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전교조 법외노조통보 취소 사건 기각 판결을 개탄한다

2014-06-19 1,064

[논 평]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전교조 법외노조통보 취소 사건 기각 판결을 개탄한다

 

오늘 서울행정법원 제13부는 노동부의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통보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6만 여명의 조합원이 소속되어 15년간 활동을 해 온 노동조합이 모든 법적 지위를 박탈당하였다. 단지 해고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힘겹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은 다시금 거꾸로 향하였다.

 

첫째, 오늘 판결은 해직 교원의 단결권을 일체 부정한 것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근로자에게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단결권은 현실적으로 취업상태에 있는 자뿐만 아니라, 실업상태에 있더라도 노동의 의사와 능력을 가진 자에게 모두 보장된다. 단결의 필요성은 현실적으로 취업상태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실업상태에 있더라도 구직의 의사가 있는 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교원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오늘 법원은 교원의 특수성을 들어 해직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교원노조법 제2조는 합헌이라고 하였다. 1989년 교원의 특수성을 이유로 교원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했던 것과 같은 논리이다. 외국의 대다수 교원노조에서는 정규직 교사뿐만 아니라 대학생, 은퇴자, 실업자, 해고자 등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 역사의 시계바늘은 오늘 1989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둘째, 오늘 판결은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삭제된 행정관청에 의한 노조해산명령을 다시금 부활시킨 것이다.

현행 노조법에는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쳐 같은 해 11월 국회가 여야 합의에 의하여 구 노조법상 행정관청의 노조해산명령권을 삭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이듬해인 1988년 4월 노태우 정부는 국회의 휴지기를 틈 타 종래의 노조해산명령권과 동일한 내용을 노조법시행령으로 신설하였다. 바로 현행 노조법시행령 제9조제2항의 법외노조통보 규정이다. 이 규정은 처음부터 국회입법을 잠탈할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늘 법원은 노동조합의 소극적 요건을 정하고 있는 노조법 제2조 제4호 단서 및 법외노조통보 규정에 근거하여 행정관청에 의한 노조 지위 박탈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1987년 노조법에서 삭제된 행정관청에 의한 노조해산명령제도가 노조법상 노동조합의 정의 규정에 의하여 부활한 것이다. 역사의 시계바늘은 또 그렇게 1987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셋째, 오늘 판결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보장한다는 미명 하에 오히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완전히 훼손한 것이다.

현행 노조법 제2조 제4호는 노동조합의 적극적 요건과 소극적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하며,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나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동조합의 적극적, 소극적 요건은 바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보장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오늘 법원은 근로자 아닌 자, 즉 해고된 교원이 단 1명이라도 가입하고 있으면 노동조합이 실질적으로 자주성을 갖추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노조법 제2조 제4호 단서에 따라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결과 해직 교원 9명을 이유로도 6만 조합원의 노동조합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보장하고자 한 규정이 도리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말살하는 규정이 된 참담한 현실이다. 역사의 시계바늘은 전교조가 합법화된 1999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지난 5월 19일에는 155개국 1억7500만 명의 노동자들이 가입한 세계 최대 규모의 노동단체인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세계 139개국의 노동권 현황을 조사해 발표했다. 한국은 세계노동자권리지수에서 최하위인 5등급으로 분류되었는데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도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교원도 노동자라는 당연한 권리를 확인하는 데 1500여명의 해직을 감수해야만 했다. 해고된 교원도 조합원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 사회는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오늘의 판결이 항소심에서 반드시 바로 잡힐 수 있기를 바란다.

 

2014. 6. 19.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한 택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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