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변론센터][논평] 38년 전 불법을 묵인한 판결에 대한 전주지방법원의 재심개시결정을 환영한다.
[공익인권변론센터 논평]
38년 전 불법을 묵인한 판결에 대한
전주지방법원의 재심개시결정을 환영한다.
1. 전주지방법원은 2021. 9. 16. 38년 전 반공법위반의 공소사실로 징역 1년의 집행유예와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은 피해자(이하 ‘고인’)의 가족들이 2020. 5.경에 제기한 재심청구에 대하여 개시를 결정했다(전주지방법원 2021. 9. 16.자 2020재노3 결정). 전주지방법원은 수사관들에게 1982. 2. 8. 영장없이 고인을 연행하여 조사하고 구금한 것이 형법 제124조 소정의 불법체포·불법감금죄가 인정된다며 형사소송법 제 420조 제7호 제422조에 의하여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2. 고인은 1982.경 마을 반상회에서 이북의 수풍댐과 양곡창고가 우수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없음에도 이러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불법구금되어 수사를 받았다. 고인은 연행된 뒤 수사관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수사관들로부터 자백을 강요당하면서 구타, 고문, 협박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의사의 진단서와 기록을 통해 확인되었고 1심 법원은 1982. 7. 15. 수사관들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인정하며 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은 1983. 5. 18. 불법구금이 장기간이 아니고, 합리적 이유 없이 의사의 진단서를 신뢰할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파기하고 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했다(전주지방법원 1983. 5. 18. 선고 82노667 판결, 이하 ‘재심대상판결’). 고인은 상고하였지만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여 항소심 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항소심 법원이 불법구금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가혹행위를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한 채 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3. 고인은 유죄를 선고받은 이후 지속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2001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유죄를 선고받은 뒤 고인 뿐만 아니라 가족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가족들에게 지속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는 고인이 생전 작성한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가족들은 고인이 세을 떠난 뒤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증거를 수집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20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4. 전주지방법원의 재심개시결정은 과거 법원의 과오를 인정하고, 고인의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 하다. 그러나 전주지방법원이 재심대상판결문에 명시되어있기까지 한 불법구금 사실을 1년 4개월이라는 장기간의 심리 끝에 인정한 것은 피해자 권리구제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더불어 재심대상판결과, 수사기록, 고인과 고인의 가족들의 증언 등 명백한 증거와 정황에도 불구하고, 전주지방법원이 개시결정에서 수사관들의 가혹행위를 인정하는 취지의 설시를 하지 않은 것 역시 아쉽다. 고인의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수사관들의 가혹행위 등 수사기관의 불법이 법원의 결정을 통해 확인될 필요가 있다. 이후 이어지는 본안재판 절차에서 수사기관의 불법과 법원의 과오가 명백히 규명되어 고인의 훼손된 존엄성과 그 가족들의 고통이 하루 빨리 회복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21년 9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