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논평]
인권위원 선출의 책임성, 투명성과 다원성 보장이 여전히 부족하다.
–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 및 「가이드라인」 이행권고”에 대하여
1. 국가인권기구 조정위원회(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 of National Institution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ICC) 산하의 등급승인소위원회(Sub-Committee on Accreditation, 등급승인소위원회)는 2014. 3. 18. 국가인권위원회의 승인여부를 보류하는 결정을 하였다.
2. 등급승인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심사를 보류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권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권위원의 선출과 관련하여, 파리원칙(Paris Principles)에 부합하는 명백하고 투명하며 참여적인 선출과정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2) 인권위원의 구성과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성별의 다양성 외 다른 방식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3) 국가인권위원회 구성원의 면책과 관련하여, 구성원의 업무상 선의에 의한 행위에 대한 면책조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3. 국가인권위원회는 2014. 6. 23. 등급승인소위원회의 위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답변서를 제출하였고, 그 수용의 결과로 2014. 9. 22.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지명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 및 「가이드라인」 이행권고(이하 ‘이행권고’)”를 결정하였다.
4. 위 이행권고는 (1)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에게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법률안’)」에 따른 개정을 추진할 것과 (2)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에게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지명의 원칙과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반영하여 각 기관의 내부규정을 마련할 것을 내용으로 한다.
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소수자인권위원회’)」는 등급승인소위원회의 권고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용의견 및 이를 위하여 의결한 이행권고의 일부 내용이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의 무기능과 시민사회의 불신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6. 그러나 위 이행권고는 아래와 같이 등급승인소위원회의 권고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1) 가이드라인과 내부규정은 구속력 없기 때문에 등급승인소위의 권고와 부합하지 않는다.
○ 무엇보다 먼저, 등급승인소위원회의 권고는 권고내용을 법률화(legislative text)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위원 구성 및 임명과 관련한 실질적인 내용을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규정하고 있다.
○ 나아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위원의 임명권한을 보유하는 대통령 등의 기관의 ‘내부 규정’에 위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규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에서 ‘내부 규정’의 의미는 외부적 구속력이 없는 규범을 의미한다. 인권위원 구성 및 임명의 실질적인 내용을 가이드라인에 규정하고, 나아가 이를 외부적 구속력이 없는 ‘내부 규정’에 포함하게 되면 그 구속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실효성이 없게 된다.
○ 이는 “법조항, 규칙 혹은 구속력있는 행정지침에 적합하기 포함되어야 한다”는 일반견해에 배치되는 것이다.
(2) 인권위원의 다원성 보장 및 선임에 시민사회와 NGO의 참여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파리원칙상의 내용을 개정법률안 및 가이드라인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정법률안과 가이드라인에 시민사회(civilian society)라는 단어가 대부분 빠졌고, “다양한 사회계층”만이 포함되었다.
○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이를 의도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다시 말하여 시민사회와 NGO에 의한 통제를 피하기 위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의도적으로 이를 누락시킨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법률안 공청회”에서 배포한 「가이드라인 안」 및 2014. 10. 2. 실시한 “가이드라인 설명회”에서 배포한 「가이드라인 안」 에는 모두 “시민사회의 참여와 보장”내용이 다수 포함되었음에도 2014. 10. 15. 최종 발행한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내용이 모두 삭제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3) 인권위원 선임에 투명성과 참여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위원장뿐만 아니라 상임위원까지 국회의 인사청문회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법률에 규정하고 선출권한이 있는 각 기관에 후보자 추천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권고하고 있다.
○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가이드라인과 내부규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또한 후보자 추천위원회의 설치는 각 기관의 재량에 놓여있다. 따라서 각 기관이 후보자추천위원회를 설치하는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인권위원 선임의 투명성과 참여성이 보장되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
(4) 인권위원 등의 면책조항은 기능적 면책을 실현하는데 미흡하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위원 또는 소속 직원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면제하는 규정을 개정 법률안에 규정하였다.
○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위 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기존의 ‘국가배상법’을 통해 민사상 면책이 제공된다. 그러므로 이 조항의 신설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등급승인소위원회의 권고의 취지는 인권위원 및 소속직원이 정치적·사회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소신 있는 발언과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라는 것으로서 민사상 책임면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 등급승인소위원회가 권고하는 기능적 면책은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가능하다. 등급승인소위원회가 제시한 기능적 면책에 대한 모범례처럼 위원 등의 행위에 대한 형사상 면책을 법률로 규정하고, 면책의 철회 판단권한을 다른 국가기관에게 부여하는 방식이 제시될 수 있다. 예컨대, 위원 등의 행위를 열거하고 그 행위 수행에 대한 합법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형사상 위법성을 조각시키거나, 형사소추 자제 내용을 가이드라인에 둠으로써 간접적으로 위원 등의 면책을 보장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위원 등의 행위에 대한 민사상 면책을 개정 법률안에 추가하는 것에 그쳤는데, 이는 이미 보장된 민사상 면책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등급승인소위원회가 기능상 면책 규정을 권고하는 취지에 부합하였다고 볼 수 없다.
7. 이상의 점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이행권고는 등급승인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한 충분한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 인권위원 선출과 임명의 투명성과 참여성, 인권위원의 다원성은 이미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누차 지적되어 온 문제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소위원회의 권고를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로부터의 의견청취가 현재와 같이 명목적이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4. 10. 27.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