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고 6 : “한미 FTA, 경제 헌법 무력화한다”
“한미 FTA, 경제 헌법 무력화한다”
[한미FTA의 사법충격·6] 한미 FTA와 헌법
2007-03-27 오후 4:32:20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통과되면 헌법이 개정된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헌법은 한 국가의 최고 규범이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헌법이 개정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일개 조약에 불과한 한미 FTA가 헌법에 도대체 무슨 영향을 준다는 말인가?
그 비밀은 바로 ‘투자자 국가 소송제(ISD)’에 있다. 한미 FTA는 투자자에게 자신의 투자가 해당 국가의 특정 조치로 인해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국가를 국제 중재에 회부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여기서 국가의 조치에는 정부의 행정 행위뿐만 아니라 입법부의 입법, 사법부의 재판까지도 포함된다.
이제 투자자 국가 소송제가 어떻게 헌법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FTA에 규정된 ‘투자’의 개념이 헌법이 정한 ‘재산권’의 개념보다 넓다. 국내 헌법은 단순한 기대 이익, 반사 이익 또 경제적 기회를 재산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FTA는 “투자는 수입 또는 이윤의 기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개발 부담금을 예로 들어 보자. 개발 부담금은 개발 사업의 결과로 발생한 초과 지가 상승분을 국가가 환수하는 제도다. 개발 사업의 결과 발생한 지가 상승분을 사업 시행자가 다 가져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음으로써 부동산 투기와 무분별한 개발 사업을 막는 제도인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 제도의 정당성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설사 부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헌법 소송을 제기하는 정도일 것인데, 헌법 제122조가 “국토의 이용 등의 제한과 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상 위헌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 투자자는 다르다. 미국인 투자자는 정부가 개발 부담금을 내라고 하면, 이를 자신의 ‘투자’를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바로 국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과연 중재결정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미국인 투자자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는 “국가의 조치가 어떠한 동기이건 간에 투자자의 ‘투자’가 침해된 경우 국가는 보상을 하여 주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재에서 미국인 투자자는 개발 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이 내려질 경우 국내법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 국내 투자자는 웬만하면 미국에 법인을 세울 것이다. 미국 법인이 되면 개발 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국민은 미국 투자자와의 역차별을 문제 삼으며 헌법 제11조 평등권 위반을 근거로 헌법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부동산 투기를 규제하고 균형 있는 국토 개발을 위해 헌법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일련의 공법적 규제들의 무력화가 불가피하다. 더 이상 부동산 투기 등에 대한 실효성 있는 공공정책이 존재하지 아니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 사실상 헌법 제122조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질적 개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개발 부담금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부동산 관련 법제만 해도 문제될 수 있는 것은 도시 계획 시설 지정, 개발 제한 구역 지정, 재건축 초과 이익 부담금, 양도 소득세 등이다.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손봐야 하는 법이 무려 160여 개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실상 경제와 관련된 헌법 제9장(제199조~제127조)이 모두 흔들린다.
결과적으로 한미 FTA는 심각한 사법권 침해로 귀결된다. 국민의 위임에 의한 정부의 합헌적 조치가 한국 법원이 아니라 중재를 담당하는 소수의 외국인의 판단에 좌우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투자자 국가 소송제가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며 법조계가 반발한 데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우려에 대해 국민 복리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한 규제는 투자자 국가 소송제의 예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중재를 담당하는 이들은 투자자의 투자가 침해되었는지 여부에만 초점을 둔다. 정부의 주장은 희망일 뿐이다. 예를 들어 메탈클래드가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 중재자는 판정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본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 고려하여야 할 문제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그 뿐이다.”
김성진/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