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김진 변호사 긴급기고

2004-09-03 163

권리를 제한하려는 자, 이제 그대가 답하라!
  – 개정의 이름으로 국가보안법 존치를 말하는 그들에게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말이 많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폐지 권고로 불이 붙는가 하더니 “헌법에 합치하니, 입법 과정에 참조하라”는 친절한 조언을 담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달아올랐다 (법률 공부를 시작한 이래 ‘합헌’ 결정에 입법 권고를 덧붙이고 보도 자료까지 나온 것은 처음 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올 것이 왔다 싶어 반갑기도 하지만, 열린 우리당 안에서도 폐지 서명 인원이 늘지 않으면서 개정안을 만들겠다고 하고 언론이 개정론을 열심히 편드는 것을 보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 법을 그대로 두자는 진짜 「존치론」은 이제 소수에 불과하고「개정론」이라는 이름을 빌어 법의 존치를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개정안도 그 내용에 있어 천차만별이고 천정배 원내 대표에 의하면 “우리당의 전면개정론과 폐지론은 내용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실제 존치를 전제로 하는 개정론과 폐지론은 그 상징적․역사적 의미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개정만으로 남용의 소지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매우 긴 이야기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생략한다. 다만 그동안 실질적인 것만 7번에 걸쳐 개정되었으나, 적용면에서 인권침해를 막지 못하였다는 점만 짚어 두고 넘어가자).
  
  열린우리당의 개정론자 스스로 자인하는 것처럼, 그들의 개정론은 논리적이거나 법률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실용적인 것도 아니다. 오로지 ‘정치적’인 것이다.
  
  안영근 의원은 “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면 한나라당과 국민들과의 관계에서 소득 없는 정쟁으로 불안을 키우는 측면이 더 클 것”이라며 “여당으로서 국가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보안법의 이름과 틀은 남겨둬야 한다”고 했고, 김부겸 의원도 “국보법이 엉터리법이지만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것”이라고 했으며, 이해찬 국무총리까지 “정치적으로 볼 때 폐지보다 개정이 낫지 않으냐”고 했다.
  
  문제는 이들이, 그러한 ‘정치적 의미’나 ‘불안’의 실재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민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실효성도 많이 떨어졌으므로, 그리고 적용되는 범위나 피해자도 줄어들었으므로” 굳이 폐지하지 않아도 된다고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너무나도 위험하고 위헌적인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사상ㆍ양심의 자유뿐 아니라 결사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까지 기본권을 빡빡하게 제한하고 있는 법인데, 이런 법이 “있어도 그만”이라니! 한 두 사람이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정도니, 심리적 안정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냥 두자고 하는 것은,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이라면 몰라도, 제한하는 법에 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주장이다. 개정론자들은 ‘보안법이 있어야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이며, 얼마나 되는지 밝히라.
  
  경제가 문제라고? 지난 1년 동안 온 나라가 웅성거렸던 송두율 교수 사건에서, 노년의 학자 한 사람을 가두고, 재단하고, 손가락질 하느라 온 나라가 소비한 정력을 경제적으로 따져보자. 개성 공단 진출 과정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북한 노동당 간부들을 만날 때, 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 간의 충돌과 갈등을 해결하느라 생길 수밖에 없는 불필요한 낭비들을 생각해 보자. 거의 매번 UN 인권위원회 등 국제기구에서 인권후진국으로 지목되면서 받는 국가 이미지 실추를 기억하자. 도대체 무엇이 경제를 위해 좋은 것인가?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투자를 안 하겠다는 외국 회사가 있는가? 설명해 달라.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논의에서는 “폐지하지 않으면 무슨 나쁜 점이 있는데?”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 그러나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기에 우리가 변명할 일이 아니다. 권리를 제한하려는 자, 도대체 이 법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이 법이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그대가 답하라.

– 프레시안, 2004. 9. 2. 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