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스위·아동청소년인권위][공동 성명]<윤석열차> 관련 문체부의 엄중 경고 조치에 대한 진정을 정당한 이유 없이 각하하여 아동의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 침해를 묵인한 인권위를 규탄한다.
[공동 성명]
<윤석열차> 관련 문체부의 엄중 경고 조치에 대한 진정을 정당한 이유 없이 각하하여 아동의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 침해를 묵인한 인권위를 규탄한다.
-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2022. 10. 4.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한 ‘제23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윤석열 정부를 풍자한 <윤석열차>라는 청소년 작가의 작품에 금상을 수여한 것을 두고, ‘정치적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전시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이례적으로 ‘엄중 경고’ 등의 조치를 내렸다.
- 이에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위원은 위 문체부의 경고 조치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인권위는 2023. 4. 24. 해당 사건의 청소년 작가와 심사위원들에 대한 진정이 ‘직접성과 현재성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대한 진정은 피해자가 공법인이라는 이유로 각각 ‘각하’ 결정을 내렸다. 대신 인권위는 문체부 장관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장에게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그러나 우리 모임은 인권위가 ‘직접성과 현재성 요건’을 내세워 위 진정을 각하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유를 내세운 것일 뿐만 아니라, 아동의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명백하게 침해한 문체부의 조치를 묵인했다는 점에서 부당하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 우선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에서는 인권위가 진정을 각하할 수 있는 사유를 열거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인권위가 본 사건 각하 결정의 이유로 밝힌 ‘사건의 직접성과 현재성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는 위 규정에서 구체적 각하 사유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공모전의 기획부터 전시 과정이 모두 끝난 뒤에 이루어진 문체부의 조치가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없었고, 전시나 수상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인권위의 설명은 표현의 자유가 지닌 중대성과 위축 효과 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청소년 작가는 문체부의 조치로 인해 사회적 비난과 낙인에 노출되었고, 이는 당사자와 다른 예술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인권위는 이번 사건의 사회적 의미를 사후적으로 해명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 인권위는 이번 진정을 각하할 것이 아니라, 정식 조사를 통해 문체부의 이번 조치가 ‘아동’의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 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점을 엄중하게 지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동의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뿐만 아니라, 「UN아동권리협약」 제12조, 제13조, 제31조에 근거를 두고 있는 아동인권의 중요 내용이다. 위 협약에 따라 당사국은 아동이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아동의 의사 표현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며, 공적 대화에 접근할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또한 아동의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와 평판 및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공보건, 사회윤리의 보호를 위해서만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
- 문체부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작품 심사 선정 기준에서 사전에 약속한 것과 달리 정치적 색채를 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엄중 경고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으나, 애초에 이러한 약속을 한 문체부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모두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 ‘정치적인 작품을 배제한다’는 애매모호하고 편향적인 심사 조건이 아동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는가. 16세 이상의 청소년들이 정당에 가입해 정치활동을 할 수 있고, 18세 이상의 청소년들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보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문체부가 ‘정치적 주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예술 표현에 개입하려는 것은 청소년의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그 유해성이 매우 크다. 아동의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아동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동 당사자뿐만 아니라 다른 아동들에게도 광범위한 위축 효과를 장기적으로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인권위는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더욱 중대하게 인식했어야 했다.
- 또한 문체부가 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는 이유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 경고’를 내리고 일방적으로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려고 한 행위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된 형사 재판에서 법원이 내린 판결의 취지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2018. 1. 23. 선고 2017노2425, 2017노2424(병합) 판결에서 법원은 “정부가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어떠한 개인이나 단체가 정부에 반대한다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는 이유, 특정 이념적·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또는 정부에 반대한다거나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예술작품 또는 창작물을 창작, 전시, 상연, 상영하였다는 이유로 해당 개인이나 단체, 예술작품 또는 창작물 등을 일방적으로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 문화국가의 원리 및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지원 여부에 차등을 두는 것이므로 평등의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이러한 헌법상 원리들을 구체화한 「문화기본법」의 규정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를 반성하는 의미로,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어 2022. 9. 25.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는 폭행, 협박, 불이익의 위협, 위계 등을 행사하여 예술인 또는 예술단체의 예술 활동이나 예술 활동의 성과를 전파하는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합리적 이유 없이 예술지원사업에서 특정 예술인 또는 예술단체를 차별하는 행위, 예술지원사업의 지원 대상 심사에서 공정한 심사를 방해하는 행위 등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문체부의 이번 조치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입법 취지에도 반한다. 문체부의 이번 조치에 담긴 법적 문제점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정부가 예술인이나 예술단체를 직접 공격하지 않더라도 예술 공모, 전시 기관에 직, 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작품을 사전에 수상, 전시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사후에 부당한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가 재발할 우려가 있다.
-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구제하기 위해 부적법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적극적인 조사 및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인권위가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도 규정하고 있지 않은 ‘사건의 직접성과 현재성’ 요건을 이유로 본 사건의 진정을 이례적으로 각하한 것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 작품 등을 노골적으로 검열하려 하는 현 정부에 사실상 면죄부를 줌으로써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여야 할 인권위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에 다름없다. 인권위의 이번 각하 결정이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예술가들에게 발생할 자기 검열 및 표현 위축 효과를 더욱 부채질하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 인권위의 이번 각하 결정은 아동의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키고, 정부의 입맛에 맞는 표현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유죄가 인정된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의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회적 반성과 성찰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 할 것이다. 우리 모임은 이번 각하 결정을 내린 인권위를 규탄하며, 인권위에게 예술적,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충실히 보장할 수 있는 합당한 구제 조치 등을 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 5. 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