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것 등 60주년을 맞은 산재보험에는 남은 과제가 훨씬 더 많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아픈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산재 보험으로 개혁해야 한다.

 

신청도 입증도 어려운 산재보험, 개혁하라!

산재처리 기다리다 병 키운다, 산재보험 개혁하라!

나이롱 환자 탓은 이제 그만, 산재보험 개혁하라!

안 되는 사람이 더 많은 산재보험, 개혁하라!

 

2024년 6월 25일

‘일하는 사람 곁에 없는’ 산재보험 60년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첨부파일

20240625_노동위_보도자료_일하는 사람 곁에 없는 산재보험 60년 기자회견.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