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부검영장 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논평 ]
검·경은 故백남기 농민에 대한 위법‧부당한 부검시도를 중단하라
2015. 11. 14. 경찰의 직사 살수행위로 인하여 의식불명에 빠진 이후 317일 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힘겹게 사투를 벌여 온 故백남기 농민이 2016. 9. 25. 오후 2시경 세상을 떠났다. 우리 모임은 故백남기 농민의 삶과 죽음에 깊은 애도를 드린다. 故백남기 농민은 우리 시대 지식인과 농민의 사표였다. 우리 모임은 故백남기 농민을 보내면서 그 분의 삶을 우리 활동의 지표와 나침반으로 삼을 것을 다짐한다.
그런데 故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은 생전에 사죄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패륜적 행태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2016. 9. 25. 새벽부터 병원 외곽과 통로에 경력들을 배치하는 한편, 가족과 대책위 관계자들 그리고 의사와 변호사들이 부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는데도 끝내 검찰에 부검영장을 신청하였다. 그런 행위를 제지해야 할 검찰도 그렇게 하기는커녕 경찰의 신청을 받아들여 오늘 새벽 1시 30분경 법원에 부검영장을 청구했다. 그 사이에 검시를 담당한 검안의의 의견서라도 검토하였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법원은 오늘 새벽 검찰의 부검영장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는 법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다.
고인은 2015. 11. 14. 경찰의 직사살수에 의한 압력으로 넘어지면서 의식을 잃었고, 피해를 입은 직후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며, ‘당시’ 검사결과 외상성 경막하출혈과 지주막하 출혈로 인한 뇌탈출증 및 두개골, 안와, 광대 부위의 다발성 골절이 확인되었다. 또한 고인이 경찰 직사살수에 의해 전도된 상황, 경찰의 집중 표적 살수에 의해 1미터 이상 뒤로 밀린 상황, 병원으로의 이송까지 그 전 과정이 투명하게 밝혀져 있어 어떠한 의문의 여지도 없었다.
유족은 고인의 사망이 경찰의 직사살수행위로 인한 것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부검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명백히 밝혀 왔고, 모임은 고인에게 직사살수를 하였던 충남9호 살수차량의 CCTV 영상, 그리고 송파소방서 구급활동일지, 초기 병원 CT촬영을 비롯한 일체의 진료기록이 사망원인과 결과를 명징하게 밝혀주기 때문에 부검을 하지 않고도 법적, 의학적 인과관계를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수차 밝힌바 있다.
고인의 뇌수술을 집도한 주치의도 2015. 11. 16.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과정에서 “함몰 부위를 살펴볼 때 단순 외상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임상적 소견으로, 그냥 서 있다가 넘어질 때 생기는 상처와는 전혀 다르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고인의) 발병원인은 경찰살수차의 수압, 수력으로 가해진 외상으로 인한 외상성 뇌출혈과 외상성 두개골절”이라면서 “외상 발생 후 317일간 중환자실 입원 과정에서 원내감염과 와상상태 및 약물투여로 인한 합병증 등으로 다발성 장기부전 상태이고 외상 부위는 수술적 치료 및 전신상태 악화로 인해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사망 선언 후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특히 어제(25일) 검사와 대리인, 의사들이 입회하에 실시된 검시과정에서도, ① 병원 입원 직후 뇌수술을 위해 절개한 두개골 부분(손바닥 만한 크기)에서 길이 5cm 이상의 골절상, ② 또한 안구 출혈, ③ 아래 이빨 3개가 일부 깨진 점 등이 발견되었다. 국립과학연구소 법의관은 ①은 처음 직사살포 직후 충격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다만 ②·③의 원인이 직사살포로 인한 것인지 여부는 당해 검시만으로는 확실치 않지만, 사고발생당시 의료기록과 CCTV 등을 종합하여 규명할 수 있으리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법의관은 병원 기록을 전혀 보지 않은 채 검시한 상태였음에도 80% 이상의 사인을 밝힐 수 있다고 하였고, 진료기록 등 제반 기록을 종합하면 충분히 사망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인의 사망은 사인이 명백한 경우로서 부검의 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함에도 검찰은 영장신청을 하여 고인에 대한 부검을 강행하려 하였다. 법원의 상식적 판단으로 부검이 강행되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지만, 이번 영장기각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이 보여준 태도에 대하여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경찰은 고인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정보를 입수한 직후부터 수천명의 경찰을 동원 ‘경찰벽’으로 병원 입구를 막고, 심지어 선종이후에도 문상객의 출입을 막았다. 이는 고인의 안타까움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도 저버린 경거망동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경찰벽부터 설치하여 참가자들을 자극하고 이로써 어떤 불상사를 유도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이다. 경찰이 이토록 민감하게 서둘러 경찰병력을 통하여 출입을 방해한 것은 오히려 경찰의 무리한 직사 물대포를 통한 살인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가해자인 경찰은 자중하고 또 자중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언론보도를 보면 여전히 검·경은 부검영장 재신청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내용과 더불어 법의관도 밝힌 바와 같이 고인은 이미 317일이라는 기간 동안 수술 등 지속적인 의학적 조치를 받아왔기에, 이제 와 부검을 하더라도 현재까지의 기록을 종합하는 것 이상으로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과관계 규명을 명분으로 부검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어떠한 의학적·법적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인은 가해자인 경찰의 폭력적인 살수행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르렀다. 응급실에 실려 왔을 당시 상태가 위중하여 수술조차 불요하다는 의사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317일간 사투를 벌여왔을 만큼 생전에 건강했던 고인이다. 이처럼 건강하던 남편,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의식불명 상태가 되어 힘겹게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유족들에게, 경찰이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가족들과 상의 한마디도 없다가 고인의 사망 후 일사천리 무리하게 경찰벽을 설치하고 부검을 신청하였다. 법원이 그 위법성을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차 감행하려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완전히 저버린 행위이다. 검·경은 먼저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예의를 갖추기 바란다.
고인의 피해상황에 대한 증거와 중환자실에서의 상세한 의료기록, 검안의의 의견서 등 고인이 사망하기까지 전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 있는 상황에서, 법리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부검절차는 불필요하다. 부검을 강행하려는 검·경의 시도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이제까지 수사를 소홀히해온 책임을 부검강행으로 면피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검·경이 고인과 유족 앞에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킬 뜻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기는 부검시도를 지금이라도 당장 멈추어야할 것이다.
2016년 9월 2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정 연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