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분단체제의 청산과 자주적인 대외정책의 시행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조치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 4.27판문점선언 3주년에 부쳐 –
3년 전, 온 겨레는 남북의 양 정상이 4월 27일 판문점에서 회담한 후 공동 발표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4.27 판문점선언), 이어 그 한 해 동안 두 차례나 더 진행되었던 남북간 정상회담과 싱가폴에서의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지긋지긋한 분단체제가 종식되고 남북간 화해와 협력, 공동번영의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는 크나큰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때 가졌던 기대와 희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그 따뜻한 봄날의 이전으로 되돌아가 버린 남북관계의 현실 앞에서 참담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작년 6월 16일, 4.27판문점선언에 의해 문을 열었던 개성 소재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어 무너지는 장면은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상징적이고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와 일부 남북관계의 전문가라는 자들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개최되었던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된 이후 북미관계가 진전을 보지 못함에 따라 남북관계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지금과 같이 동결되어 버린 남북관계는 북미관계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4.27판문점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의 눈치를 보고 전혀 변함없는 미국의 적대적 대북정책에 순응하면서 미국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우적거렸기 때문이었다.
4.27판문점선언과 2018년 6월 북미정상회담은 그 직전 해 11월 북측이 선언하였던 ‘핵무력 완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북측은 자위적인 핵억지력을 보유함으로써 과거와 달리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 정부에도 이제는 자주적인 자세로 나와 함께 새로운 남북관계를 열어 나아갈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2018년 9월 대통령이 15만여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등 극진한 환대를 받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불과 한 달여가 지난 무렵에 한·미 워킹그룹을 만들었다. 그 워킹그룹과 유엔사에 의해 우리 정부는 2019년 1월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 공급 등 인도적 대북지원을 저지당하고, 그 해 8월에는 경의선 철도 공동조사를 위한 방북도 저지당하는 등으로 남북간 합의된 사업들을 진행하지 못하였다. 또한, 북측의 최고지도자가 2019년 신년사를 통해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호응이나 노력도 보여주지 않았다. 북측이 자신들을 ‘적’으로 상정한 공격연습이라며 극력하게 반발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정기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러하니 북측으로서는 여전히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만 뭐라도 할 수 있는, 최고지도자의 담대한 제안마저 허공에 뜬 메아리로 만드는, 전시 군사주권도 없이 미국과 연합군사훈련을 계속하는 우리 정부에 대해 ‘더 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나왔고 이를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남북간 대화를 해야 한다’거나 ‘남북 정상간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올해 1월 개최된 북측의 제8차 당 대회에서 최고지도자가 ‘비본질적인 문제들’이라고 콕 찍어서 지적한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관련 사업에 아무리 매달리더라도 북측은 전혀 호응하지 않을 것이고 계속 무시할 것이다.
때문에, 지금 당장 우리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은 북측과 무엇을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대외정세나 미국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즉,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국내의 제도와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일이 바로 그러한 것일 터인바, 예컨대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과 1961년 흡수한 반공법을 골격으로 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중 관치적인 조항을 대대적으로 개정하며, 북측의 뉴스와 정보, 학술과 문화·예술 등을 남측에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것 등이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는 남북간 경제협력이 국제적인 대북제재의 예외로 인정받기 위한 조치를 적극 추진해야 하고, 주권국가로서 전시군사작전권을 회수해야 하며, 상전 노릇을 하고 있는 한·미 워킹그룹을 해체하고,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한·미동맹을 정세 발전에 맞춰 재정립하면서 한반도 종전선언의 추진을 위해 관련국들과의 협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3년 전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인 장소에서 남북 양 정상이 공동 발표하였던 4.27판문점선언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과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진 전환기적 정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그 꽃과 열매가 한반도에 그 향기가 온 세계에 퍼지기를 기대하면서, 정부에 대해 분단체제의 청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주권국가로서 자주적인 대외정책의 실현을 거듭 강력하게 촉구한다.
2021. 4. 27.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
위원장 오 민 애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