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변론센터·노동위][공동논평]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변경제한을 합헌이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2021-12-24 58

[공동논평]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변경제한을 합헌이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23일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횟수와 사유를 제한하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및 관련 고용노동부 고시 각 규정(약칭 ‘외국인고용법’)이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헌법재판소 2021. 12. 23. 선고 2020헌마395 결정, 사유제한에 대해서는 기각, 횟수 제한에 대해서는 각하). 불행히도 헌재는 10년 전 결정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먼저 헌재는 사업장 변경의 횟수를 3회로 제한하는 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4항에 관하여 기본권 침해의 현재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해당 부분에 대한 심판청구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직 3회의 사업장 변경만을 허용함에 따라 실제 이주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사업장 이동은 억제된다. 즉 법률이 직접적으로 청구인들의 법적 지위와 직업 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것인데, 이를 간과한 채 기본권 침해의 현재성 내지 가능성이 없다는 헌재의 결정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한편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것이 “중소기업 등이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내국인근로자의 고용기회나 근로조건을 교란하는 것을 방지하며,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효율적인 고용관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허용하는 경우 근로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에서의 인력부족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위험하고 취약한 사업장의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존엄성과 생명, 신체를 지킬 수 있는 근로환경을 탐색하고 조금 더 나은 일터를 선택할 자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과 제도의 정당성을 확인해준 것과 같다.

 

이주노동자 고용허가는 내국인 구직노력에도 구직이 불가한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내국인근로자의 고용기회나 근로조건 교란과는 직접 관련성이 없고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근로조건이 향상됨으로 인해 내국인근로자 등 전반적인 근로조건이 향상될 수 있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실증적, 논리적 근거없는, 미등록체류 방지를 위해 사업장변경제한이 필요하다는, 고용노동부조차 주장하지 않은 ‘괴담’ 수준의 판단근거를 헌재가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가장 열악한 일터는 청구인들과 같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대부분 채우고 있다. 국가는 이들의 일터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과 감독은 뒤로 제쳐둔 채, 이주노동자, 그 중에서도 청구인과 같은 비전문취업(E-9)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만 위험하고 위태로운 일터에서 끝까지 버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는 예외적인 사유를 일부 열거하고 있지만, 중대재해, 성폭력 등의 부당한 처우가 발생한 경우에도 긴급성, 계속성 등의 추가 요건을 충족해야만, 또 그것의 증명에 온전히 성공해야만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다. 그 결과 현실에서는 사업장 변경을 위한 사업주 동의를 얻기 위해 사업주에게 몇 백만 원을 주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입국했다는 사실이 이주노동자에게 강제노동의 족쇄를 채울 근거가 될 수 없음에도, 헌재는 눈앞의 현실을 외면한 채 또 다시 부끄러운 판단을 반복한 것이다.

 

사업장변경 제한은 원래 사용자에게 아무런 법률상 이익이 없는 사항(이주노동자의 재취업)에 대해 사업장 변경의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을 매개로 사용자의 이해관계를 전적으로 반영시키고, 반대로 이주노동자의 취약성을 현저히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이주노동자와 사용자의 사적 관계에 개입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은 부당한 구조는 강제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신체의 자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근로의 권리(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 및 직장선택의 자유,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기본권 침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며 단 하나의 실증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국가가 인간의 권리를 이 정도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본권 제한의 근거로 제시한 내용들이 단순히 상상이나 관념에 기반한 일방적 주장·의견이 아니라 실증적 연구와 실태에 대한 조사로 뒷받침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정부도 헌재도 그 정도의 성의(誠意)조차 보이지 않은 채, 단 한명의 전문가의 의견도 청취하지 않은 채, 서둘러 성급한 판단을 내던졌다.

 

2011년 헌재는 사업장변경제한의 위헌성을 다툰 이주노동자들의 청구를 외국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는 법률로써 그 제도의 구체적 내용을 규정할 때 비로소 구체화된다는 이유로 기각한 전력이 있고, 이번 결정에서도 그 입장을 고수하였다. 외국인력도입제도는 외국에서 인력을 모집하고 국내기업에 알선하기 위한 제도일 뿐임에도, 헌재는 이주노동자들의 기본권까지 외국인력도입제도에 의해 구체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민이 원하기만 하면 한국에 입국하여 취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민의 기본권이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볼 수 없다. 외국인력도입제도를 설계함에 있어, 그 도입제도를 통해 한국에 와서, 한국기업을 위해 일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함에도, 헌재는 2011년에 이어서,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이 간단한 이치를 외면하고 있다.

 

그만두지 못하는 노동자가 일하는 일자리가 양질의, 괜찮은, 제대로 된 일자리일 리가 없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일을 쉽게 그만둘 수 없다. 따라서 그만두려고 한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용허가제 하의 사업장변경 제한은 이처럼 이주노동자의 가장 소극적 방어수단마저 박탈하고 있다. 헌재의 결정은 결국 한국에서, 이주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예속되는 일자리를 용인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주노동자가 가는 일자리라서 괜찮다는 것인지, 한국인의 근로조건과 이주민의 근로조건이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고, 마치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것처럼 구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은 대한민국이 가입하여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국제인권규범인 인종차별철폐협약, 사회권 규약, 강제노동금지를 규정하는 ILO 협약, 자유권 규약 등에 위반된다. 이에 따라 ILO 등 국제기구는 사업장변경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현행 제도의 개선을 여러 차례에 걸쳐 권고하기도 하였다. 헌재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무를 매번 방기하는 것을 교정하는데도 실패한 것이다.

끝으로 이번 결정의 반대의견(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김기영)이 정확히 지적하였듯,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은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을 벗어나려는 이주노동자들을 현재 사업장에 묶어둠으로써 비로소 수익을 달성하는 사업의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이는 이 법의 목적 중 하나인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는 강제노동 상태의 이주노동자가 있어야만 유지되는 부실한 사업장을 국가가 누군가의 기본권을 통제함으로써 유지·존속시키는 비참한 결론에 이른다. 헌재가 현실에 눈 감은 탓에, 또 다시 누군가는 임금을 착취당하며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청하고 생명과 건강을 잠식당하는 장시간 노동과 유해·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묶인 채 일할 것이다.

 

2021년 12월 2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노동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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