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입양 진실의 날’의 의미와 21대 국회의 역할
5월 11일 입양의 날을 맞아 해외입양인 당사자 단체는 ‘입양 진실의 날’ 성명을 발표했다. 해외입양인들은 입양인과 원가족으로부터 수집된 증언과 문서를 통해 친부모의 동의 없이 해외입양이 이루어지거나, 입양 관련 서류에 인적 사항이 허위로 기재되었던 불법적인 해외 입양 관행을 목도했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입양에 관한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립하여 과거의 불법적인 해외입양 관행을 조사하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입양의 날을 맞이해 입양인식 개선에 기여한 입양유공자 포상 명단을 포함한 보도자료를 발표했으나, 과거 입양관행에 대한 성찰이나 아동 입양제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언급은 담겨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입양은 1950년대 전쟁고아에 대한 민간 차원의 구제활동으로 시작되었다. 전후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했던 우리 사회는 전쟁고아와 가난으로 유기된 아동에 대한 보호를 민간 주도의 해외입양에 의존했다. 좋은 양부모를 만나 제대로 교육받고 건강하게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 돌아온 해외입양인의 성공담은 우리 사회에 해외입양에 대한 ‘신화’를 양산했다. 그 결과 최근까지 중국·에티오피아·우크라이나·우간다 등과 함께 미국으로 아이를 입양 보낸 ‘고아 수출국 톱 5’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년 입양통계에서도 보면 2019년 전체 입양 704건 중 해외입양이 317건으로 45%를 차지하고 있어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복지부 통계는 여전히 입양아동의 대다수가 미혼모 가정의 자녀인 사실을 확인해준다. 국내입양아동의 85%가, 해외입양아동은 100%가 미혼모 가정의 아동이다. 최근 미혼모 당사자와 지원 단체의 노력으로 미혼모가 자녀 양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적·문화적·경제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미혼모에게 현실적인 양육 지원책을 제공하고, 비혼 출산과 양육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을 개선하여 아동이 가급적 태어난 원가정에서 양육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2018년 정부는 입양의 날 하루 전날인 5월 10일을 ‘한부모가족의 날’로 지정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2013. 5. 서명한 「국제입양에서 아동의 보호 및 협력에 관한 협약(이하, 「헤이그협약」이라 한다)」도 태어난 원가정에서 아동을 보호하는 방안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원가정 보호가 불가능할 경우 국내입양을 고려하고, 국제입양은 최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또한 권한 있는 당국(공적 기관)에 의해 아동의 입양은 결정되어야 하며 국내 보호 절차를 모두 검토한 후 국제입양이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고 검토되었을 때에만 국제입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동 협약 제4조 a, b). 2011년 입양특례법의 전면 개정으로 수십년 동안 민간 입양기관에 일임되어 있었던 입양 절차에 처음으로 사법적인 심사가 개입되었고, 입양 전 친생부모에게 양육 지원 방안 등 사전 상담이 의무화되었으나 국제 아동인권기준에서 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입양 정책은 갈 길이 멀다.
우선 복지부의 아동입양통계에는 민법에 따른 미성년자 입양 통계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아동에 대한 입양법제도가 입양특례법과 민법으로 이원화되어 있고, 소관부처도 보건복지부와 법무부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헤이그협약과 같은 국제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입양특례법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문제는 민법상 입양 절차는 입양특례법보다도 더 공백이 많다는 것이다. 태어난 가정에서 양육될 수 없는 모든 아동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해당하므로 통일적인 법 적용이 이루어져야한다. 우연적인 요소로 아동 보호에 차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아동에 대한 입양절차를 통합적으로 규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동입양절차 상 입양허가에 대한 법원의 심사 이외에 공적인 개입이 부재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입양 전 친생부모 상담, 입양부모에 교육과 심사, 아동과 입양부모의 결연, 입양 허가 전 아동의 보호, 사후관리 모든 절차가 여전히 민간기관에게 일임되어 있다. 입양 절차를 민간 입양기관과 입양 가정의 선의(善意)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전문적이고 공적인 관리·감독이 가능하도록 입양특례법을 포함한 아동보호체계를 정비해야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20대 국회에 남인순 의원 대표 발의로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과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제안되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를 앞두고 있다.
입양부모 배경을 가진 국회의원이 21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화제이다. 6월에 개원하는 21대 국회에서는 과거 불법적인 입양 관행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해외입양 당사자의 목소리에, 국제적인 아동인권 기준에 부합하도록 입양절차상 공적 책임을 강화해야한다는 시민사회 목소리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적극적인 활동이 추진되길 바란다. 우리 위원회는 그동안 입양 절차 전반에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입양아동학대사망사건의 진상조사 활동을 조직하고 토론회를 개최하여 입양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을 제안했으며, 40여년만에 강제 추방된 해외 입양인을 대리해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과거의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입양절차에 대해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위원회는 입양 관련 법제도를 아동이익 최우선의 원칙에 입각하여 국제 아동인권 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선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갈 것이다.
2020년 5월 1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