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고 8 : 공기업이 한미FTA 충격을 감당할까
“공기업이 한미FTA 충격을 감당할까?”
[한미FTA의 사법충격·8] 한미 FTA와 공공기관
2007-03-29 오전 10:01:40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지원 위원회’는 2006년 12월 13일, ‘한미 FTA와 투자,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놀랍게도 이 세미나 자료에서도 “한미 FTA 상의 투자 협정만으로는 외국인 투자 유치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어서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한미 FTA라는 ‘외압’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런 식이다. “그동안 우리는 주요 투자 협정을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자유화 수준을 제고하고 투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긍정적 외압으로 활용해 왔다.” 이렇게 안이한 현실 인식이 몰고 올 파장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한미 FTA는 단순한 압력용으로 여기기에는 그 파장이 훨씬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발상은 낙후 지역 정비를 위해 댐의 수문을 열어 수몰 지구를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앤서니 기든스는 <제3의 길>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 기준을 “불평등의 축소와 평등의 확대”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가 양극화가 본질인 시장 중심의 세계화, 즉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저항할 의사가 없음은 수차례 지적됐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자신과 한미 FTA 추진 세력을 ‘유연한 진보’라 칭하며 한미 FTA 반대 세력을 세계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교조적 진보’라고 폄하한다.
그들의 변명은 당당하다. “세계화는 누구라도 어쩔 수 없는 대세다. 다른 대안이 있는가?” 대안이 있다. 세계화 흐름을 우리의 통제 범위에 두기 위한 대안은 개방 속도와 순위를 조절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댐 문을 열고서도 범람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며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앞뒤 가릴 것 없이 댐 문부터 열어서는 모두 수몰을 당한다.
한미 FTA 체결을 포기할 수 없다면 최소한 투자자 국가 소송제라도 제외해야 마땅하다. 이 투자자 국가 소송제는 국가의 공적 기능을 무력화시킬 위력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현재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은 313개다. 한국전력공사, 한국수자원공사뿐만이 아니다. 서울대학교병원,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등도 포함된다.
이런 공공기관은 대체로 수익이 보장되지 않거나 시장이 실패한 영역에서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공기업은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과 함께 자체 수익 사업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기도 한다. 이 재원은 공적 목적에 사용된다. 당연히 수익 창출만이 생존의 가치인 사기업에 비해 경영 효율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은 이들 공기업에도 경쟁법을 적용하라고 요구한다. 공기업도 사기업과 동일하게 경쟁의 논리를 적용하라는 것이다. 공기업에 대한 모든 지원, 즉 공적 목적을 위한 수의 계약, 기금의 지원이나 계약상의 우대 조건 등 모든 것이 문제가 된다. 내국민 대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만약 공적 목적을 위한 재원 조달을 위해 공기업이 수의 계약을 체결했다 하자. 미국 기업은 공기업에도 경쟁법을 적용하기로 한 한미 FTA 협정 위반이라며 국제 중재 재판부에 제소할 것이다. 공기업의 계약은 무효가 될 것이고, 국가는 손해 배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공기업의 재원은 이제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된다.
재원 확보가 불가능하면 공익 사업은 중단될 것이고 인력은 감축될 것이다. 시장의 실패를 보정해주고 복지 정책과 전략 사업을 수행하는 국가의 기능은 시장에 내몰리고 실종될 것이다. 공공정책의 실종으로 양극화는 심화되고 국민의 담세능력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말 그대로 ‘악순환’이다. 정부가 더 늦기 전에 투자자 국가 소송제를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4년 전국경제인연합 연구 자료조차 한미 FTA는 그 기대 효과가 낮기 때문에 제일 나중에 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그럴듯한 장밋빛 전망을 내세워 대기업을 꼬드기고 있지만, 결코 그들이 한미 FTA로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과연 누구를 위한 한미 FTA인가? 지금이라도 ‘중단’을 선언하자.
권경애/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