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밖의민변]-새 검찰총장에 바란다

2002-02-26 167

동아일보 1월 16일(수) 시론

정권과 손끊고 홀로서라
– 새 검찰총장에 바란다

신승남 검찰총장이 드디어 물러났다. 임기의 3분의 1도 미처 채우지 못한 7개월 만의 퇴진이다. 더구나 동생 문제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한 상황인데도 ‘드디어 물러났다’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지난번 옷로비 사건과 파업유도 사건으로부터 거듭된 탄핵소추 발의를 거쳐 최근의 벤처 게이트들에 이르기까지 어긋날대로 어긋난 검찰의 업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그 개인에게도 가혹한 일이겠지만 이제 그의 추락으로 더 이상 검찰의 추락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온 국민이나 검찰 스스로의 간절한 바람이다.
이제 새 검찰총장이 임명된다. 사람이 바뀐다고 하여 덜어진 신뢰가 바로 회복될리는 만무하나 검찰을 거듭나게 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그의 두 어깨에 걸려있다. 위기에 빠진 검찰조직을 추슬러 실추된 위상을 곧추세움으로써 신뢰받는 사정의 중추로서의 검찰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가 가장 우선 해야 할 일은 해묵은 과제들을 들추어내는 일이다.

<군대식 조직문화 해체를>

먼저, 검찰은 정치권력의 개입을 대담하게 뿌리쳐야 한다. 우리는 검찰이 군사독재 시대에서는 물론 민간정부 아래에서도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음을 목도해 왔다. 준사법권이라는 검찰권은 법으로부터 한발자국도 밖으로 나갈 수 없음을 명백히 하여야 한다. 이제 검찰총장이 인사청문회를 자청하고 그 자리를 공직의 마지막으로 삼아 법무장관으로 승진하는 통로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다음, 검찰은 수직조직의 함정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 독립관청인 검사들로 이루어진 검찰은 분명 군대, 경찰, 정보기관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검찰은 조직의 논리가 가장 강조되는 정부기관의 하나가 되었다. 공익의 대표자들로 이루어진 엘리트 조직이라는 자부심보다는 일사불란,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에서 조그마한 틈새도 허용치 않는 경직된 조직지상주의와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있었다. 검사의 항변권 신설, 구속승인제 일부 폐지 등 지난해 법무부가 발표한 검찰 개혁방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법령 적용의 통일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 이외에는 검사동일체원칙을 폐지하여야 한다.
나아가 검찰은 수사독점의 집착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권 문제나 상설 특별검사제에 대해 보이는 극도의 과민한 반응에서 우리는 검찰이 족쇄를 자초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수사와 기소권이라는 거대 권한이 독점되어 있을 때 그 행사에서 균형이 담보되기 어렵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정 범위의 정형화된 사건들이나 그 정치적 부담 때문에 오히려 직무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미묘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수사권을 나누는데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재정신청 범위의 확대로는 부족하고, 특별수사검찰청의 신설도 해답은 아니다. 특별검사제를 상설화해야 한다고 검찰이 먼저 제안해야 마땅하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검찰심사위원회와 같은 시민참여나 국민감시의 제도 도입에도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지역연고의 고리를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지금 검찰 위기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도 바로 인사에서 지역연고를 극복하지 못한데 있다.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할 준사법권의 행사가 연고 위주의 패거리 인사에 의해 굴절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사의 투명성을 위해 검찰인사위원회에 외부인사를 참여시켜야 하며, 나아가 그 위원회에 실질적인 검찰총장 추천권과 검사 인사권을 주어야 한다.

<수사독점·지역연고 버려야>

그러나 검찰총장이 아무리 결연한 의지를 갖고 탈정치화, 탈조직화, 탈독점화, 탈연고화의 기치를 내건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할 수 없다. 1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다짐한 김대중 대통령의 천명이 그동안 우리가 숱하게 들어왔던 정치적 수사로 끝나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이것만으로 다 된 것일까.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은 타락하고 부패할 수 밖에 없다.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정치권력에 감시하고 검찰을 지켜보지 않으면 권력은 다시 오랜 관성대로 검찰을 타락시키려 할 것이고, 검찰 또한 법의 파수꾼이라는 고된 짐보다는 권력의 향유자라는 달콤한 유혹을 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