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정부는 노동계에 대한 강경대응을 철회하라

2001-09-13 111

현 시국에 대한 민변의 견해:

정부는 노동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철회하라

 


 

정부는 최근 벌어진 노동계의 파업사태와 관련하여
노조간부를 구속하고, 상급 노동단체의 간부들에 대하여 잇달아 사전 구속영장이나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있다. 정부의 강경 조치 속에는 노동계의
파업이 불법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 기회에 불법파업을 뿌리뽑겠다는 나름대로의 각오도
잠재해 있는 듯 하다. 민주노총의 최대 산별연맹인 금속산업연맹의 문성현 위원장을
비롯하여 연맹 지도부 전원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고, 병원노련의 이상춘
위원장을 구속하고 9명의 연맹 간부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또한 지난 4월
서울지하철공사노동조합 등 공공연맹의 파업과 관련하여 공공연맹의 석치순·양경규
위원장 등 간부 13명에 대해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파업가담조합원 30여명이
구속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계의 파업을 엄단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경계해야 할 자세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제3자 개입금지, 교원노조
등 일부 노동계의 현안이 해결된 것도 있으나 집단적 노사관계법에 있어서는 ILO
헌장 등 국제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노동자들의
쟁의권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현행 법률 및 해석론은 문제이다. 현행 노동관계법
및 노동부·노동위원회 등 노정당국의 실무지침과 관행 등에 의하면 정부가 말하는
‘합법적인’ 쟁의행위 자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현행 노동관계법은 쟁의행위
대상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음은 물론, 조정절차·직권중재 등의 규정은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제약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조합의 조정신청에
대하여 노동위원회는 충분한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조정대상이 아니라고
반려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이 산업별 교섭을 요구하여도 기업주들이
산업별 교섭기구를 만들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병원, 지하철 등 소위 ‘필수공익사업장’은 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에 의하여 쟁의행위
자체가 원천 봉쇄되고 있으며, 공공부문의 경우 정부의 일방적인 구조조정 지침은
명목상 권고사항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부기관을 완전히 기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는 개별 단위사업장의 임금 인상을 위한 쟁의행위 이외에는
합법적인 파업이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무릇 파업이란 노동자의 이익을 증진하고 방어하는
본질적인 수단이며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파업권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3권이란 허울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ILO 등 국제 노동기구에서도 "파업권은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단체가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인 이익을 향상시키고 방어하는
본질적이고 정당한 수단"이라는 기본원칙을 천명하고, 파업권의 제한에 대하여
엄격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파업권이 단체협약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는
산업상의 분쟁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정치파업에 대하여도 그것이 노동자들의
직업적, 경제적 이익에 관련되는 한 국가의 경제, 사회 정책적 문제에 대하여도 허용되는
것이며, 이 점에 있어 총파업의 정당성도 부여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파업이 집단적으로
노동력제공을 거부하는 쟁의행위일진대 아무도 불편하지 않은 파업이란 있을 수 없다.
현재 검찰 등 공권력은 산별연맹 집행부 및 서울지하철공사노동조합 간부 등에 대하여도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여 체포·구속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 대다수의 찬성에
의해 파업을 결의하고, 조합원들 스스로 노무제공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여 강경 대응함에는 신중해야 한다. 개인적인 노무제공의 거부가 범법행위가
아님은 명백한데 이를 집단적으로 행하였다고 하여 업무방해죄의 범법자로 처벌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을 이유로 처벌하려는 것으로 결국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나아가 이것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노동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검찰 등 공안당국이 노동계에 대한 강경
대응방침을 천명하고 있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말살하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닌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의 합의에 의한 신 노동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으로 마련된 노사정위원회는 명실공히 사회적 협약기구로서의
소임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노동계의 불신을 제거하려면 정부
및 공안당국의 정책에 획기적 전환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계를 배제한 사회적
협약 기구의 존재는 어떠한 의미가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공안당국이 그릇된
노동관행 속에서 비롯된 노동계의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을 천명하고 있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부적절하고 잘못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노동계는 IMF 상황을 맞이하여 고통분담의 사회적
요청에 따라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는 노동법 개정, 근로자파견제의 도입 등 그 동안
노동계가 격렬하게 반대하던 문제들에 대하여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입법화하는데
동의하였다. 사회안전망의 정비 없이 실직자로 몰려난 노동자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직장을 지킬 수 있었던 근로자들도 임금삭감 등 고통을 감수하였다.

그러나 IMF 상황을 맞아 우리 사회는 지난 1년여간
행해진 구조조정을 통하여 ‘노동자 자르기’에는 성공하였지만, 과잉설비 해소라는
구조조정의 본래의 목적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노동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받고 있다. 노동자들이 왜 정부의 엄단 방침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돌입하였는지 정부는
노동계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생존권 박탈하는 구조조정반대, 법정노동시간단축,
사회안전망 구축, 산별교섭체제의 보장’ 등 노동계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도 정부는
경청해야 한다.

우리는 정부가 노동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철회하고
즉각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한다고 하는 ‘국민의 정부’가
노동계를 배제하고는 그 역사적 소임을 다할 수 없다고 우리는 확신하며, 따라서
우리의 요구사항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1. 정부는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강경대응을 철회하라.

1. 정부는 노동관계법을 개정하여 파업권을 국제기준에
따라 보장하라.

1. 구조조정은 노동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시행하라.

 

 

1999. 6. 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 장
최 영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