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참여연대, 장유식 변호사 국가보안법 칼럼

2004-09-14 172

아래는 인터넷 참여연대에 2004. 9. 14. 게재된 장유식변호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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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질문 있습니다
장유식 (변호사, 참여연대 협동처장) 2004-09-14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로 연일 신문과 방송이 시끄럽다. 국민들은 가만히 있는데 미디어들이 더 야단법석인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 조계종의 법장 총무원장의 말씀 나란히 지면을 채우고 있다. 각각 여야 대표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두 분은 이구동성으로 “국보법폐지가 시기상조이거나 불가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진위에 대해서야 다시 확인할 필요성도 느끼지만 어쨌든 사회적으로 신망받는 종교 지도자들의 말씀은 상당한 무게로 다가온다.

몇 일전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1만여 인사들의 소위 ‘사회원로선언’과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두 분의 입장이 앞으로 국가보안법의 운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분의 말씀을 대서특필한 어느 신문의 흥분된(?) 기사, 그리고 어느 유력 월간지 대표 겸 편집장의 또 다른 글을 읽으면서 문득 감히 두 분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 생긴다.

남남갈등은 어디에서 오는지

추기경과 총무원장께서는 ‘남남갈등’에 따른 국론분열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추기경께서는 “나라가 분열되고 편가르기가 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 “갈라놓고 분열시키는 것이 수단인지 목적인지 모르겠다. 친북이다, 친미다. 모든 문제를 갈라서 생각하는 남남분열이 큰 걱정“이라고 하신다.

스님께서는 ”법도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과일을 깎으면 과도고, 식당에서 쓰면 식도고 살인에 쓰면 살인도구가 된다. 지금은 국보법을 과거처럼 인권유린에 안 쓰면 되지 않겠느냐“, ”대체입법이든지 형법을 보완하든지 간에 불안을 해소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종교인다운 말씀들이다.

그런데, 두 분의 말씀에는 남남갈등의 실체가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씀들이 없으시다. 그냥 듣기에는 마치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를 꺼낸 것 자체가 국론분열의 원인인 것처럼 느껴진다. 과연 그러한지 여쭙고 싶다. 오히려 국론분열을 야기시키는 것은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은 무책임한 선전선동이 아닌가.

무책임한 선전선동과 편가르기의 실체는

앞서 언급한 유력 월간지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피까지 흘려야 되는가, 피를 흘리지 않고 국가와 헌법과 체제와 자유와 재산과 가정과 미래를 지킬 방법은 없는 것인가. 있을 것이다. 잿더미속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세력인데 머리를 쓰고 힘을 모으면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대한민국의 적을 무장해제시키고 이 아름다운 조국을 구하지 못할 수가 없다…..대한민국은 돈의 힘으로 지켜질 것이다. 한국의 애국세력이 반역세력에 비해 그래도 우월한 점이 있다면 현시점에서는 돈이다”

이 글은 마지막 부분에서 자사 신문이나 잡지를 많이 사보라는 판촉성 멘트로 끝을 맺고 있어 실소를 자아내긴 했지만, ‘피’, ‘적’, ‘무장해제’, 애국세력, 반역세력 등의 용어를 거침없이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수 십년동안 국가보안법의 우산아래 그 ‘아름다운 조국’으로부터 주어진 부와 명예와 권력을 독점해왔건만, 그 풍요로움의 끝에 번뜩이는 적개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정작 분단과 독재의 역사속에서 살이 으깨지고, 피가 터지는 고통에 신음해왔던 것은 그가 그토록 적개심을 품고 ‘반역’이라 칭하는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들이 아니었던가. 추기경과 총무원장께 다시 한번 여쭙고 싶다. 벌건 대낮에 공공연하게 정부의 전복을 선동하고 애국세력과 반역세력으로 편가르기를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남남갈등’의 원인이 아닌지요.

종교와 인권에 대하여

추기경과 총무원장의 말씀은 혼란을 방지하고 국론을 통일시켜 나가야 한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 김대중정부시절에는 여러차례 직간접적으로 국보법 폐지입장을 밝히신 분이 지금은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국보법에 대한 유엔과 세계 인권단체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분단국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면 통일에 대한 비젼은 포기해도 좋다는 말씀인가. 12만명에 이르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그동안 중추적 역할을 해온 종교계가 이제와서 그 뿌리를 뽑는데에는 왜 주저하는 것인지.

‘인권’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국보법은 폐지외에는 대안이 없다. ‘국론분열’을 기준으로 볼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이 분열은 아니다. 그 다름을 참지 못하고 적대하고 파괴하는 것이 분열의 씨앗이고, 혼란의 원인이다. 국가보안법은 그 적대와 파괴의 뿌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