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 『야생초 편지』저자 황대권 씨의 메시지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 『야생초 편지』저자 황대권 씨의 메시지
“국가보안법은 당장 폐지되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3년 2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나온 황대권입니다. 악명 높은 국가안전기획부의 수사관들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붙들려 갔을 때 부끄럽게도 저는 국가보안법이 무엇인지 고문이 어떤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면서생이었습니다. 아마도 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선량한 일반국민과 국가보안법이 무슨 상관이 있냐는 주장에 대해 틀린 말은 아니지 하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동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의도 벌판의 찬 바닥에서 결사의 각오로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진짜 빨갱이가 아니고서야 사는데 아무 지장도 없는 보안법 문제를 가지고 저토록 극렬투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몸서리를 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저런 사람들이 설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은 절대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남산 안기부 지하실로 불법 연행되어 전신을 발가벗긴 채 무려 60일 간이나 말로만 들었던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다 당해야만 했습니다. 저지르지도 않은 간첩죄를 시인하라고 해서입니다. 지금도 제 몸에는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아니 제 몸뿐이 아니라 고문의 그 끔찍한 기억은 죽는 날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련하게도 더 이상 고문을 말아달라고 수사관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들은 한 인간을, 한 인격을 무참히 짓밟고 나서는 다시는 이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영원히 독방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자기들이 한 짓이 알려질까 두려웠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니 놀랍게도 저처럼 간첩으로 조작되어 장기 징역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저는 그 안에서 독재권력의 이면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독재권력이 어떻게 유지되고 거기에 빌붙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배를 채우는지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얘기하는 ‘말없는 다수’는 단지 권력욕에 사로잡힌 자들의 정치적 볼모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권이 세 번이나 바뀌고 나서야 세상에 나온 저는 석방의 기쁨도 채 누리기도 전에 ‘보안관찰법’이라는 괴상한 법에 의해 다시 감옥 아닌 감옥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을 살고 나온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채워지는 족쇄였던 것입니다. 제가 겪은 일에 대해 어디에서고 입도 벙긋하지 말고 죽은 듯이 지내라는 요구입니다. 이것이 수천 명의 목숨을 희생하여 얻은 민주화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습니다. 저를 더욱 슬프게 했던 것은 독재시절에 국민들에게 심어놓았던 맹목적인 증오의 철학과 대결의식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의식을 심어놓은 당사자들이 야당이 됨으로써 더욱 격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남북관계와 세계정세는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는데, 고문과 조작의 피해자들이 아직도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사회의 뒤안길에서 제 가슴을 치고 있는데 저들은 이미 오래전에 국제사회로부터 반인권법으로 낙인이 찍힌 국가보안법을 마치 금과옥조인양 사수해야 한다고 정치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안기부 지하실에서, 그리고 교도소 철창 안에서,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자들과 그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프랑스의 전제 군주 루이 14세가 했다는 “짐이 곧 국가”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서는 일부 권력집단과 그에 동조하는 일반 국민들 사이에 아주 상식적인 일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곧 국가를 위한 일이다. 만약 너희들이 국가가 절대선임을 인정한다면 나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토도 달지 말아라.” 비이성과 무논리의 극치입니다. 이런 잣대를 들이대면 자기와 다른 사람들은 언제든 빨갱이나 반역자, 간첩이 되어 버립니다. 얼마 전에 겪은 국회 안에서의 간첩소동은 지난 50년 동안 무수히 보아온 희극적인 비극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이 몰상식과 야만의 근저에 국가보안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나라의 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아닙니다. 안보는 국민들의 건전한 양식이 지키는 것이지 일개 법이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법으로써 국가 안보가 튼튼해진다면 저는 국가보안법 같은 것을 10개 더 만들자고 주장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법의 사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무언가 사술에 걸려있거나 아니면 언제든 권력의 도구로 쓰고자 하는 흑심을 품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겨울철 내내 내복을 입고 지낸 사람은 봄이 와도 옷을 벗을 줄 모릅니다. 기온의 변화와 상관없이 이미 내복과 자기 몸이 하나가 되어 있어 그것을 벗어버리면 벌거벗는 줄로 착각합니다. 아직 분단 상황은 계속되고 있지만 계절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분단을 핑계로 낡은 법률을 붙들고 있어서는 변해가는 세상에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합니다. 내복을 벗어버리고 변해버린 날씨에 새로 적응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은 당장 폐지되어야 합니다.
2004년 12월 27일 새벽에
황 대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