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문
기록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연대하자, 빼앗긴 가치를 지키기 위한 모든 싸움에!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고 지키기 위한 인류 공동체의 약속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매년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한 해 동안 한국 인권상황을 기록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 현장의 목소리를 집중 조명해왔다.
2023년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총체적으로 후퇴한 한 해였다.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은 집권 시작과 동시에 측근 검사들로 권력기관을 장악했다. 각 부처 장관을 비롯하여 법제처장, 금융감독원장, 국가보훈처장,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민주평통 사무처장 등 해당 분야 전문가를 중용해야 할 자리에까지 검사 출신을 밀어 넣었다. 설득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원칙 대신 상명하복과 수사와 처벌이라는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우리는 특히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골적인 언론 장악에 단호히 반대한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위법적인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영방송의 사람 바꾸기, 실체도 모를 가짜뉴스 잡기 명목으로 자행되는 심각한 언론 자유 침해,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인 및 언론사에 대한 강제수사까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전방위적이고 심각하다. 언론의 자유는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며 이를 최대로 보장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기본원리다. 윤석열 정부는 반헌법적 언론 탄압을 당장 중단하라.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공산전체주의 세력’ ‘반국가세력’을 운운하며 실체 없는 이념전쟁으로 국민을 편 가르자, 국가정보원 등 공안수사기관이 발맞춰 국가보안법 사건들을 쏟아내고 있다. 경찰은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를 사실상 검열하고, 과도하게 제한하여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사법개혁, 권력기관 개혁, 과거사 청산, 블랙리스트 반인권성 등 우리 사회가 그동안 합의해 온 사회적 원칙들이 한순간에 허물어진 1년이었다.
외교도 낙제감이다. 한반도 평화의 시계는 멈춰버렸다. 한미일 – 북중러 대결의 신냉전 구도가 고착되면서 한반도의 전쟁 위험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모든 전쟁은 공멸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의 삶을 담보로 한 위험하고 무책임한 협박이다.
노동과 민생도 무너지고 있다. 건설노조 사례와 같이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범죄자 낙인찍기를 비롯한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인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생활물가가 급등했지만 월급은 그대로다. 인천 미추홀구를 시작으로 확산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벼랑 끝에 서 있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여전히 문턱이 높고, 충분하지 못하다. 실질적인 연금 개혁방안을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이제야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무책임과 무능 그 자체였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도 여전히 위태롭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시대착오적 인식은 여성의 권리를 정부의 정책에서 지워내기 급급했다. 그 사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혐오범죄가 올 한 해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수용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인권 현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무시되었다. 또한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음에도 이를 성실히 이행하려는 노력은커녕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경찰의 특별수사본부 수사, 검찰 수사, 국회 국정조사 등 대대적인 조사와 수사가 이루어졌다’는 반박문 성격의 입장만 내며 국제사회도 주목하고 있는 문제를 계속해서 외면하고 있다.
또한 2023년 11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해 정부는 2023년 12월 1일 기어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의결했다. 하루 만에 4개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헌정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이는 노동3권의 실질화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제고를 위해 오랜 기간 투쟁해온 현장의 절박한 외침과 이에 연대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철저히 짓밟은 행태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법치와 공정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위선적인지 이번 거부권 행사를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맞서는 민중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싸움’이라고 했다. 우리는 오늘 올 한 해 우리 사회에서 목격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기록했다. 오늘 남겨진 우리의 기록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긴 싸움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윤석열 정부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국민을 편 가르고, 잘못을 반성하지 않으며, 권력과 사정기관을 무기 삼아 독주한 권력은 결국 모두 실패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기억하고, 헌법에 보장된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를 중단하라.
우리는 결의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는 비상하고 엄중한 시기에 보편적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모든 현장의 시민들과 연대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지키고, 노동의 가치와 민생의 삶터를 지켜갈 것이다.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지혜를 모아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3년 12월 4일
2023 한국인권보고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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