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변호인단
발족회견문]
노동법 개정에 즈음한 노동자
탄압에 대응하는
공동변호인단을 발족하면서
** 편집자 주 : 모임에서는 지난 12월 2일 노동법 개악저지와
민주적 개정을 위한 교수·변호사 거리행진을 실시한 데 이어 지난 12월
12일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정부, 여당 재야 노동계 상호간에 쟁점이
되어 노동계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 총파압관련
노동변호인단을 발족하였다. 이 자료는 이 발족식에서 기자회견문으로
제시된 것이다.
1. 지금 우리는 노동관계법 개정을 둘러싸고 노사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긴장과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정부가 확정하여 국회에 제출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대해, 노동계는 그 내용이 기업측의 요구만을 적극 반영하여 노동법을
오히려 이전보다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파악하고 올바른 노동법개정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총파업에 돌입할 것을 예고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강경대응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2. 이처럼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증폭되고
노동계와 정부가 전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는 등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보다 노동법 개정의 출발점이었던 ‘개혁’이 시간이
흐를수록 퇴색되어 급기야 실종되고 만 것에 기인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지난 5월부터 대통령자문기구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발족시켜 노동법 개정을 추진한 취지는,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게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연합(UN),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이 정한 기준과 규범을 반영하여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정립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부는 애당초
노동법 개정작업을 ‘개혁’ 차원에서 시작한다고 천명하였고 국민들도
기대속에 그 추이를 지켜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는 사이에 노동기본권의 확보보다는
기업경쟁력의 강화가 우선시되어, 국회에 제출된 정부의 최종안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만들어져 노동기본권을 침해한 대표적 독소조항들인
복수노조금지 조항, 제3자개입금지 조항, 교사.공무원 단결금지 조항
등 악법조항은 구차한 유보조건을 달아 사실상 존속시켜 놓은 반면,
노동자보호와 관련하여 신중을 기해야 할 변형시간근로제, 집단해고제는
전면 실시하며, 나아가 근로자파견제 또한 빠른 시일안에 별도 입법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볼 때 정부가 이번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노동자측의 요구는 묵살하고 국제경쟁력강화라는 명분으로
사용자측의 논리와 요구만을 적극 반영하였다는 평가는 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정부의 이번 노동법 개정안은 지난 1989년 여야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의 내용은 물론, 6공 시절
노동부의 자문기구로 발족한 노동관계법연구위원회가 1994년에 마련한
노동관계법 개정건의안보다도 후퇴된 것이며며, 더 나아가서 사용자측의
입장에 치우쳤다고 비판받았던 노개위의 공익수정안에서조차 더욱 후퇴한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은 민주화된 복지국가로
진입하기 위해 우리 시대가 수행해야 할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오히려 역사를 거스르는 ‘개악’일 따름이다.
3. 우리는 기업의 성장없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우리 사회의 중대한 과제중의 하나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을 진실로 강화하기 위한 조건과
토대는 정부나 사용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이번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노사관계의
합리적 정립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며, 노사관계의 합리적 정립에는
노사의 균형이 그 핵심적 관건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노사중 어느
한쪽의 주장만이 일방적으로 수용되는 모습은 결국 갈등을 온존, 증폭시켜
더 큰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번 정부의 노동법개정 추진과정과 여기서
나온 개정안의 내용에서 노사간의 균형이 심히 일그러져 있음을 본다.
이에 그동안 민주화된 복지국가를 염원하여 나름대로 활동하여 온 우리
민변은 노동계가 소외와 절망 끝에 총파업이라는 극한 수단을 선택하고
이에 대해 정부가 강경탄압을 예고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그러진
노사관계의 균형을 회복하여 합리적 노사관계를 정립하는데 기여하고자
공동변호인단을 발족하기로 결정하였다.
4. 우리는 변호인단을 발족시키면서도 노동계의 대규모
총파업과 이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국가경제적 손실에 주목한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이 대단히 복잡하고 어렵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고 보기에 정부 및 국회와
노사 양측에 파국을 막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
먼저 정부는 노동법 개정안을 연내에 강행처리한다는
방침을 철회하여야 한다. 노동계가 총파업 돌입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정부가 노동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개정안을
확정짓고 연내에 강행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에서 비롯한 것인 만큼,
이제라도 정부는 합리적인 노사관계의 정립을 위하여 노사의 의견을
수렴하여 명실상부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비극적인
파국과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국가경제적 손실은 결국 정부의
책임이며 부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계와 경영계도 합리적인 노사관계의 정립없이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재삼 각성할 것을 촉구한다.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서로의 입장을 애써
이해하려는 노력이며,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특히 경영계는 직접적 생산자이며 소비자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동반자임을 인식하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야말로 그동안의 국민들의 여망에 답하는 길이며,
노사관계에 있어 한쪽 당사자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모습은
결국 더 큰 파국의 조짐이라는 역사의 뼈아픈 가르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회는 이 시기에 국민들의 의견과 여론을 반영하는
입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국회는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는 노동계와
경영계, 그리고 이들의 요구를 원만하게 수렴하지 못한 정부가 국민의
여망을 외면한채 초래한 현재의 상황을 수습하고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이 시기의 유일한 헌법기관이다. 형평에 어긋난 노동법 개정안을 졸속으로
강행처리하는 것은 결코 국민의 뜻이 아니다. 그동안 노동법 개정작업이
추진되고 있었음에도 정작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가 대선 논의에 몰두한채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이제라도 국회가
활발한 논의를 펼침으로써 노사간의 갈등 해소는 물론 국론을 모아 파국을
막아달라는 것은 국민들의 단순한 기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이며 명령인 것이다.
5. 결코 파국을 바라지 않는 일반 국민들과 우리의
위와 같은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노동법 개정안의 연내 강행처리방침을
고수하여, 노동계가 예고한 대로 총파업에 돌입하고 정부가 과거 정권의
구태의연한 모습대로 이를 강경진압하여 노동자들이 대량구속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우리 변호인단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면서
그 피해를 수습하는데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이 만큼 성장하고 발전하는데에는
노동자들의 노고와 희생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총파업과 관련한 제반 문제에 대해 다양한 법적 대응을
강구하고 있는 우리 변호인단은, 올바른 노동법개정을 목표로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 연내 강행처리방침을 철회시키려는 노동계의 총파업을
정부가 불법이라고 성급하게 규정하는 것은 결코 설득력이 없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는 그 쟁의행위의 주체, 목적,
수단 등의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한 법리이니만큼
이번 노동계의 총파업 역시 단위노조와 상급단체의 관계, 민주노총의
법적 지위와 성격, 노동법 개정문제와 근로조건개선과의 관계와 앞으로
전개될 파업양상에 따라 그 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근로조건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노동법의
개악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를
가로막는 사회는 이미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다. 정부가 노동계의 당연한
의견표출을 설득력없는 형식적 실정법 논리로 가두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에 역행하는 것으로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6. 합리적 노사관계의 정립을 염원하는 우리 변호인단은
현재의 갈등이 생산적인 진통이기를 소망하며, 그 발족에 즈음하여 다시
한번 정부에 대하여 노동법 개정안의 강행처리방침의 철회를 요구하고,
우리의 노사관계법이 이 시대의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노동법 원리와
국제적 기준 및 규범에 걸맞게 개정되기를 거듭 촉구한다. 우리는 우리
변호인단이 발족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을 개탄하면서 앞으로 우리 변호인단이
활동할 필요가 없게 될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1997. 2. 2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최 영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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