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낙태죄 헌법소원 의견서 제출
헌법재판소에서는 현재 낙태죄의 위헌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소원 사건을 진행하고 있고, 5월 24일 공개변론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위원회는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위헌이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합니다.
국가에게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아직 출생하지 않은 태아는 기본권 주체로 인정될 수 없으므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기본권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으며, 아무런 예외를 두지 않은 채 모든 임신중절을 처벌하는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재생산권, 건강권, 생명권을 침해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결정에서 모자보건법에서 예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침해성을 충족하여 합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하였으나,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게 되면 태아의 생명을 선별하여 침해가 가능하다는 모자보건법은 그 자체로서 위헌이기 때문에 이는 논리모순입니다. 또한 모자보건법은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하여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 혼인 여부에 따른 차별을 가하고 있는 위헌 무효인 법률이므로 모자보건법의 예외사유로는 낙태죄의 위헌성이 치유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우리 위원회의 의견을 경청하고, 어쩔 수 없이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절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현실을 고려하여 낙태죄를 위헌으로 선언하기를 기대합니다.
2018년 5월 1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장 위 은 진 (직인 생략)
[첨부 1]
의 견 서
사 건 2017헌바127
청 구 인 000
위 사건에 관하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의견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Ⅰ. 들어가며
여성의 임신중절은 일본 의용 형법 전까지는 조선시대, 대한제국에서도 처벌 대상이 아니었는데,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국회에서의 격렬한 찬반 논쟁 끝에 결국 태아의 생명권을 내세운 다수 의견에 따라 현행 형법과 같은 낙태죄 규정을 두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이 시행되었고 이는 1973년 우생학적인 사유, 윤리적인 사유, 범죄적인 사유, 보건의학적인 사유 등 임신중절 허용사유를 명문화하는 모자보건법의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출산억제 정책이 시행될 당시에는 모자보건법의 예외규정은 명목적이었고, 원하는 여성은 누구나 임신중절을 할 수 있었고, 보건소에서는 무료로 시술을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현저하게 낮은 출산율이 지속되는 가운데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에 의한 불법 낙태의 고발사건, 그에 맞춘 정부의 불법 인공임신중절예방종합대책 발표와 불법 낙태 단속 강화 의지 표명 등에 따라 사실상 암묵적으로 공공연히 행해지던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영아유기가 늘어나는 등 사회적 문제가 계속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임신중절과 관련하여서는 여성의 건강권이나 생명권, 자기결정권, 재생산권,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에 대한 고려라는 관점은 거의 전무했고 여성의 생명, 몸과 삶은 종교적 관념에서 유래한 태아의 생명이나 국가의 정책보다 하위에 놓인 채 그에 따라 통제되어온 것입니다.
2011년 진행된 제49차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11. 7. 29.자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권고문에서 “임신중절을 한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처벌 조항들을 삭제할 목적으로 임신중절과 관련된 법, 특히 형법을 검토할 것을 고려하고,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관리를 위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후 6년 동안 위 권고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2016. 9.경 보건복지부는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해 임신중절 수술을 한 경우’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여 적발시 최대 1년간 의사 자격 정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이 임신중절 수술 전면 중단을 선언하는 등의 일련의 사태를 촉발시키기도 했습니다(비판 여론이 거세어지면서 정부는 위 개정령안을 스스로 철회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단체와 시민사회 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였고, 2017. 9. 30.부터 시작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청와대 국민청원은 한 달 만에 235,372명이 청원에 참여하기에 이르렀고, 2017. 11. 26. 청와대는 이에 대한 공식 답변을 내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2018년 진행된 제49차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18. 3. 9.자 한국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문에서 “이전의 권고 (CEDAW / C / KOR / CO / 7, 35항)를 반복하며,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이 모성 사망과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관점에서, 당사국이 강간, 근친, 생명의 위협 그리고 / 또는 임산부의 건강, 또는 심각한 태아 손상의 경우 진행되는 임신중절을 합법화할 것”을 촉구하였고, “다른 모든 경우에도 임신중절을 비범죄화하고, 임신중절을 한 여성에 대한 처벌 조항을 삭제할 것”, “특히,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로 인해 합병증을 겪을 경우 등을 포함하여, 임신중절을 한 여성에게 양질의 수술 후 돌봄 체계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인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시금석이 될 만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이 의견서 제출일 현재, 186명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모임으로서 형법상 낙태죄가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의견을 모았고, 이 사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 2012. 8. 23. 선고 2010헌바 402 결정(이하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이라고 함) 논리의 반박을 위주로 형법 제269조 제1항의 위헌성(이하 낙태죄의 위헌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합니다.
Ⅱ. 낙태죄의 위헌성
1. 낙태죄로 제한되는 기본권에 관하여
가. 낙태죄로 침해되는 기본권 축소의 오류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헌법 제10조에 근거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이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을 전제로 한다고 하면서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내재하는 특별한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임신중절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형사 처벌함으로써 헌법 제10조에서 도출되는 임부의 자기결정권, 즉 낙태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고, 자기결정권의 침해 여부만을 검토하였습니다.
나. 여성의 재생산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모성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인 지원이 빈약하고 여성이 양육의 1차적인 책임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출산 이후의 여성의 삶이 상당한 기간 동안 양육의 노고로 점철되는 점을 생각한다면 낙태죄 조항으로 인해 제한이 되는 기본권을 ‘임부의 자기결정권’으로만 협소하게 설정할 것이 아니라 임부의 자기결정권 외에도 여성의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까지 확장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약 20년 전부터 유엔 등 국제회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재생산권은 ‘커플들과 개인들의, 그들의 자녀의 수와 터울을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서 인간의 재생산 활동에 관련된 포괄적 권리로 정의됩니다. 1994. 6. 카이로에서 개최된 UN ICPD(International Conference on Population and Development) 회의는 재생산권의 개념에 세 가지 윤리적 기초가 있는 것으로 정리한바 있는데, 첫째, 신체적 통합과 자기결정의 중요성, 둘째, 섹슈얼리티와 출산에 있어서 양성평등 원리, 셋째, 이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사회권 또는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조건 마련의 필요성입니다. 즉, 재생산권이란 개인의 혼인상태, 연령, 계급과 상관없이 성관계, 피임, 출산, 임신 종결을 비롯한 재생산활동에 대한 자유권적 권리이자 출산 이후의 건강한 양육을 위한 사회적 국가적 책임까지를 포괄하는 사회권적인 권리입니다.
대한민국이 1984. 12. 27. 비준한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16조는 “자녀의 수 및 출산간격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할 동일한 권리와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정보, 교육 및 제 수단의 혜택을 받을 동일한 권리”를 남녀평등의 기초 위에 보장하도록 하는 등 여성의 재생산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여성의 재생산권은 위와 같이 1987년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이후에 헌법연구를 통하여 새롭게 논의되어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기본권 개념으로, 우리 헌법에서는 헌법 제10조, 제34조 제1항, 제37조 제1항을 근거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
형법상 낙태죄는 예외 사유를 두지 않는 전면적인 금지를 규정하고 있고, 모자보건법 제14조, 동시행령 제15조에 의하더라도 임신 24주 후부터는 임신중절에 대해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조차 예외 사유를 두지 않는 전면적인 금지를 하고 있어서 여성의 건강권 나아가 생명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낙태죄가 존재하는 이상 여성은 임신중절을 할 경우 불법 수술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의사가 수술을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불법의 위험 속에 시행하기 때문에 안전성을 담보 받을 수 없어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연구 단체인 구트마커연구소가 지난 9월 의학전문지 ‘랜싯’(Lancet)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전 세계에서 한 해 약 2500만 건의 안전하지 않은 인공임신중절이 일어났고, 97%가 아프리카,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이뤄졌습니다. 연구진은 제대로 된 성교육의 부재, 피임에 대한 정보 부족, 안전한 임신중절에 대한 접근 제한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고 보았으며, 임신중절을 아예 금지하거나 임신부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만 허용하는 나라에선 4건 중 1건만이 안전한 방법으로 이루어졌고, 임신중절이 좀 더 폭넓게 허용된 국가에서는 10건 중 9건이 안전하게 시행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형법은 임신중절을 예외 없이 처벌하고 있고, 극히 제한적인 예외만을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의 허용사유는 결국 여성에게 입증책임이 주어져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임신중절은 안전하지 않은 방법에 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낙태죄로 인하여 제한되는 기본권에는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 역시 포함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라. 소결
이와 같이 헌법재판소의 2012년 결정은 제한되는 기본권의 설정 단계에서부터 제한되는 기본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하여 여성의 기본권 침해를 축소 내지는 은폐하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낙태죄와 관련하여 제한되는 기본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뿐만 아니라, 재생산권, 건강권과 생명권도 포함하여 침해 여부를 검토하여야 할 것입니다.
- 입법목적의 정당성 및 방법의 적합성
가. 형법의 과잉도덕화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임부의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한 효과적이고도 적절한 방법’이라고 판시한바 있습니다. 태아가 인간인가에 대한 철학적 생물학적인 논의와 별개로 태아의 생명도 존중하고 보호해야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생명윤리를 위하여 임신중절을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제안은 ‘형법의 과잉도덕화’가 아닌지 그 입법 목적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형법상 낙태죄는 아무런 예외를 규정하지 않고 모든 임신중절을 처벌하고 있다는 점에서 방법의 적합성을 부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재판소도 이전 간통죄의 위헌 결정에서 “특정한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여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도덕의 영역에 맡길 것인지 하는 문제는 그 사회의 시대적인 상황ㆍ사회구성원들의 의식 등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활영역에는 법률이 직접 규율할 영역도 있지만 도덕에 맡겨두어야 할 영역도 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 모두를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모든 임신중절 행위의 일률적 처벌을 규정한 형법상 낙태죄 조항은 각종 국제협약과 우리 헌법과 전체법체계의 확고한 기본질서인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와 보호’에도 저촉되므로 정책수단으로서의 적합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나. 낙태죄의 사문화 경향과 악용가능성
낙태죄의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가정하더라도 낙태죄가 입법목적을 달성 하는데 “효과적이고 적절한 방법”이라는 판단은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근거 없는 판단임이 여러 연구와 데이터에 의해 드러납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간 17만 건의 낙태 수술이, 국내 한 연구진에 따르면 2016. 10.부터 2017. 10.까지 연간 50만건의 낙태 수술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기소되는 건수는 연간 10여 건에 불과하고, 2012. 8. 헌법재판소 결정 후, 최근 5년간 80여건의 낙태의 죄 판결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집행유예 기간 중의 조산사 단 1건에 불과하며, 나머지 피고인은 선고유예(51.3%)와 집행유예(36.3%), 벌금 등의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처럼 사문화된 낙태죄는 그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의 작동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방법의 적합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낙태죄가 사문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낙태죄에 대한 위헌 결정을 통한 폐지가 절실한 현실적인 이유는 합법적이고 안전한 임신중절의 필요성 이외에도 낙태죄로 여성이 실제 입건되는 사례가 대부분 이별하려는 여성과의 관계 유지 또는 금전적 요구를 위한 협박 또는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2013년 진행한 낙태 상담 건 12건 가운데 10건이 남성의 고소 협박과 관련한 내용이었다고 하며 낙태죄의 고소 협박과 관련한 대부분의 상담은 결혼 약속을 한 커플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는 낙태죄가 의도했던 입법목적 달성에 기여한다기보다 악용되고 오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 임신중절의 비범죄화와 임신중절율의 상관관계
일부에서는 낙태죄가 사문화된 조항이라 할지라도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성도덕이 문란해지고 임신중절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도 “현재보다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되어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덕을 이유로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임신중절의 법적인 허용과 임신중절율 간에는 정비례관계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임신중절율의 증가 우려를 이유로 처벌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각 국의 통계를 비교해보면 오히려 임신중절의 법적인 허용과 임신중절율 간에는 역비례 관계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임신중절 합법화 국가에서 임신중절율이 낮게 나타나는 반면 임신중절을 처벌하는 루마니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유고슬라비아 등에서는 임신중절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특히 루마니아의 경우는 1966년 ‘디크리 770’(Decree770)이라고 불리는 임신중절금지법(이하 ‘임신중절금지법’)을 시행했으나 임신중절율 저하를 달성하는데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버려지는 영유아 수의 증가, 모성사망비의 급증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여 결국 1989년 동법을 폐지하였습니다. 유의미한 시사점과 판단 기준을 제공하는 루마니아의 경우를 상세히 살펴보면 루마니아는 1966. 강간, 근친상간을 통한 임신과 산모의 생명을 위협하는 임신, 이미 자녀가 4명 이상 있거나 산모의 나이가 45살 이상인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절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임신중절금지법을 시행했습니다. 임신중절금지법이 시행된 후 첫 4년동안 ‘조출생율’(인구 1천명당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이 14명에서 21명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그만큼 보육원 등 시설에 맡겨지는 아동의 수도 증가했습니다. 잠깐 늘었던 조출생율은 1970.부터 다시 감소했고, 1985. 경 동법 시행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으며, 동법 시행기간 동안 의사로부터 안전한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된 여성들이 불법 수술을 받게 되면서 매년 500여명이 감염으로 사망했습니다. 임신중절금지법 시행 이전인 1966.에 비해 1983. 루마니아의 모성사망비(임신 중이거나 출산 이후 7주 이내 사망하는 여성의 숫자)는 7배 높아졌고 1989. 경에는 인근 국가인 불가리아나 체코보다 9배 가까이 높아지는 등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치솟던 루마니아의 모성사망비는 임신중절금지법이 폐지된 다음 해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위와 같이 임신중절의 범죄화는 임신중절율의 저하와 그로 인한 태아의 생명 보호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임신중절율을 높이는 경우도 있고, 임신중절의 범죄화와 임신중절율의 저하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세계적인 통계로 확인되고 있으므로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 또는 수단으로의 적합성을 명백히 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피해의 최소성 또는 법익균형성
가.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의 내용
2012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특별한 논리적인 근거 없이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고, 인간으로서 형성되어 가는 단계에 있는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고 따라서 그 성장 상태가 보호 여부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임신 후 몇 주가 경과하였는지 또는 생물학적 분화단계를 기준으로 보호의 정도를 달리할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나. 태아의 생명권 인정 여부
형법학계의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의에서는 낙태죄를 존치하고 더 나아가 모자보건법상의 임신중절 허용사유를 모두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경우에조차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는 주장을 논거로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낙태죄 폐지에 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하든 태아의 생명도 소중하며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고, 국가의 의무로서의 태아의 생명 보호 의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법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민법은 사람의 시기(始期)를 ‘전부노출설’에 따라서, 형법은 사람의 시기(始期)를 ‘진통설’에 따라서 판단하고 있어서 현행법상 태아는 당연히 ‘사람’이 아니며 ‘독립된 인격체’가 아닙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는 기본권 주체가 될 수 없어 생명권의 주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아무런 논증도 없이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임을 전제로 하여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기본권을 대립 구도에 놓고 형량한 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헌법재판의 기본적인 심판 원칙을 위배한 것입니다.
다. 태아의 생명권 인정에 따른 논리 모순
별다른 근거 없이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로 보고, “그 성장 상태가 보호 여부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임신 후 몇 주가 경과하였는지 또는 생물학적 분화단계를 기준으로 보호의 정도를 달리할 것은 아니”라는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의 논리에 의할 때에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자기낙태죄의 합헌근거로 삼은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위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권은 절대적 기본권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제한될 수 없는 기본권인데,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을 가진 태아,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임신된 태아,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태아, 모체의 건강을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태아에게는 생명권을 아예 박탈하여 침해의 최소성이나 비례의 원칙을 따질 수 없는 침해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모자보건법의 존재를 낙태죄의 합헌 논거로 사용하였으나,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면서 모자보건법을 사유에 따라 생명권을 아예 박탈하는 위헌법률로 만드는 논리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태아의 생명권 주체성을 가정적으로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도 낙태죄로 인해 침해되는 여성의 기본권이 여성의 생명권을 포함하는 이상(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형법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모자보건법과 동시행령에 의할 때에도 24주 이상의 경우 아무런 예외가 없습니다) 태아의 생명권만을 공익으로 구성하여 국가에게 태아의 생명권만을 보호할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고 여성의 생명권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완전히 방기하는 결론이 되는 것이므로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는 전제에서도 낙태죄의 합헌성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라. 미 연방대법원의 태도
미 연방대법원도 사법 역사에 획을 그은 Roe v. Wade 판결에서는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에서는 ‘사람’이 세 번 언급된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이 단어의 사용은 태어난 이후에 적용 가능한 것들이다. 태어나지 않은 때에 적용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생명은 살아서 출생할 때까지는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은 항상 강한 지지를 받아왔다.”라고 밝힌 바 있으므로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로 보지 않았습니다.
마. 생명 발전단계에 따른 구분 가능성과 태아의 기본권 주체성
국내법에서는 배아, 태아, 영아, 사람, 사체에 따라 보호법익과 형량, 기본권 주체성에 분명히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9조는 잔여 배아는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 체외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면, 동일한 생명권의 주체에 대해 형량을 하거나 차이를 둘 수 없습니다.
한편, 헌법재판소 2012년 결정의 반대의견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의학계의 일반적인 통설에 따르면 임신 1주에서 12주까지의 태아는 사고나 자아인식, 정신적 능력과 같은 의식적 경험에 필요한 신경생리학적인 구조나 기능들은 갖추지 못하여 감각을 분류하거나 감각의 발생부위 또는 그 강도 등을 식별할 수 없고, 더 나아가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합하여 지각을 형성할 수도 없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현실에서도 임신 8주까지의 태아는 세포 분열을 시작하지 않아 ‘배아’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현행법상 엄연히 연구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배아까지도 생명권의 주체라고 선언한 2012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생명권과 여성의 기본권을 대립하는 구조에 놓고 형량하는 심각한 법리적인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바. 생명발전단계와 최소침해성의 원칙 위배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태아의 생명을 사람의 생명과 다르게 평가한 바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의료법상 ‘태아성감별 고지금지’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는 동일한 오류를 범하기는 했지만, “생명의 연속적 발전과정에 대해 동일한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법질서가 생명의 발전과정을 일정한 단계들로 구분하고 그 각 단계에 상이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낙태죄의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 적합하다고 가정하더라도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법익과 여성의 기본권을 형량하여 배아 또는 태아의 발전 단계에 따라 여성의 전적인 선택에 따라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최소한의 조항조차 두지 않은 현행 낙태죄 조항은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 수범자의 기대가능성, 자기책임원리
형법상 예외가 없는 낙태죄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임신으로 인한 임신중절도 학업의 영구 중단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에 굴복했다는 이유로, 연인과 헤어진 이후 발견한 임신에 대한 임신중절도, 이혼 후 발견한 전 남편의 아이를 임신중절한 경우도, “분유 값도 댈 수 없는”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의 임신중절 등도 비난가능하고 처벌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평균적인 시민이 감당할 수 없는 매우 높은 수준의 생명윤리를 형사제재의 위협을 통해 달성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육아에 있어서 경제적인 지원이 빈약한 복지 현실과 현재 의학기술상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피임 기술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양육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든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것이든 어느 경우의 임신중절도 한 개인이 형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는 별개로 분리 독립된 존재가 아니며 임신중절로 인하여 여성은 심각한 건강상의 침해를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과 깊은 죄책감까지도 짊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임신중절을 하게 되는 경우는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임신중절 이외에는 어떤 선택지도 찾을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임신중절을 감내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현행 낙태죄와 이에 대한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일반적인 평균인에게 기대되는 행위가 아닌 지나치게 과도한 수준의 윤리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것으로 수범자의 기대가능성을 무시한 것이고 따라서 헌법 제13조에서 도출되는 자기책임의 원리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4. 소결론
낙태죄로 인하여 제한되는 여성의 기본권은 자기결정권, 재생산권, 건강권과 생명권입니다. 형법의 과잉도덕화와 낙태죄 처벌의 실효성을 고려하면, 입법목적의 정당성도 의문이 들며, 방법의 적합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태아에게는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 국가의 태아의 생명보호 의무만으로는 예외 없이 모든 임신중절을 처벌하여 여성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없으며, 자기책임의 원리를 위배하고 있으므로 최소침해성, 법익균형성이 인정되지 않아 낙태죄는 헌법에 위반됩니다.
Ⅲ. 모자보건법의 위헌성 검토
1. 침해의 최소성과 모자보건법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형법이 낙태죄를 원칙적으로 처벌하면서도 예외적으로 모자보건법 제14조의 허용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태아의 생명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므로 최소 침해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단을 하였습니다. 모자보건법은 낙태죄의 허용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이므로 형법상 낙태죄의 위헌성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할 수도 있으나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모자보건법을 근거로 최소침해성을 부인하였으므로, 모자보건법의 위헌성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모자보건법의 위헌성
가. 모자보건법 제14조의 구조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의하여 인공임신중절이 허용되기 위하여는 ① 동조 제1항 각호 사유가 존재하고, ②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 포함)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③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④ 위 모든 요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임신 24주가 넘어서는 아니 됩니다(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 제1항). 이 중 어느 한 요건이라도 갖추지 못할 경우에는 모자보건법이 허용하는 인공임신중절이 아니라, 형법이 처벌하는 낙태에 해당하게 됩니다.
나. 죄형법정주의(명확성의 원칙) 위반,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은 ‘배우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동법은 ‘배우자’의 개념에 대하여 별도의 정의를 두고 있지 않으므로, 이는 민법상의 배우자와 같은 의미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배우자와 태아의 생부가 다를 경우, 동항의 ‘배우자’를 법률혼‧사실혼의 남성 배우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경우 다음과 같이 모자보건법을 합헌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① 동항 제1, 2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 즉 태아의 생모와 생부에게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또는 전염성 질환이 없음에도 임부의 배우자에게 위와 같은 사유가 있으면 임신중절이 허용됩니다.
② 동항 제3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 기혼자가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하여도 배우자의 허락이 없으면 임신중절을 할 수 없어 강간으로 인하여 임신한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한다는 결론이 됩니다.
③ 동항 제4호의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이나 인척간에 임신한 경우, 동의권자를 생부가 아닌 배우자로 해석한다면 태아의 모친도 부친도 아닌 제3자가 태아의 출생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갖는 결과가 됩니다.
위와 같이 모자보건법 제1항 제1, 2호의 우생학적 적응사유가 인공임신중절 허용 요건이라는 점에서는, ‘배우자’는 태아의 생부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배우자와 태아의 생부가 다른 사람인 경우에도 위 조문의 ‘배우자’를 ‘생부’로 해석하는 것은 어의의 한계를 넘은 해석이고, 만일 위 조항의 ‘배우자’를 태아의 생부로 해석한다면, 제3호의 경우 강간한 자의 동의를 얻어야 강간 피해자가 임신중절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되어 용납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동조의 배우자는 배우자와 태아의 생부가 다른 경우를 고려하지 않고 입법하여 결과적으로 배우자의 의미를 불확실하게 하였으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며, 아무런 상관없는 제3자의 결정에 의하여 여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다. 평등권 침해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은 각호 사유가 있으면서 임부 스스로 임신중절을 원하더라도, 배우자의 동의가 없으면 임신중절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남성에게 임신중절 여부를 결정할 최종적인 권한을 주는 것으로서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하며, 미혼인 임부는 상대 남성의 동의 없이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각호의 사유가 있으면 자기 판단으로 임신중절을 할 수 있으므로 기혼인 임부와 미혼인 임부를 다르게 취급하는 것으로서 혼인 여부에 따른 차별에 해당합니다.
배우자의 동의를 낙태죄의 위법성조각사유로 보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죄의 피해자를 태아가 아니라 오히려 남성 배우자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고, 이는 낙태죄의 보호법익을 ‘남자의 자녀에 대한 기대’로 보는 로마법의 태도로 밖에 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모자보건법 제14조 소정의 배우자 동의는 부성고려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부성을 고려한 것이라면 ‘배우자’가 아니라 ‘태아의 생부’로 규정하였어야 할 것이며, 혼인 여부 및 그 지속 여부를 묻지 않아야 하였을 것입니다.
즉 모자보건법 제14조의 배우자 동의 요건은 가족 구성원을 가장의 소유물로 보는 로마법적 시각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이는 인간의 존엄성(헌법 제10조), 성별에 의한 차별 금지(헌법 제11조 제1항),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헌법 제36조 제1항)을 중요한 가치로 하는 우리 헌법에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차별입니다. 남성에게 임부의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임신의 중단에 대한 합법성 여부를 최종 결정할 권한을 주는 것은 처를 무능력자로 보는 의용 민법의 태도와 그 바탕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동 조항으로 인하여 보호되는 법익은 남성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녀에 대한 단순한 기대인 반면, 여성은 동 조항으로 인하여 자기결정권, 재생산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건강권, 생명권뿐 아니라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도 침해받으므로 차별취급의 적합성이 인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차별취급으로 인하여 달성하려는 입법목적과 차별취급으로 인하여 침해되는 기본권 사이에 현저하게 균형을 상실하여 비례의 원칙에도 반합니다.
이미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기혼 여성을 남편의 소유물로 보아 임신 중단 여부를 남편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므로 이는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일 뿐 아니라,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을 차별하는 것인데, 이 부분 역시 목적의 정당성이 없고, 차별취급의 필요성, 비례성이 충족되지 않아서 이러한 관점에서도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입니다.
라. 여성의 건강권 및 생명권 침해, 법률유보의 원칙 위반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및 동법 시행령 제15조 제1항은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배우자의 동의 및 임신 24주 이내라는 제한을 두고 있어 임부의 건강권 및 생명권을 침해합니다.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 제1항은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동법 제14조의 모든 인공임신중절의 기간을 규정하고 있어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우에도 임신 24주 이내라는 주수 제한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은 인공임신중절 사유가 될 수 있는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의 구체적인 내용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유보하고 있을 뿐, 어디에도 대통령령에 주수 제한을 위임할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동법 시행령 제15조 제1항은 법률상 근거 없이 24주 이내로 인공임신중절 기간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법률유보의 원칙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마. 소결
이상과 같이 모자보건법 및 동 시행령의 예외적 허용사유는 그 자체가 여성을 남성의 종속물로 보는 사고를 바탕으로 규정된 것으로서, 그 내용도 불명확하고 여성과 남성을, 기혼여성과 미혼여성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할 뿐 아니라,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자보건법은 낙태죄의 위헌성을 제거할 적합한 수단이라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적게 제한하는 수단으로 태아의 권리와 임부의 권리 및 모성보호를 조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므로 형법상 낙태죄는 모자보건법과 함께 위헌일 수밖에 없으며, 모자보건법을 이유로 형법상 낙태죄의 합헌성을 주장하거나 합헌의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Ⅳ. 나가며
이상과 같이 낙태죄는 그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입법 목적 자체가 정당한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설령 입법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하여도 사실상 사문화된 법률로서 임신중절 건수를 줄이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협박이라는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고, 안전한 임신중절을 방해하고 있으며, 우리 헌법과 전체법체계의 확고한 기본질서인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와 보호’에 반하므로 수단의 적합성 요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침해의 최소성의 측면에서도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형법은 모든 임신중절을 금지하고 있지만 모자보건법에서 예외적 허용 규정을 두고 있어 임부의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취지로 판시하여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상술한 바와 같이 모자보건법상의 예외적 허용규정 자체가 극히 불충분하고 성별 및 혼인여부에 따라 여성을 차별하는 규정으로서 위헌이고, 여성의 기본권을 보다 덜 침해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하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됩니다.
법익의 균형성과 관련하여,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 대 임부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안일한 도식을 통해 낙태죄를 합헌으로 선언하였으나, 태아가 과연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며, 예외를 규정하지 않는 낙태죄에 의하여 임부는 단순히 자기결정권 뿐만 아니라 재생산권, 건강권, 생명권까지 침해되는데 낙태죄를 통하여 보호하려는 법익인 태아의 생명권은 기본권으로 인정될 수 없어서 태아의 출새에 대한 기대권이나 국가의 태아의 생명에 대한 보호 의무만으로는 법익균형성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