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우크라이나 난민 보호를 위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한다
지난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수 많은 이들의 생명과 일상을 앗아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3월 29일까지 1000여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였으며, 40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피난길에 나섰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현재까지 약 100명의 아동이 사망했으며, 가족과 헤어졌거나 이별한 아동들이 비참할 정도로 많다고 밝혔다. 난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신매매 및 성폭력 사례가 잇달아 보고된 가운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역시 여성과 소녀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병원, 대피소 등 명백하게 민간인이 거주하는 시설 뿐 아니라 유치원과 학교에까지 무분별한 폭격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민간인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인도법의 기본 원칙에 정면으로 위반하는 전쟁범죄다. 점령한 우크라니아 지역 내 약탈, 민간인 강제이송 등의 행위 역시 국제인도법 및 국제인권법에 전면으로 반하는 위법행위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역설적으로 국제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시민들의 공분에 힘입어 다수의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에 이어 브라질, 미국, 호주 등도 특별 인도 비자 발급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난민을 자국에 수용하고 있다. 일본 역시 3월 초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의사를 밝힌 후, 난민들의 신속한 입국과 안정적인 체류자격을 위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월 28일 자국 귀국이 어려운 국내 체류 우크라이나인을 대상으로 현지 정세가 안정화될 때까지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미 체류기간이 도과된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체류자격을 부여하지 않아 합법적인 생계유지의 방도를 사실상 봉쇄하였다는 우려가 있지만 신속하게 국내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보호조치를 시행하였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우리 모임은 러시아의 무력행위가 중단된 후라도 우크라이나 내 인도적 위기가 장기간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한국 정부가 모든 국내 체류 우크라이나인이 보호되는 방향으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한다.
정부는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에 나설 필요가 있다. 법무부는 3월, 두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 동포 등과 그들의 가족들에 대한 입국절차를 지원하고 가족 초청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애초에 가족초청이 힘든 비자로 국내에 체류하는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본국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닌, 박해로 인해 도피할 수 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국제사회가 비호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1951년 난민협약과 난민 글로벌콤팩트의 정신이다. 난민협약의 당사국이자 난민 글로벌콤팩트 채택을 적극 지지한 유엔 회원국으로서 한국 역시 난민을 적극 보호할 책임이 있다. 전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에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둘째로 ‘재정착난민 제도’를 시행하여 소수나마 매년 해외 난민을 직접 수용하고 있고, 지난해 8월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391명을 “특별기여자”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작년 말에 열린 유엔난민기구 고위급 회의에서도 이러한 정부의 노력들을 소개하며 “난민의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하지는 않더라도, 한국은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나아가 홀로 국경을 넘은 보호자 미동반 아동을 보호하고 이들의 가족재결합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전 세계 곳곳의 무력분쟁을 되새긴다.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 이후 1년이 넘게 목숨을 건 시민불복종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도 여성과 소녀에 대한 인권탄압을 비롯해 잔혹한 공포통치가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난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과 아동, 전쟁 상황 속에서 더 큰 박해에 노출된 성소수자, 피난 등의 상황에서 배제된 장애인,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등 더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존재는 더 쉽게 지워진다.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사회 곳곳의 가장 작은 이들과 소수자들의 권리 실현을 목적으로 국제협력의 연대를 강조한 국제인권법을 유념하며, 인권의 최저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국경의 경계를 넘어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 우리 모임은 분쟁상황에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아픔을 애도하며, 각종 전쟁과 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에 함께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과오가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2022년 4월 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