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과거사청산위] [성명] 故 김봉길 변호사 등이 제기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화위의 조사개시결정을 환영하며 향후 면밀한 조사를 통해 사안의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 / 2023.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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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김봉길 변호사 등이 제기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화위의 조사개시결정을 환영하며 향후 면밀한 조사를 통해 사안의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오늘 제63차 전원위원회를 개최하여 故김봉길 변호사의 유족이 제기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하였다.

대법원은 1971. 6. 22. “군인이 전투훈련 및 직무수행 중 전사, 순직, 공상으로 유족연금 등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는 국가배상청구를 제외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의 단서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대법원 70다1010 전원합의체 판결)하였다. 이 판결은 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이면서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사법부의 존재 의의와 삼권분립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로서, 한국의 Marbury v. Madison 판결이라는 별칭을 받으며 학계뿐 아니라 법원 등 대부분의 법조인들로부터 한국 사법부의 기초를 다진 판결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故김봉길 변호사는 6・25동란을 전후하여 육군 군법무관으로 복무 후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던 중 이 사건의 원고(사망군인)측을 대리하여 위와 같은 역사적인 위헌 판결을 이끌어내었다.

그런데 이 위헌 판결에 당황한 박정희 정부는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해 1971. 7. 현직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이른바 제1차 사법파동을 불러일으켰고(박정희 정부는 1972. 10. 17. 헌정질서를 뒤집고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위헌심사권을 대법원에서 빼앗아 헌법위원회로 넘겼고, 국가배상법 제2조 위헌의견을 낸 대법원판사 9명 전원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킴), 1972년에는 국가배상법 위헌판결을 받은 김봉길 변호사를 비롯한 국가배상소송 관여 변호사들에 대한 탄압을 개시하였다. 김봉길 변호사는 1972. 1. 중앙정보부 안가(내자호텔)에 구금된 상태로 폭언・폭행과 함께 피의사실 공표에 의한 망신주기 등 강도 높은 인권침해적 수사를 받으면서 정신적 공황상태에 이르러 결국 허위자백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구속 기소되어 1972. 4. 벌금 20만원 판결, 1973. 7. 정직 8월의 징계 이후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변호사업무를 볼 수 없어 일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특히 위 징계는 헌법재판소로부터 1990. 11. 19. 위헌결정(90헌가48)을 받은 구 변호사법 제15조에 기한 것으로 김봉길 변호사는 거듭하여 위법한 기본권침해를 받게 된 것이다.

국가배상법 제2조 위헌판결을 둘러싼 당시 사법파동이나 이후 사법부의 암흑기에 대하여는 민주화 이후 재평가를 받고 있으나 위 판결과 국가배상 사건에 관여한 김봉길을 비롯한 변호사들의 변호권 탄압에 대하여는 그간 역사적 조명을 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김봉길 변호사는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2004년 눈을 감았다.

우리는 국가가 강제로 변호인에 대해 인권 침해적 위법수사를 자행하여 변호인의 조력할 권리를 침해하고 탄압한 이 사건에 대해 진화위에서 조사 개시 결정을 한 것을 적극 환영한다. 이번 조사개시 결정을 계기로 진화위에서 면밀한 진실규명 활동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법조인들에 대해 자행된 인권침해의 진실과 변호인 조력권 침해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줄 것을 촉구한다.

 

2023. 9. 26.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위원장 권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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