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법원의 중대재해처벌법 위헌법률제청신청 기각 결정은 환영하지만 화학물질 중독 사고로 인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업주에게 내린 집행유예 판결에는 유감을 표명한다.
지난 11월 3일 창원지방법원 형사4단독(부장판사 강희경)은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이후 첫 기소 사건이자,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헌 제청 신청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트리클로로메탄 급성중독 사건에 대해 판결을 선고하였다(창원지방법원 2022고단1429).
유해화학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이 함유된 세척제를 공급한 유성케미컬 대표이사인 피고인 A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이를 공급 받아 사용하여 수십명의 노동자들에게 급성간중독을 일으킨 회사의 대표자들 중,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두성산업 대표이사인 피고인 B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징역 1년의 형의 집행을 3년간 유예하였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으로만 기소된 사업주 대흥알앤티 대표이사인 피고인 C에 대해서는 징역 10월을 선고하면서 그 집행을 2년간 유예하였다. 두성산업 법인과 대흥알앤티 법인에는 각각 벌금 2천만원과 벌금 1천만원이 선고됐다. 관심을 모았던 두성산업 대표이사인 피고인 B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은 기각되었다.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한 것은 피해자들 입장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며, 법리적으로도 너무 당연한 판단이다. 피고인 C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한 근거는 명확성 원칙 위반, 과잉금지 원칙 위반, 평등권 침해 등이었으나, 재판부는 그 주장을 상세히 반박하며 모두 배척하였다. 특히, 명확성 원칙 위반과 관련,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볼 때 법이 요구하고 있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출 의무의 내용은 각 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일괄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뿐 아니라,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일반 국민이 아닌 해당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주라는 점에서, 그들 스스로 지켜야 하는 의무의 내용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판시는,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위헌론’에 대한 적절하고 타당한 반박이라 할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피고인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관련하여 인과관계를 부인하는 등 변명으로 일관했으나 법원이 이러한 피고인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은 점, 유해화학물질을 공급한 피고인 A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을 주장하며 관련 자료를 제출한 피고인에 대해, ‘법이 요구하는 것은 일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등을 반영한 구체적인 조치’임을 재차 확인하고, 해당 사업장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지 아니한 조치사항은 의무이행의 내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의 구체적인 의미를 명확히 하는 유의미한 해석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피고인 A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해서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등의 솜방망이 판결을 선고한 것은 심히 유감이다. 특히 두성산업 대표이사인 피고인 B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한 것은 비록 피고인이 피해자들과 합의하는 등 양형상의 유리한 사유가 다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가볍다. 사전적인 ‘체계’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이 법의 실효성 제고(提高)에는 심히 부족하다. 대흥알앤티 대표이사인 피고인 C의 경우 이미 동종의 2차례 전과가 있음은 물론, 노동·시민사회의 수 차례 엄벌 탄원에도 불구하고 선처를 한 것 또한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상 양벌규정에 따라 기소된 두성산업 법인의 경우 10억원 이하의 벌금 선고가 가능한데도 불과 2,000만원의 벌금이 선고된 것은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목표를 무색하게 하는 형량이다.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그 합헌성을 재확인하고,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주의 책임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여 경종을 울렸으나, 한편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해 경영책임자와 법인에 대해 솜방망이식의 처벌을 하여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형사정책적 효과를 무력화하고 있다. 중대산업재해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한 형사정책적인 효과는, 이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의 사망 등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은 것은 산업안전 관련 법령의 적용에 있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법논리에 빠진 사법부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사법부는 이러한 점을 기억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책임자를 엄단하는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2023. 11. 8.(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이 용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