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 6만 선생님의 든든한 파수꾼, 강영구 변호사를 만나다.

2014-10-10 2,850

지난 9월 19일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통보처분을 항소심 판결 선고시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는 결정과 더불어 법외노조통보처분의 전제가 된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서도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였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노동3권을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가 심각하게 우려되던 상황에서 단비와도 같은 결정이 아닐 수 없었는데요 2010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탄압에 맞서 밤낮없이 전교조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전교조 상근 변호사 강영구 회원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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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반갑습니다~우리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가 강변호사가 몸이 좋지 않아서 한 번 미뤘잖아요. 지금은 어때요?

 

강영구 흐, 죄송합니다.그 날은 전날 밤을 새서..지금은 괜찮아요

 

김지미 밤을 새서 일을 하다니..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밤을 자주 새나요?

 

강영구 요즘은 그래도 줄었는데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밤샐 일이 생기네요 전교조가 6만 조합원인데 거기에 유일한 변호사다보니 개별 조합원 상담, 17개 시도 지부에서 오는 상담 이런 것만 해도 만만치 않고, 소송도 있다 보니 일이 늘 적지는 않은 것 같아요 .

 

김지미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뉴스레터에 나갈 회원인터뷰인데 최근에 뉴스레터 보셨나요?

 

강영구 직전 뉴스레터에 변영철변호사님 인터뷰를 봤는데 변영철 변호사님은 엄청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진지한 스타일이라 재미가 없을까봐 걱정이예요.

 

김지미 그 전에 오세범 변호사님 인터뷰를 봐야 해요. 강변호사보다 훨씬 진지하셨는데 아주 유익했어요. 그냥 수다 떤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이야기하면 돼요.

 

김지미 강변호사와 저는 사적으로는 연수원 동기이고 언니, 동생 하는 사이인데, 어렸을 때 이야기 같은 건 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강변호사의 학창시절은 어땠어요?

 

강영구 저는 그리운 학창시절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학교가 너무 숨이 막혀서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교문 들어서면서부터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머리길이, 치마길이, 수업시간표. 그래서 영어시간에 국어책 보고 있으면 영어선생님이 맨 앞에 앉아서 다른 책 보고 있다고, 예의 없다고 혼내시는데, 저는 사실 제가 그 시간표에 동의한 적도 없고, 선택한 적도 없는데, 왜 그 시간에 제가 꼭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지 납득이 잘 안 가더라고요. 그리고 또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이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게 많았어요. 시간이 아까웠죠. 그 때 유일하게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했던 것이 철학책 같은 거 읽는 거였어요. 그런 책들 읽으면서 버텼던 것 같아요.

 

김지미 보통은 학교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 되는가 보다 하잖아요. 내가 왜 이걸 해야 해? 왜 내가 이걸 결정하면 안 돼? 이런 생각을 못하고 학창시절은 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요즘은 대학생이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그런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자아가 빨리 깼다 이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원래 타고난 기질이 그런가요 아니면 환경의 영향인가요?

 

강영구 아, 저도 하라고 하면 하긴 했어요. 속으로 딴 생각을 해서 그렇죠 (웃음) 근데 학교는 다들 숨 막혀 하지 않나요? 머릿속으로 이렇게 책상을 박차고 나가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저 혼자만 그런 건가요? (웃음)

 

김지미 그 체제 안에서 순응하고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보통이지 않을까요. 저 같은 경우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고등학교 때가 제일 재밌었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다녔거든요. 나는 공부를 안 하고 놀았기 때문에 공부만 해야 하는 그런 답답함은 없었다 이런 저차원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죠. 내가 결정을 해야 하고 철학책을 고등학생이 읽는다는 이런 생각은 감히 못했었던 것 같아요. 철학책이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어요(웃음).

 

강영구 어떤 공간이든 그 공간은 거기에서 가장 약한 고리만큼 강한 거라고 하잖아요. 저처럼 밖에서 강제하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또 학업스트레스로 죽음을 고민하는 친구들까지 있는건데, 그러면 학교는 그런 친구들도 적어도 지낼 만한 공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김지미 이게 근본적으로는 교육체제의 문제인 것인데요. 예전에 전교조 처음 생겨났을 즈음에는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고등학생들이 단체를 만들어 활동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강변호사는 고등학교 때 그런 식의 운동이나 활동을 한 건 아닌가요?

 

강영구 제가 학교 다닐 때 저는 주변에서 그런 단체나 활동가를 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아수나로와 같은 청소년단체도 저 졸업하고 생긴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정말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때 탈학교, 대안교육을 고민하는 단체들이 있었으면 전 아마 도움을 받아서 학교를 그만뒀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김지미 그럼 이렇게 힘들게 학교를 다닌다는 것을 집에서도 알고 계셨나요?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든지 이런 말을 했으면 부모님이 굉장히 걱정하셨을 것 같은데..

 

강영구 기본적으로 착한 딸 콤플렉스도 있고 주변에서 기대하면 실망시키는 거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겉으로는 모범생으로 행동했어요. 예쁨 받고.(웃음) 그래도 학교에서의 억압이나 통제의 경험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어요. 내가 여기에 순응을 해야 할지 아니면 저항을 해야 할지 그런 걸 고민을 많이 했고 그래서 대학 전공도 철학을 선택하게 되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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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대학에 들어가서 철학을 공부하는 삶은 어땠어요?

 

강영구 대학 때 철학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동아리에서 사람들 만나면서 배운 게 제일 많은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 때 고민했던 것이 내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구나, 사회의 문제, 구조의 문제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김지미 철학 동아리라고 하면 사회과학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권으로 흡수가 되는 것이 보통이잖아요. 강변호사도 그랬나요.

 

강영구 대학 들어가서도 저는 입시폐지 운동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서열화 문제가 대학 들어와 보니까 또 노동시장 서열화와 맞닿아 있는 거에요.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크고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못하면 인간 대접 받고 살 수 없으니까 그렇게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는 거고,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다 보니 입시위주의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거잖아요. 제 고민을 이어가다 보니까 결국은 노동운동도 해야겠다, 내 고민을 풀려면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해야겠다, 거기까지 나가더라고요. 그리고 동아리 세미나에서 맑스 책을 읽었는데, 거기 보니까, 오전에는 일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토론하는 뭐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런 삶이 가능하다면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꿈 같은 것도 있었죠.

 

김지미 그러다가 법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사법시험를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뭐에요?

 

강영구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사회를 바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저는 사실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어요. 사회과학 쪽 아니면 정치학 쪽으로요.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는데 생계유지가 어려울 수 있으니까 자격증을 하나 가지고 그걸로 생계유지를 하고 좋아하는 공부를 해야지 생각이었어요.

 

김지미 남들은 죽자사자 하는 걸 단순히 자격증으로 생각하다니~(웃음)

 

강영구 자격증 중 제일 유명한 게 변호사 자격증이었으니까. (웃음) 그 때 제가 알고 있는 게 그랬어요. 사실 노무사 자격증이 있는 줄은 한참 뒤에야 알았어요. 노무사 자격증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노무사시험을 준비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암튼 그래서 저는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잘 알고 거기에 대해서 매력을 느껴서 이 길로 온 건 아니어서, 이렇게 힘든 길인 줄 미처 몰랐어요. 완전 판단 미스였어요. (웃음)

 

김지미 그렇게 해서 사법시험 합격을 하고 연수원에 들어왔는데 연수원이라는 체제 자체가 적응하기 힘들기로 유명한 집단이고 지금까지 강변호사가 이야기 한 것도 그렇고 제가 알고 있는 강변호사도 그렇고 정말 적응하지 힘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강영구 맞아요. 제가 언니한테 많이 놀아달라고 그러지 않았어요?(웃음) 진짜 고등학교 때 줄 세우는 것도 숨이 막혔는데 머리가 커서 줄 세우니까 더 못 견디겠는 거예요.

 

김지미 연수원에서 살아남은 나만의 비법이 있다면? 고등학교 때는 철학책을 읽었다고 하셨고요.

 

강영구 저는.. 그냥 혼자 드라마 보기?(웃음) 발리에서 생긴 일 이런 거는 연수원 기숙사 방에서 혼자 다시보기로 여러 번 봤어요. 현실이 힘드니까 드라마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죠.

 

김지미 우리가 연수원 수료할 때 즈음을 되돌려 보면 다들 어디 가서 뭘 해야 하나 고민할 때 강변호사는 주저 없이 민주노총 법률원으로 갔잖아요. 내가 민주노총 법률원이라든지 이런 단체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언제하게 된 거예요?

 

강영구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막연하지만 자격증을 가진 활동가 일을 하고 싶었어요. 활동을 하면서 변호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어디일까 하니 자연스럽게 민주노총 법률원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김지미 그렇게 법률원에서 1년 9개월 정도 있다가 전교조로 옮겼는데요, 옮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강영구 제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같이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거든요. 근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학교자율화조치’라고 해서 학교단위에 있었던 ‘0교시 금지 지침’, 그리고 ‘사설모의고사 금지 지침’ 등을 다 폐기해요. 규제완화의 일환이었죠. 그러면서 0교시가 공식적으로 부활이 되고 그 때 학생들이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라고 하면서 촛불집회에 나왔어요. 그 때 거리에서 학생들을 보면서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구요. 또 그 해 말에 전국 일제고사가 부활되었는데, 일제고사 당일 체험학습을 실시했다는 이유로 교사 열 몇 분이 파면·해임을 당하세요. 그 때 그 분들의 해임취소소송 공동변호인단으로 참여하면서 전교조랑 처음 인연을 가지게 되었죠, 이듬해에 용산참사, 쌍차 정리해고 등으로 시국선언이 이어졌는데, 당시 교사시국선언으로 88명의 선생님들이 기소가 되고 중징계가 되었어요. 대규모 사건이기도 했고 그 대응을 하면서 전교조도 내부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침 제가 민주노총법률원이면서 민변 노동위와 교육위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이야기가 되어 상근 변호사로 가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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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이명박 정부가 전교조 상근 변호사의 수요를 창출해줬네요(웃음). 고마워해야 하나요? 교육현장과 관련해서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이 남다른 사람이었고 민변에서도 교육위, 노동위 이중적을 가진 회원은 강변호사가 유일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시대의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강변호사에게 딱 맞는 자리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네요. 전교조의 상근변호사는 어떤 역할을 주로 하나요.

 

강영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니까 기본적으로 노동조합 관련한 업무가 있고요, 또 교직원 노동조합인 만큼 교육정책과 관련한 검토, 소송업무가 있지요, 제가 전교조에 처음 들어올 때는 전교조가 99년 합법화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이라 저는 전교조가 탄탄한 기반위에서 활동을 하는 노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까 흔히 말하는 노동3권이 하나도 제대로 보장되는 게 없는 거예요. 아시는 것처럼 단체행동권은 아예 법에서 금지가 되어 있고요, 단체교섭 관련해서도 현재 교육부는 법령,예산,정책 관련 사항은 ‘비교섭사항’이라고 해서, 교섭요구안에 교육정책 관련 사항이 있으면 아예 교섭테이블에 나오지를 않아요. 그런데 사실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교육정책이거든요. 전교조 본부와 교육부 사이 단협이 2002년 한 번 체결되었고, 그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체결되지 못했어요. 그리고 이제는 가장 기본적인 단결권조차도 최근 해직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이유로 이 상황에 이른 거잖아요.

 

김지미 교원의 노동3권은 그야말로 유명무실이네요..정부가 그렇게 선생님들에게만 유독 엄격하게 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실 다른 분야도 그렇긴 하지만.

 

강영구 과거에는 ‘교사가 노동자인가’ 라는 질문이 실제 학교 시험문제로도 나왔다고 해요. 그 때 정답은 X 였죠. 그런데 요즘은 ‘교사가 과연 시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요. 정부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소되고, 정당을 가입했다는 이유로 기소되고, 선거일에 투표하는 거 외에 집단적으로 정치적 주장을 한다거나 정당가입, 선거운동 등 일체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거든요. 근데 이처럼 교사의 노동기본권, 정치기본권이 제한되는 이유는 특히 교사에게 이중의 제한의 빌미가 주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나는, 대부분의 교사가 국공립학교 교사로 공무원 신분인데요, 그 공무원 신분으로부터 오는 제한이 있어요, 과거 공무원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 즉 왕의 하수인이라고 해서 법치주의가 아예 적용이 안 되는 영역이라고도 보았거든요. 근데 그 잔재가 아직 청산이 안 된 거죠. 또 하나는,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적 문화권, 권위주의적 문화권 안에서 교사상으로부터 오는 제한이 있는 거 같아요. 말하자면 교사가 어떻게 빨간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냐, 정부를 비판하냐 뭐 그런 시선이 있는 거죠.

 

김지미 그리고 그럴 때 정부나 언론이 항상 써먹는 건 교사가 이러이러하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거잖아요. 그런 논리에 동조하는 부모님들도 있고..그런 걸 볼 때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을 너무 무시한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떠세요.

 

강영구 말씀하신대로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제약하는 주요한 논리가 학생의 미성숙함인데요, 교사가 일방적으로 무슨 정당의 선전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정치적 주장과 그 논거들을 접하도록 하고, 고민하게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난 연말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중고등학교에도 대자보가 붙었거든요. 그런데 대자보가 붙자마자 학교장들이 그걸 바로 막 뗐어요.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자보가 학생들에게 무슨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거에요? 입시과목 아닌 거에 한 눈 팔게 하니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건가요? 저는 오히려 학교가 그렇게 대자보를 뗄 것이 아니라 그 대자보를 통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시민교육의 기회로 삼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교육이죠. 69년 미국 판례인데요, 학생이 베트남전 반대 완장을 차고 학교를 등교하니까 학교가 지금 우리나라처럼 징계를 했어요. 여기에 대해서 미국 대법원이 그 징계처분이 위법하다고 하면서 한 말인데요, “학교는 전체주의의 요새가 아니다. 학생은 정부가 정한 지식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폐쇄회로가 아니다. 따라서 학교는 그 어느 곳보다 사상의 자유로운 시장이어야 하고, 비판과 토론이 보장되어야 한다”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전교조 교사들이 다양한 정치 문제, 공동체의 문제에 관하여 학생들에게 토론의 기회를 주고,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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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저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 전교조가 생겨날 즈음에는 `전교조선생님=참교육을 실천하는 선생님`이란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요즘은 그 때에 비하면 그런 의미가 약간 퇴색된 느낌이 있어요. 세력이 조금 줄어든 것 같구요

 

강영구 99년 합법화 직후 2001년, 2002년 그 때는 조합원 수가 9만까지 갔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6만이니까 줄어든 것은 맞죠.

 

김지미 강변호사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강영구 그런데 조합원 수의 감소라던가 하는 것은 전교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전체적으로 노조의 조직률이라든가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는 부분이 있고,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정책, 노동배제정책 그런 부분의 원인이 저는 조금 더 크다고 생각이 돼요. 전교조가 초심을 잃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은 보수단체에서 공격하는 논리가 아닌가 싶어요. 또 교육 부분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 있거든요. 고교평준화 정책 같은 것도 거의 깨졌잖아요. 교육기회의 균등 이런 거 없어요. 특목고에서 나아가 자사고까지 학교가 다 서열화 되어 있고,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 전교조가 더 역할을 해야 하는 데 탄압이 극심하다 보니 그 방어 하느라 오히려 적극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김지미 사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현재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전교조에 대한 탄압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잖아요. 그런 영향도 조금 있었을까요? 탄압이 들어오면 어찌 되었든 조직은 위축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강영구 그럼요. 제가 2009년 9월에 전교조에 들어왔잖아요. 그런데 그 해 11월 안행부가 공무원보수규정을 개정했어요. 조합비 원천징수를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인데요. 종래에는 월급에서 조합비를 공제하려고 하면 조합원이 맨 처음 조합 가입할 때 행정실에 가서 그냥 말로 공제해주세요 하면 됐었어요. 그런데 개정 보수규정에 따르면 이제 조합원이 매년 서면 동의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되는 거에요. 그 때가 11월이었는데, 12월 중순부터는 방학이고, 그 보수규정 시행일이 이듬해 1.1.부터였어요. 그런데 아시는 것처럼 전교조가 전국 규모의 산별노조이고, 조합원이 6만이잖아요. 그러니까 당장 12월 방학 시작하기 전까지 한 달 안에 전국 6만 조합원으로부터 서면 동의서를 받지 않으면 바로 이듬해 1.1.부터 조합비가 안 들어오는 거예요. 저는 정말 그 때 노조가 휘청하는 것을 봤거든요. 집행부가 전국에 다 내려가서 한 달 동안 서면 동의서를 받았어요. 사실 섬에도 학교는 있을 것 아니에요. 학교가 있으면 조합원이 있을 수 있고요. 섬까지 가서 다 받는 거죠. 그래서 그 때 교육부나 안행부는 서면동의로 인하여 조합원 수 감소가 상당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고 해요. 그래서 실제 감소한 부분이 있긴 있는데, 그래도 전교조의 내공이 있는지 교육부가 예상한 만큼은, 절반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하고 예상했다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전교조에 대한 전방위적 탄압이 이어졌는데, 그거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노조가 참 힘들었어요.

 

김지미 이후에 이어진 전교조에 대한 탄압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강영구 그야말로 전방위적 탄압이었는데요, 앞서 공무원보수규정은 안행부 소관이에요. 그 이듬해인 2010년 3월에는 노동부가 규약시정명령을 했어요. 그리고 4월에는 국회에서 조전혁 의원하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조합원 명단을 릴레이 공개하고 난리였죠. 5월에는 검찰이 정당 가입 혐의로 교사 183명을 기소했고요, 기소하자마자 교육부가 기소된 교사 전원 파면·해임을 발표했어요. 그 때 그 파면·해임 방침의 교육부 자료가 일요일인가 먼저 공개가 됐었거든요. 저는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월요일 신문 헤드라인이 ‘피의 일요일’이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 정권으로는 정말 183명 전원을 파면·해임할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마침 그 해 6월 지방선거에서 첫 교육감 직선제가 실시되면서 전국 6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 됐잖아요. 그래서 전원 파면·해임이라는 징계는 무력화가 됐죠.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11년에도 정당 가입 혐의로 1500명의 조합원이 기소가 됐는데 1500명이면 단일 건으로는 최대 규모였어요. 그냥 조금이라도 활동을 했던 조합원을 거의 싹쓸이 했다고 보시면 되요. 그리고 그 때 선생님들 부모님들의 전화, 우시는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공무원이 기소가 되면 걱정을 많이 하시죠. 그래서 탈퇴도 많았고요. 정권이 전방위적으로 탄압을 하니까.

 

김지미 그런 일련의 사건들을 쭉 놓고 보면 이 사람들은 결국 전교조를 없애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특히나 최근에 법외노조와 관련해서도 2010년 규약시정명령부터 최근까지 계속 이어온 거잖아요. 법외노조 관련해서 2010년 규약시정명령때부터의 진행경과를 이야기 해 주세요.

 

강영구 2010년 3월에 노동부가 전교조에 대해서 최초 규약시정명령을 했어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규약을 시정하라는 건데요. 전교조는 규약을 시정하지 않고 그 규약시정명령에 대해서 취소소송 제기했죠. 그게 진행이 되고 있었고요. 한편 노조법은 노동부의 규약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전교조는 규약시정명령 불이행으로 기소가 되어서 노조법 위반 형사재판도 진행이 되고 있었고요. 그렇게 진행이 되다가 2012년 규약시정명령 취소소송에 대해서 최종 대법원 패소 판결이 있었어요. 반면 같이 진행되고 있던 노조법위반 형사재판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에요.

 

김지미 해고자도 노동자라는 건 일반 상식으로 널리 인정이 된 바인데 거기에 비춰보면 해고된 자를 조합원으로 두는 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 건지, 전교조는 뭔가 특수성이 있는 건가요?

 

강영구 지금 문제되는 조항이 교원노조법 2조거든요. 교원노조법 2조에 보면 해직교원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해서 중노위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만 교원으로 본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교원노조법 2조는 99년 교원노조법 제정 당시 일반노조법 2조를 그대로 복사를 해온 것이에요. 일반노조법 2조도 동일하게 해고자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해서 중노위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만 근로자로 본다고 하고 있거든요. 그럼 일반노조법 2조는 왜 그렇게 규정을 하고 있었냐 하면, 5공 당시 노조법은 노조의 조직형태를 기업별노조로만 강제하고 있었어요. 노조는 모두 기업별노조인거죠. 그런데 기업별노조에서는 그 기업에 취업하고 있는 자만이 조합원 자격을 가지고, 그 기업에서 해고된 자는 조합원 자격을 가지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잖아요. 그런 배경에서 일반노조법 2조가 만들어진 것이죠. 그런데 이후 산별노조가 만들어지면서는 당연히 삭제가 되었어야 할 조항이에요. 그러나 삭제되지 못한 사이 해당 조항이 교원노조법 2조로 그대로 옮겨왔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죠. 특히 2004년 대법원은 서울여성노조 사건을 통해서 해당 조항을 기업별노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축소해석하거든요. 즉, 해고자의 경우 기업별노조의 조합원 자격은 제한되지만, 초기업단위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가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요, 그래서 이 같은 판례의 취지를 고려하면 학교별노조가 아닌 전국 단위 산별 노조인 교원노조에 있어서도 특정 학교에서 해고되었다고 해서 조합원 자격이 박탈될 이유가 없어요. 그러나 어쨌든 정부와 국회가 99년 교원노조법 제정 이후 일반노조법 2조를 그대로 가져 왔던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해서는 손 놓고 있다가 이번 정권이 작정하고 칼날을 휘두르니까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죠.

 

김지미 사실은 죽어있는 법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죽어있는 법을 근거로 탄압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위헌의 소지도 충분히 있는 거고. 사건경과를 계속 이야기 해보면 시정명령취소소송은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를 한 거고. 그 이후에?

 

강영구 2012년도에 대법원에서 패소판결이 확정이 되었는데, 그 해 겨울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가 당선됩니다. 전교조를 한 마리 해충이라고 했던 분이기도 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친일 역사교과서 비판이 절정에 있을 무렵 2013년 9월 전교조에게 ‘30일 내에 규약 개정하고 해직자 배제해라, 그렇지 않으면 법외노조통보 하겠다’하고 최후통첩을 합니다. 직후 전교조에서는 조합원 총투표를 했어요. 노동부의 시정명령을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그런데 80%의 조합원이 참여해서 70%가 거부해야 한다는 데 표를 던졌고, 그래서 전교조가 시정요구를 거부하기로 하니까, 정확히 30일이 되는 날 노동부가 법외노조통보를 했어요. 법외노조 통보하자마자 교육부도 후속조치로 다섯 가지를 발표해요. 전임자 전원복귀, 사무실 퇴거,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기존 단협 실효, 장래 단체교섭 거부. 그런데 한 달 후 전교조가 제기한 법외노조통보 효력정지신청과 취소소송에서 효력정지신청이 받아들여져요. 1심 판결 선고시까지 효력을 정지하는 것으로. 그래서 일단 교육부의 후속조치가 중단이 되지요. 그리고 올해 6월에 법외노조통보 취소소송 1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법외노조통보처분이 적법하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효력이 정지되었던 법외노조통보처분이 다시 효력이 발생하고, 교육부에서 다시 후속조치 이행을 발표하죠. 현행법상 교원의 임용권은 교육부 장관에서 교육감으로 위임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교육부장관이 교육감들에게 미복귀전임자들에 대해서는 직권면직을 하라고 이행요구를 하고, 교육감들이 이행하지 않고 있자 교육부장관이 직권으로 대집행하겠다고 하고 있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최근 항소심에서 다시 전교조가 신청한 효력정지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다시 극적으로 법외노조의 효력이 정지되고 법내노조가 되었습니다.

 

김지미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서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되었고 헌재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 재판은 일단 추정된 상태이죠. 이야기를 듣다보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에요. 전교조 입장에서는 체감하는 위기의식은 훨씬 더 했을 것 같은데 지난 2010년부터 해서 조직의 운명이 걸린 문제에 대처하면서 몇 년을 정신없이 지내왔을 것 같아요. 밤을 정기적으로 샌다는 것도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해가 되고요. 일단 지금 전교조는 한 숨 돌리는 분위기겠네요.

 

강영구 그렇죠. 헌재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효력이 정지되는 건데요. 이제는 헌재 결정이 잘 나오도록 총력을 기울여야죠. 제가 사실 처음에는 ‘왜 내가 있을 때 꼭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어야 하는 거야’ 하면서 좌절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사실 무서운 게 없어요. 법내, 법외, 법내, 법외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김지미 변호사 7년차로 숨 돌릴 틈 없이 정말 바쁘게 몇 년을 지내왔는데 전교조는 교사들의 단체잖아요. 상근자들이나 주 역량들이 교직원·교사 출신들일 것이고 그 사이에서 혼자 변호사로 있는 이 생활은 어때요?

 

강영구 전교조 들어와서 합법 이후 최대 송사에 휘말린다 할 정도로 전교조가 너무 소송이 많았어요. 그래서 몸이 몇 개가 되도 모자랄 정도여서 제 역할을 찾기 어렵다 이런 건 없었고요(웃음). 그리고 교육부분이 생각보다 법률수요가 많아요. 일단은 교원이 국공립학교 교원이 다수인데, 국공립학교 교원의 사용자가 정부잖아요. 교육부장관, 교육감을 상대로 하는 건데, 교육부나 교육청의 공무원들이 또 다 법적 근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요. 예를 들어 ‘지침이 이래서 할 수 없다’ 이런 답변이 많거든요. 그러면 저희 쪽에서는 늘 거기에 대한 반박 법률 검토 의견이 나가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법률 검토가 상당히 많아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학교 자체가 거의 법의 사각지대처럼 있어 왔거든요. 학생은 어리다는 이유로 발언권이 없고, 학부모는 아이가 볼모로 있으니까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고. 교사도 보면 저도 학교 다닐 땐 잘 몰랐는데 관료 피라미드의 말단 공무원이에요. 그래서 복종의무에 꽁꽁 묶여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죠. 그러다보니 학교라는 공간이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공간으로 남아서, 이상한 학칙도 많고, 관행도 많고 그래요. 그래서 이제 보편적인 인권이나 시민권의 관점에서 보면 개선해야 할 것도 많고, 아무래도 송사도 늘어날 수밖에 없지 않나 싶긴 해요.

 

김지미 강변호사는 평균 수면시간이 몇 시간이나 되요?

 

강영구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여서 그런 것 같은데요, 보수단체들의 척결단체 1위가 민주노총이 아니라 전교조에요. 그만큼 탄압의 표적이 되어서 할 일이 많긴 많았어요. 제가 지금 결혼 7년차인데,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아이도 가져야 하는데. 밤에 신랑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웃음). 들어가면 둘 다 기절을 해서.

 

김지미 강변호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랑 때문이기도 하잖아요(웃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박주민변호사하고 부부잖아요. 아마 민변에서 가장 바쁜 사람 두 명을 꼽으라고 하면 이 두 사람이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말한 것처럼 서로 얼굴도 못 보는 날이 많죠? 요즘 박주민 변호사님은 집에 들어오시나요?

 

강영구 박변은 지금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여름휴가도 못 간다 그래서 저 혼자 주말에 2박 3일 한겨레 휴 명상센터 가서 명상 하고 왔어요. (웃음) 그리고 추석도 당일 오전 빼고 시간을 못 내고, 세월호특별법이 통과 되어야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김지미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민변 회원 부부사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민변 회원이 되면 성골이다 라는 농담이 오고 간 적이 있는데 혹시 아이를 낳아서 성골로 키울 생각은 없나요?(웃음)

 

강영구 지금 저희는 대가 끊길 위기라니까요.(웃음) 우리 사회의 평화가 와야 저희 가정에도 평화가 올 것 같아요..

 

김지미 이 부부는 스케일이 너~무 커요.(웃음)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어떤 식의 교육을 시키며 키우고 싶으신가요?

 

강영구 아직 아기가 없으니까 구체적인 생각은 못해봤는데요, 그런 건 있어요. 제가 학교에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같은 경험을 하게끔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제가 공교육을 바꿀 수 있으면 바꿔서 아이가 저처럼 울면서 학교 다니는 일은 없게 하고 싶어요. 또 공교육이 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대안교육 등 다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김지미 법외노조 관련해서 어쨌든 시간을 번 셈이고, 거기에 총력을 기울이기는 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급박하게 돌아가는 모양새는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런 걸 해보고 싶다 그런 게 있었을 것 같아요.

 

강영구 2010년도에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어요. 저는 학생인권조례 만들어지는 거 보고 정말 가슴이 많이 설렜거든요. 내가 학교 다닐 때 저런 게 있었다면 싶기도 하고. 근데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당일 교육부 장관이 조례에 대해서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해요. 조례가 상위법령에 반해서 무효라는 거예요. 그리고 서울시 교육감이 조례가 제정이 되었으니까 조례에 따라서 학칙을 개정하라고 일선 학교에 지시를 했는데 그 지시를 직권으로 취소해 버려요. 계속 다툼이 되니까 급기야 그 해 4월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아예 개정해요. 조례가 체벌을 금지하고 두발 규제를 금지하고 있었는데, 시행령이 간접체벌을 허용하고 두발규제도 학교단위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개정을 한 것이죠. 그러면서 개정 시행령에 따라서 이와 저촉되는 조례는 다 실효가 되었다고 보도자료를 내었고요. 참, 얼핏 생각하면, 학생 두발 길이가 뭐라고 정권이 대법원 제소에, 직권취소에, 시행령 개정에. 이렇게 죽기 살기로 매달릴까 싶잖아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학생 머리길이가 그냥 머리길이가 아닌 거예요. 통제의 수단인거죠. 너의 머리카락을 귀 밑 몇 센티로 할 것인지도 너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학교가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걸 통해서 순응적인 인간이 될지 아니면 자유로운 인간이 될지 좌우될 수 있는 거잖아요. 실제로 보면 말 잘 들었던 학생이 말 잘 듣는 국민이 될 가능성이 많죠. 그러니까 정권으로서는 사활을 걸 문제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고, 그런 점에서 저도 학교의 통제나 억압적인 부분들을 바꾸고, 학교를 좀 더 인권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드는데 조력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징계가 된다거나,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가 된다거나 그게 요즘 교권침해 사안이에요. 벌점 누적되고 강제전학도 보내는데요, 그런 것들을 좀 바꾸고 싶어요. 학생인권 관련한 일들을 많이 하고 싶기는 해요. 더불어 교원의 정치기본권이나 노동기본권도 반드시 좀 진전시키고 싶고요.

 

김지미 변호사가 연차가 쌓이면 수입이 늘어나거나 조직 내에서 승진이 되거나 뭔가 사회적인 지위도 좀 올라가는 것 같고 그런데 강변호사는 그런 식의 욕심 같은 것은 없어요? 항상 전교조 상근이라는 이름만 달고 계속 일하는 거라든지 그런 거에 대해서 어떤 변화를 모색해 보고 싶다 하는 욕심은 없나요?

 

강영구 근무조건에 대한 것보다는 앞으로 교육법 부분에 대한 내공을 더 쌓아서 언젠가 노조의 현실과 교육의 현실, 그리고 법리를 아우르는 책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가져보긴 해요.

 

김지미 우리 연차가 그닥 선배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그래도 한 곳에서 오래 경험을 해 본 사람의 입장으로 신입 변호사나 지금 로스쿨에 다니는 민변의 특별회원이라든지 아니면 오늘 같이 온 자원활동가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강영구 교육부분이 할 일이 참 많아요. 노동법은 그래도 판례나 법리들이 많이 축적된 반면에, 교육법 부분은 아직 척박하거든요. 또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 문턱이 높은 편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단체에 들어오면 변호사에 대해 요청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 점에서 여러 변호사님들이 교육단체나 관심분야의 곳에서 활동가이자 변호사로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김지미 바쁜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 민변에서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강영구 전교조 상근 변호사 인터뷰라 그래서 하긴 했는데 재미없는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셔서 제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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