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법조일원화 유예 법안의 국회 통과를 규탄한다
1. 기어코 국회는 법조일원화를 유예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켜줬다. 올해 여름, 법관이 되기 위한 법조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시키는 ‘법조일원화 무력화법’이 법원행정처의 로비와 국회 법제사법위(‘법사위’)의 졸속심사를 거쳐 통과되기 직전 극적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지 겨우 3개월여 만이다.
2.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된 법이 이례적으로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은 법조일원화에서 요구하는 법조경력을 5년 단축할 경우 법조일원화의 원래 모습은 사라지고 관료제적 폐해는 온존하며 ‘후관예우’의 폐해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2011년 입법되어 점진적으로 시행되던 10여 년 동안 법조일원화 도입 취지에 사실상 저항하는 수준의 운영을 해온 법원이 그와 같은 운영 현실을 아예 법적·제도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생떼와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즉, 지난여름의 ‘법조일원화 무력화법’의 통과 시도와 부결 과정은 법조일원화와 관련한 법원의 인식과 운영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었다. 실태가 드러났고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3. 그런데 법원행정처와 법사위는 그저 일보 후퇴 정도로 생각한 듯한 행태를 보였다. 본회의 부결로부터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올해까지 5년만 요구하던 법조경력이 내년에 7년으로 상향되는 부칙을 변경해서 7년 상향을 멈추고 5년 경력만 채우면 법관이 될 수 있는 시기를 5년 더 연장하는 법안을 민주당 송기헌 의원 대표발의로 발의했다. 법조경력을 5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본회의에서 부결시켰더니 5년 경력을 그대로 5년은 더 시행해야 한다는 ver2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법원의 엘리트주의, 관료주의적 법관상에 대한 관성과 폐해가 법조일원화를 망가뜨리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우선이었어야 했지만, 법사위가 취한 조치는 이미 부결되었던 법조일원화 무력화 법안을 조금 바꾼 ver2 법안을 통과시켜주는 것이었다. 법사위 논의과정에서 5년 법조경력을 ‘5년’ 연장하는 것이 ‘3년’으로 단축되긴 했지만, 법원이 5년 법조경력에 계속 집착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여전히 법조일원화 무력화 법안의 ver 2.1.에 불과하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4. 법조일원화에 필요한 법조경력 연차에서 ‘5년’만 요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법조일원화는 성적으로 줄세우기식 법원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법원이 아닌 곳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그 경험과 철학을 바탕으로 임용되어 독립된 법관상을 실현하는 제도다. 법조경력은 단지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쌓는 실질적 기간이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땠을까. 올해 신규 법관 임용예정자 중 재판연구원 경력자는 42%였다. 재판연구원 기간 3년을 다 채웠다고 한다면 이들 법관이 법조일원화에 맞는 경험을 한 시기는 2년일 뿐이다. 법무관과 재판연구원을 거치면 어떻게 될까. 법무관 3년-로클럭 2년-법관 임용도 가능하다. 5년 법조일원화가 아니라 2년 법조일원화 내지 2년 이하 경력만을 요구하는 법조일원화다. 이들에 대해서 시험이 아니라 법조경력을 기준으로 법관을 임용하는 제도 설계는 매우 어렵다. 법조일원화를 통해 벗어나려고 했던 성적 중심, 시험 중심의 법관 임용 방식에서 우리사회가 빠져나오기가 어려워진다.
5. 한편, 올해 신규 임용 법관 중 김앤장을 포함한 상위 7개 로펌 출신 변호사가 50명이었고, 전체 ‘법무법인 등 변호사’ 중 위 상위 7개 로펌 변호사 비율이 56.8%에 이른다는 통계는 법원행정처가 ‘5년 법조경력’에 집착했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것이자, 향후에도 이러한 기조를 지속·유지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법조일원화 시대에도 법원행정처는 법원에 올 사람을 대형 로펌에 뺏길지 모른다는 악몽을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법조경력을 7년 이상 요구하면 로펌에 정착해서 법관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물론 대형 로펌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고 ‘우수한 인재’라 호칭한다). 이런 엘리트주의적 사고와 욕망을 벗어나지 않는 한 3년 유예기간이 지나도 ‘법조경력 5년’에 대한 집착은 벗어날 수 없다. 이번 법안 통과 3년 뒤에는 법원행정처는 또 다른 ‘5년 법조경력 ver2.1.1’로 또다시 유예나 고정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는 막연한 법원 불신이 아니다. 법원행정처의 구체적인 말들이 이런 암울한 미래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가 발생하는 것이다.
6. 법원행정처의 요구를 국회가 받아들였다. 결국, 법조일원화 완성이 3년이나 늦춰졌다.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중단이 아니라 후퇴다. 그렇지만 3년 뒤 다시 법조일원화 무력화 법안 ver 2.1.1. 이 언급되지 않도록 할 일은 해야 한다. 이미 민변 사법센터는 지난 본회의 부결 후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입장을 낸 바 있다.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고, 그사이 변한 것은 법원행정처와 국회의 콜라보로 법조일원화가 후퇴한 것 뿐이다. 다시 한번 그때 밝힌 입장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1) 이번 일은 법조법조일원화에 맞는 법관 임용을 법원이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기대는 무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법원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낸 소중한 교훈이다. 10여년간의 법조일원화를 평가하고 도입 취지에 맞는 제도 정착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법원이 참여하되 법원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번 일의 교훈을 날려버리지 않는 첫번째 원칙일 것이다.
(2) 이번 법안 처리 과정은 사법행정개혁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줬다.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입법로비와 국회의원들의 무비판적 수용은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법행정개혁을 하지 않으면 사법제도가 위험해진다는 것이 이번 일이 남긴 또 하나의 교훈이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법원 청탁 법안 처리가 아니라 법원행정처 탈판사화의 제도화다.
(3) 법관의 증원 문제는 더 이상 미룰수 없는 시급한 문제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충실하고 신속한 재판을 위해 필요한 법관의 수에 대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논의가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 법관수의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법원개혁을 퇴보시키는 지렛대 논리로 또다시 등장할 것이다. (끝)
2021년 12월 9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소장 성 창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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