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 추진을 즉시 중단하라.
2022. 3. 29. 법무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촉법소년(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 연령을 만 14세에서 만 12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포함한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공약에서도, 국회 발의안에서도,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 하향, 소년범죄 처벌 강화가 거듭 언급되고 있다. 우리 모임은 거듭 후퇴하는 아동인권에 대한 국가적 인식 수준과 관계기관의 무책임한 부작위를 지적하며, 제대로 된 아동사법 조치를 고민하고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소년법으로 대표되는 아동사법제도가 도입된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되며, 결코 증거기반 형사정책(evidence-based justice)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모임은 이미 2018년 성명을 통해 촉법소년의 범죄 및 강력범죄 건수가 늘었다는 주장은 왜곡된 해석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2021년 김용판 국회의원이 경찰청 통계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6-2020년) 촉법소년의 송치건수는 평균 7,983건이며, 건수가 가장 많은 2020년도의 경우 9,606건이었는데, 검찰 통계의 2012년 촉법소년 송치건수 평균은 9,359건, 건수가 가장 많은 2012년은 12,799건이었다. 소년범죄의 저연령화, 범죄 발생율과 재범율이 계속하여 높아졌다는 어떠한 결과도 뒷받침하지 못하는 자료들이다.
현재 소년범죄에 대한 각종 통계로 제시되는 것들은 실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검찰의 통계가 다른 점에서 나타나듯이, 현재 촉법소년에 대한 통계는 사실상 부재하다. 소년보호사건의 경우 경찰에서 검찰을 거치지 않고 바로 법원으로 송치되거나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시설장 등에 의해 바로 법원으로 송치될 수 있기 때문에 각 기관마다 집계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경찰청 범죄통계와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 촉법소년 통계는 완전히 제외되었고,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에 나타난 경찰서장 송치사건 접수내용도 촉법소년과 ‘우범소년’에 대한 사건 전부를 체계적으로 보고하고 있지 않다. 최근에야 경찰청에서 ‘킥스(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 내부에 촉법소년 통계를 신설하고 통계 항목을 세분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촉법소년의 범죄유형도 주요 강력범죄를 중심으로 한 7개 유형으로 매우 단순화되어 있는 등 사건의 규모와 특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통계는 없다. 증거기반 아동사법제도 운영을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통계자료가 제대로 수집되지 않는 현실에서, 연령 하향을 통해 처벌적 규제를 강화하려는 단순한 결정은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나누어 차별과 편견을 고착화하는 혐오 정책의 일환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연령에 예외를 허용하는 관행은 여론의 압박에 호응하기 위해 만들어지며 아동 발달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관행을 폐지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형사미성년자 혹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곧 아동사법제도의 범위를 축소 혹은 배제하는 것과 연결된다. 아동사법은 발달과정에 있으며 회복가능성과 잠재능력을 보유한 아동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형사사법제도이다.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한 정책이란 아동을 중심에 둔 권리기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즉, 아동사법은 아동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기회를 만듦으로써 당사자의 사회복귀와 피해자의 회복을 도모하는 회복적 사법이 핵심이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아동사법은 소년법 제1조가 명시한 본연의 목적에 충실히 기여하고 있는가. 이미 현행 보호처분은 최대 2년의 소년원 송치뿐만 아니라 소년분류심사원, 청소년회복지원시설, 6호 시설 감호위탁처분 등으로 통제와 관리가 우선되는 자유박탈적 처우를 중심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미 현행법상 10세는 최대 6개월 소년원 송치가 가능하다. 과밀수용, 교육과 여가·문화생활의 박탈은 물론, 갇혀진 시설 내부에서 위계에 익숙해지고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수강명령, 사회봉사, 보호관찰 처분은 아동의 눈높이에서 아동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아동의 회복에 적합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범죄가 발생하기 전, 우리 사회는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가. ‘비행’과 ‘우범’, 그리고 ‘범죄자’라는 낙인을 씌우기 전에 아동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무가 충분히 이행되었는지 어디에서도 돌이켜보지 않았다. 그저 아동에게 행위의 결과만 지탄하는 우리 사회는 그 책임을 다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에게 형사책임을 질 수 있는 연령의 하한선을 최소 만 14세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14세보다 연령이 낮은 국가는 오히려 상향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는 아동의 두뇌 발달과 정신적 성숙도에 관한 과학적 연구 결과에 근거한 것이며, 실제로 덴마크, 조지아 등 일부 국가에서 2010년에서 2012년 중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을 낮추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소년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었다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동사법제도의 도입 이후 아동 범죄의 발생률이 실제로 감소하는 경향이 증거를 통해 입증되고 있으며, 소년에 대한 엄벌주의 경향이 소년의 재범율 등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경험은 다수 보고되고 있다. 한국도 2019년 9월, 아동권리협약 제5-6차 국가보고서 심의 결과, 형사책임 연령을 만 14세로 유지하며, 만 14세 미만인 아동을 범죄자로 취급하거나 구금하지 말 것을 권고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2018년 11월 형사미성년자 기준 연령 하향은 국제인권기준에서 강조하는 소년의 사회복귀와 회복 관점에 반하고 소년범죄 예방을 위한 실효적 대안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게 표명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아동사법 제도 운영과 관련하여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을 만 14세로 유지할 것 외에도 수많은 사항을 권고했다. 아동사법 전문법원 설립, 소년에 대한 공정한 재판 보장, 소년에 대한 법률지원 제도 마련, 우범소년 규정 폐지, 다이버전 제도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 아동과 성인의 분리 구금, 구금된 아동의 사생활 존중 등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구금은 최후의 수단으로, 최단기간만 행해져야 한다는 원칙도 거듭 강조하였다. ‘모든 아동이 타인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심을 강화하고, 아동의 사회복귀 및 사회에서 맡게 될 역할의 바람직성을 고려하는 등 인간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의식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처우받을 권리(아동권리협약 제40조 제1항)’는 아동기라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허투루 대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가치를 표명한다. 최소한 만 18세 미만이라는 아동의 정의는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아동기 전반에서 아동 최상의 이익을 실천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동의 회복과 사회복귀라는 아동사법제도의 이념은 아동 개인에 대한 제재나 엄벌이 아닌 국가의 아동보호 책무가 이행되었을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아동 권리에 정면으로 반한다. 소년을 위한 제도라면서, 그 어디에도 소년의 목소리는 없다. 정부와 국회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 추진을 즉시 중단하고, 아동사법 절차 전반에 관계된 모든 아동·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연령을 이유로 하는 혐오를 걷어내고, 모든 동료시민에 대한 지원과 보호의 책무를 다할 것을 촉구한다.
2022년 3월 3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