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최후진술
고법8부가 본 사건을 판결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점을 환기하는 것으로 최후진술을
대신하겠다.
첫째. 개성공단 건설, 경의선.동해선 연결, 이산가족간 만남, 아테네 올림픽 공동입장, 용천참사
피해지원, 남북 민간급 회담과 교류 등은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이 중에서 잘못된 일이 있는가? 이 중에서 국민정서에 어긋나거나 나라와 민족의 이익에 해가 되는 일이
있는가? 위에 열거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들은 모두 대다수 국민들이 지지.격려하는 일이며 누구라도
앞서서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동족간의 만남과 교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며 고무하고 격려해야 할
권장 사항이지 국가보안법의 잣대로 단죄하고 처벌할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에 의한 재판은
근본에서부터 성립될 수 없는 반민족적인 정치행위일 뿐이다. 고법 8부는 국가보안법에 기초한 재판
진행자체가 불법행위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둘째. 2004년 8월 현재 국가보안법의 폐지.개정.존속을 둘러 싼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존폐를 둘러 싼 논쟁이 진행되는 이유는 국가보안법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를 적용
해왔던 수사기관.검찰.법원의 관행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보안수사대 수사과정에서부터
박용 부총장을 대남공작원으로 규정하는 관련 자료를 요구했음에도 지금껏 받아보지 못했다. 공안기관이
도청하고 있는 전화를 통해 지령을 주고받았다는 기소내용을 납득할 수 없다. 서울 시내에 사무실을
내고 공개적으로 활동했고 법원에서 증언까지 한 본인을 3~4년이 지나 간첩으로 연행한 저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 사건과 비교하여 본인에게만 가해진 터무니없는 불공정한 처사를
용서할 수 없다. 구치소에서도 합법적으로 받아 볼 수 있는 서적을 집에 가지고 있다고 해서 위법으로
간주하는 황당한 논리에 실소하고 있다.
지금 이 자리가 양심과 정의, 증거와 공평성에 기초하여 위법과 적법을 다투는 재판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당신들을 과연 사리분별에 맞게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지식인, 법조인으로 신뢰할 수 있는가?
최근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의 배경에는 권력과 시류에 영합하여 제멋대로 법률을 적용했던 대한민국
법원에도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기 바란다. 본인은 고법 8부의 선고 결과를 기억할 것이다.
법조인으로서의 긍지와 존엄을 스스로 짓밟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셋째. 본 사건은 2001~2002년 민간급 차원의 남북 통일행사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직결된 현안이다.
본인은 2001~2002년 남북 민간급 통일행사에 필요한 통신연락의 대부분을 실질적인 수준에서 실무적으로
담당했던 사람이다. 본인이 간첩이라면 2001~2002년 금강산, 서울, 평양 등지에서 진행된 남북 공동의
통일행사는 간첩이 조종하여 치러진 이적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을
부정하는 냉전수구세력이 이른바 ‘비밀송금’을 문제 삼아 남북 화해협력 전체를 부정하려 했던 정치적
의도와 동일한 것이다.
2003년 대북송금특별법을 통해 이루어진 재판 놀음은 이른바 비밀송금의 적법성을 둘러 싼 논쟁이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냉전수구세력의 정치적 도발이었다. 본인의 통신연락
행위는 남북의 민간급 통일행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통일운동 상의 문제일 뿐이다. 본인을
간첩으로 판결하여 남북 민간급 통일행사를 모독하고 폄하하려는 냉전수구세력의 얄팍한 정치적 음모에
결과적으로 동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본인은 고법 8부에 개인적인 원한을 갖고 있지 않다. 과도한 언사가 있었다면 이해하기 바란다. 그러나
본인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왔던 대한민국 법원의 역사와 과거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고법 8부 또한 대한민국 법원이 자행해 왔던 사법적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본인은 재판을
마감하면서 국가보안법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적용.운영해 왔던 대한민국 법원에게 응당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
당신들은 판결을 통해 국가정보원 지하 밀실에서 자행된 고문과 공안검찰의 시대착오적인 수사에
합법성을 부여해 주었다. 당신들이 법조인으로서의 소신과 양심에 기초하여 판결했다면 국가보안법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거나 설사 현재 존재하더라도 존폐 논란에 휩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설사 법률로 잔존하더라도 이미 존립 근거는 사라졌다.
국가보안법의 소멸은 도도히 흐르는 민족 대단결 운동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다. 역사의 퇴물로 사라질
국가보안법에 대한 고법 8부의 입장을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