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913) 노동부는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다시 마련하라!
노동부는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비정규직 보호 법안을 다시 마련하라!
1. 노동부는 2004. 9. 10.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중 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다. 노동부는 위 각 법안을 발표하면서 ‘입구는 열고 출구는 봉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즉 비정규직의 사용을 용인하기는 하되 차별과 남용은 규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임이 보기에 위 법안은 ‘입구는 과도하게 열었으되 출구는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법안’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2. 노동부가 발표한 위 기간제 노동자 법안에 따르면, 사용자는 그 업무가 영속적이든 그렇지 않든 사유에 대한 아무런 제한 없이 3년까지는 기간제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대신 노동부는 3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해고 제한 규정이 적용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기간 제한의 구속을 전혀 받지 않는 예외사유가 5개나 될 뿐만 아니라 매우 포괄적이어서-“기타 위 각호에 준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라는 조항은 특히 포괄적임- 사용자는 사실상 아무런 기간 제한 없이 기간제노동자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부의 위 파견법 개정안은 기존의 파견허용 범위 규정을 180도 바꾸어 이른바 ‘네거티브 방식’으로 하였다. 곧 건설공사업무 및 선원의 업무를 비롯한 몇 가지 금지대상 업무가 아닌 한 모든 업종에 대해 파견이 가능하도록 변경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파견대상 업무의 요건으로 정한 전문성과 임시성이라는 원칙도 폐기하였다. 또한 파견 기간도 두 차례의 연장을 통해 3년까지 할 수 있게 하였고 단지 3개월의 휴지기만 거치기만 하면 지속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위 3개월의 휴지기 동안 그 파견노동자를 다시 임시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노동부가 발표한 법안에 따르면 사용자는 파견제노동자와 기간제노동자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업무를 조금도 단절시키지 않은 채 동일한 노동자를 계속 비정규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부가 열었다고 하는 입구의 풍경이다. 그 정도가 너무 파격적이어서 도대체 비정규직의 남용을 막기 위한 고민과 절제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다.
3. 그러면 노동부가 구축하였다고 하는 출구 봉쇄의 실제 내용은 어떠한가? 노동부는 기간제와 파견제 둘 다에 대해 차별금지 원칙을 규정하고 그 시정 절차를 마련하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동일 가치의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과 동일하게 처우하라’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 기타 노동조건의 격차가 당연히 법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 중 합리적인 이유 없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발생하는 격차가 금지․시정 대상이 되는 것’일 뿐이다. 결국 노동부 스스로도 일정 정도의 차별을 용인하고 있는 것인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 사이에 중요도와 책임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는 통념에 비추어 볼 때 그 용인되는 차별의 정도가 적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노동부는 3개월의 휴지기를 둔 것을 파견제의 확산을 막는 장치로 주장하지만 그것은 정말 낯부끄러운 일이다. 휴지기라고는 고작 3개월이고, 그것도 그 기간동안 임시직 사용이 무한정 허용되는데 어떻게 파견이 제지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다음으로 불법 파견을 엄단하겠다는 것은 어떤가? 행정력을 동원한 감시 감독이라는 것이 용두사미가 되는 것은 이미 자주 보아온 것이고, 노동부가 파견을 당연히 용인하여야 하는 고용 형태로 인정하고 있는 이상 그 엄단 의지가 지속될 것으로 신뢰하기도 어려워, 불법 파견 횡행의 현실과 추세가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노동부가 봉쇄하였다는 출구는 허술하기 그지없는 것이어서 사용자에 대하여 아무런 견제 수단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4.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노동부가 발표한 위 법안은 비정규직 보호 방안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합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위 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우리 사회의 고용체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노동기본권이 완전히 유명무실화 될 우려가 많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부가 어떻게 비정규직 ‘보호’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5. 우리 모임은 이전부터 비정규직 문제가 인간의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임을 지적하여 왔다. 그것은 다른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위 문제의 핵심적 요소가 변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보호 입법안은 노동자들의 평등권․생존권․행복추구권․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이에 우리 모임은 위 법안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 노동부가 위 각 법안을 폐기하고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법안을 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04. 9. 1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이석태(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