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역사의 이름으로 고발한다. ‘합법’을 가장한 국가 폭력에게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을 !!!

2014-10-30 1,511

대법원 긴급조치 국가배상 판결에 대한 논평

 

 

[논평] 역사의 이름으로 고발한다.

‘합법’을 가장한 국가 폭력에게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을 !!!

 

 

대법원(민사 제2부, 주심 이상훈, 조희대, 신영철, 김창석 대법관)은 지난 10월 27일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가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2013다217962)에서 ‘법령이 위헌으로 선언되기 전에 그 법령에 기초하여 수사가 개시되고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이 곧바로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한 후,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로 수집한 증거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판결까지 받았으나 재심절차에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해당하여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면서 당시 수사기관이 긴급조치 9호위반 원고들에게 ‘옷을 벗긴 채 구타하거나 잠을 재우지 아니하는 등의 방법으로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하였다’면서 다행히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미 대법원(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2011초기689형사보상)은 ‘긴급조치 제1호, 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긴급조치 제1호가 해제 내지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반되어 위헌’이고,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이라고 판시한바 있다.

 

이는 유신 헌법이 3선 헌법을 절차적, 내용적으로 위반한 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유신헌법에 기한 긴급조치 입법행위 자체가 당시 헌법에 의하더라도 위헌이라는 것이다. 굳이 하수인 내지 수족에 불과한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를 논하지 않더라도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입법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불법행위를 저질렀음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형식적 의미의 법률도 아니라고 선언한 것 또한 긴급조치 발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 집권을 위한 위헌적, 위법적 입법행위임을 인정한 것이다.

 

최근 하급심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13가합544065판결)에 의하더라도 긴급조치는 위헌 무효이므로 ‘피고 대한민국의 공무원인 박정희 대통령이 긴급조치 제1호를 발령한 행위는 유신헌법 제53조에서 정한 발동 요건을 위반하고 긴급조치권의 목적상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그 직무집행 과정에서 저지른 위법행위’라고 판시한 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조차 대선 후보 시절 긴급조치 피해자 명예회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법원은 이만큼의 ‘용기’와 공약에도 미치지 못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난 6.26.에 선고한 대법원 판결(2013다95896판결)과도 모순된다.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이외에 ‘구 인신구속에 관한 법률’에서도 특정 범죄 위반에 대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는데, 위 법률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되어 수사를 받다 사망한 피해자 유족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국가가 위헌적인 법률을 제정하여 집행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였고 그로 인하여 구체적인 피해까지 발생하였다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하급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였다. 대법원은 유독 긴급조치와 같은 과거사 사건에서 재판부마다 다른 판단을 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유신정권이 법률도 아닌 긴급조치라는 ‘법’ 형식을 빌어 유신헌법·긴급조치를 비판하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감옥에 가두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을 집행하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만을 논하는 것은 법 형식논리에 빠진 독단으로 실질적 법치주의 원리에도 위배된다.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하 치안유지법을 위반한 피해자에게 고문 등 가혹행위가 없었다는 이유로 일본에게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할 것인가. 대법원은 나찌정권을 비판하다 구금된 피해자에게 고문 등 가혹행위가 없었다는 이유로 국가배상 책임을 부인할 것인가. 독일의 법실증주의가 나찌정권에 법 논리로 협력한 전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유신시절의 비극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라는 법적 외형을 만들고 국민들에게 ‘합법’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는 점이다. 과거 유신체제가 ‘긴급조치’라는 형식으로 법원의 판결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지금이라도 司法府가 司法部였던 유신시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입법행위 내지 대통령의 불법행위 책임을 간과한 이번 판결은 긴급조치가 위헌·무효라 하더라도 국가배상책임이 부인될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유신에게 면죄부를 준 반역사적 판결이며,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상의 재판상 화해규정에 이은 두 번째 긴급조치 위반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대법원은 이제라도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뿐만 아니라 공무원인 박정희의 위헌 무효인 긴급조치 발동자체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과거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할 의무를 외면하고 유신·긴급조치에 조력하였던 역사를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전원합의체 등을 통하여 ‘법’ 형식을 통한 ‘합법적’ 국가 폭력에 대하여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명백히 인정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하는 바이다.

 

 

2014년 10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논평] 대법원+국가배상+고발 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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