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평]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 수사 경찰의 피의자에 대한
진술강요, 사생활 침해 등 인권침해를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환영한다
1.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제1위원회(위원장 최혜리)는 2019. 4. 30. 고양시 저유소 화재사건 수사 경찰의 피의자에 대한 진술강요, 사생활 침해 등 인권침해를 인정하였다. 또한 피진정인에 대한 주의조치와, 소속 직원들에 대하여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 확보를 위한 교육과 피의사실 공표에 관련한 직무교육을 할 것을 권고하는 결정을 하였다. 이에 우리는 환영의 뜻을 밝힌다.
2.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 피의자신문조서에는 경찰이 피의자에게 총 62회에 걸쳐 ‘거짓말하지 말라’ 또는 ‘거짓말이다’라고 말한 것이 기재되어 있다. 한편, 4차 피의자신문의 영상녹화자료 녹취록에 따르면, 경찰은 피의자를 추궁하면서 총123회에 걸쳐 ‘거짓말’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또한 피의자신문의 영상녹화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피의자에게 짜증내듯 질문을 던지고, 윽박지르고,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추궁을 하였다. 이는 사실상 경찰이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한 것이다. 경찰은 위와 같이 피의자 신문과정에서 진술을 강요하거나 진술의 임의성을 잃게 하는 언동을 하였고, 피의자의 진술할 권리, 진술한 권리 등을 침해하였다.
3.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2항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이나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진술거부권을 보장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제1항은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할 것을 정하고 있으며, 「범죄수사규칙」 제56조 제1항은 경찰관이 진술의 임의성에 관하여 의심받을 만한 방법을 취하여서는 안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의 진술강요는 이와 같은 수사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특히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경찰 조사는 대부분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있으며, 이후의 형사 절차에서 그 자백을 배척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고, 형사절차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방어권행사는 유명무실해왔다. 따라서 위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은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압적 수사관행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의미를 가진다.
4. 경찰은 2018. 10. 8.‘북부청 홍보계 취재안내 2보’라는 제목으로 피의자의 성명 일부, 국적, 나이, 성별 및 비자의 종류를 기재한 문자메시지를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냄으로써 피해자의 신원이 언론에 공개되도록 하였다. 경찰의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로 인하여 피의자의 사생활이 침해되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사는 국가 주요기반 시설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이 아닌, 외국인 근로자의 일탈과 신상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결국 경찰의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는 피해자 개인과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무관한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하였고, 실화의 가능성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하게 하여 안전관리 부실 관리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국가인원위원회의 위 결정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5. 이번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서 아쉬운 점은 피의자의 ‘통역을 받을 권리 침해’가 인정되지 못한 것이다. 경찰은 수사 당시 피의자에게 ‘한국말을 잘하는데 왜 통역이 필요하냐’라고 반문하였고, 결국 피의자는 통역 없이 수사를 받을 뻔했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통역의 존재는 필수적인 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수사과정에서부터 변호인을 선임할 여력이 없는 점, 수사과정에서 전문 통역인의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인 점을 고려할 때, 피의자의 ‘통역을 받을 권리’침해 역시 중요한 쟁점이다. 우리 위원회는 이와 같은 쟁점이 인정되지 않았음에 아쉬움을 표시하며, 현실에 존재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여러 잘못된 수사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아가 경찰의 피의자신문조서와 영상을 대조했을 때 부적절한 삭감, 수정, 변경 조치가 다수 확인되는데 이에 대한 상세한 언급이 없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6. 현재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은 검찰조사를 마치고 검찰의 기소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위원회는 이제라도 검찰조사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이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날린 풍등’에 대한 집중이 아닌, 우리 사회의 ‘부실한 안전관리’를 개선하는데 집중할 것을 촉구한다.
2019년 5월 1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