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법률신문 연구논단에 실린, 최재천회원의 글입니다. 1월 14일자(월)에 실렸으며, 의료과실 소송에서의 의사의 주의의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관심있는 회원분들에게 많은 도움 되기를 바랍니다.
1. 의료과실의 기준되는 의료행위 수준
우리 대법원은 “의사의 주의의무는 의료행위 당시 의료기관 등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므로, 의사가 행한 의료행위가 그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다59304 판결)”고 하였다. 이후 “이러한 주의의무의 기준은 진료당시의 이른바 임상의학의 실천에 의한 의료수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나, 그 의료수준은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으로 파악되어야 하고 당해 의사나 의료기관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고려되어서는 안된다(대법원 1997. 2. 11. 선고 96다5933 판결)”면서 주의의무 기준을 좀더 구체화하였다. 어쨌든 판례의 일관된 입장은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이 주의의무의 판단기준 즉, 의료과실의 일반적 기준임을 확인하면서 그 수준은 규범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이라고 판시한다. 의료과실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판례의 발전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는 소송법적 이론의 발전으로 입증책임을 둘러싼 법리의 변화, 둘째는 구체적인 사건을 기준으로 임상의학 수준의 향상에 따른 의사의 주의의무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이다. 2001년 우리 대법원 판례는 후자의 관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한 진보를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의료 수준의 향상이 의사의 주의의무 수준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의료과실의 기준 되는 법원의 판단기준도 변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가 반영된 수건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2. 폐혈전 색전증(대법원 2001. 5. 29. 선고 98다51367 판결)
가. 사실관계
경산부가 제왕절개술을 통해 4kg의 태아를 출산하였다. 수술후 30시간이 지나면서부터 호흡부전등의 상태에 빠져 기관내 삽관을 거쳐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전원되었지만 폐혈전 색전증으로 사망하였다.
나. 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첫째, 급성호흡곤란이 흉통을 동반할 경우 폐혈관색전을 의심해야 하는데 이 부분의 진단과 처치가 부족한 점, 둘째, 동맥혈가스 분석결과에 대한 자료와 결과가 보이지 않는 점 셋째, 적어도 항응고제인 헤파린은 사용될 수 없었는지, 아니면 다른 치료방법은 존재할 수 없었는지 하는 점 등을 병원측의 과실로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
다. 소 결
지금까지 산부인과 사고에서 색전증은 첫째, 자연분만 과정에 주로 발생하는 양수색전증과 둘째, 제왕절개술 과정에서 주로 발생하는 혈전색전증이 논란이 되어왔다. 양수색전증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병원측의 책임이 부정되어왔다. 혈전색전증에 대해서는 역시 법원의 입장이 병원측의 책임을 부정하는 쪽이었다(다만, 제왕절개술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16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심부정맥혈전증 및 폐색전증으로 사망에 이른 사건의 경우에 병원측의 책임을 인정한 2000. 1. 21. 선고 98다50586 판결이 있다). 이번 판결은 폐색전 자체가 사실상 원인불명이라 예방이 불가능하며 급격한 악화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부정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제왕절개술 후에는 색전의 위험성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고 응급상황 발생시 곧바로 처치에 돌입해야 한다는 주의의무를 선언한 것이다. 제왕절개 분만과정에서 의사의 주의의무가 수술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산후관리과정 즉, 당연히 예상되는 장래의 위험성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선언한 것인데 이는 의사의 주의의무의 수준을 환자의 권리구제의 입장에서 폭 넓게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법률적 평가와는 별개로 특별히 제왕절개 비율이 높은 우리 나라에서 자연분만시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이 대단히 가혹하기 때문에 방어적 차원에서 제왕절개를 선호한다는 의사들의 잘못된 인식과 변명에 대한 법원의 확실한 입장표명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겠다.
3. 미숙아 망막증(대법원 2001. 5. 8. 선고 2001다14436 판결)
가. 사실관계
산부인과에서 임신 27주 6일만에 미숙아를 출산하였다. 아이는 당시 체중 1.15㎏, 신장 39㎝의 미숙아여서 같은 날 소아과에 입원하여 보육기(인큐베이터)에 넣어진 다음 보육되다가 약 2개월 만인 1997. 1. 18. 퇴원하였는데, 미숙아 망막증으로 양안이 실명되었다.
나. 법원의 판단
우리 대법원은 담당의사들이 적절한 시기에 미숙아의 안저검사를 실시하여 미숙아 망막증이 진행되고 있는지의 관련 징후를 살피어야 하고 또는 보호자에게 관련 문제를 자세하게 설명하여 그 질환에 대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할 주의의무를 지고 있었음에도 그 의무이행을 게을리 함으로써 실명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다. 소 결
이 판례는 의료수준의 변화와 향상에 따른 의사의 주의의무 기준의 변화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일본에서는 1979년과 1982년만 하더라도 진료당시의 의료수준을 이유로 미숙아 망막증에 대한 의사의 과실을 부정하였다(최고재판소 1979. 11 .13. 판결은 1967. 출생 신생아 사건 ; 최고재판소 1982. 3. 30. 판결은 1969. 출생 신생아 사건). 그런데 일본 최고재판소도 1985년 들어부터는 적절한 안저검사와 광응고 수술에 의하여 미숙아 망막증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으며 극소 미숙아에 대한 의료기술이 향상된 점, 보육기가 널리 보급되어 관리기술이 일반의사에게까지도 알려진 점등을 들어 비로소 의사측의 과실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의료수준에 따른 의사의 주의의무향상이 우리 법원에서도 인정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번 사건인 것이다. 미숙아 망막증은 미숙아 치료의 발달과 그 흐름을 같이 하는데 고농도산소 환경이 요구되는 의학적 상황에서 이 부분까지도 의사의 집중적 관찰이 요구된다며 의사의 주의의무를 의료수준의 향상에 일치시킨 것이다.
4. 전신마취술(대법원 2001. 3. 23. 선고 99다48221 판결)
가. 사실관계
좌측발목 경골골절 정복치환술을 받기 위하여 입원, 수술에 앞서 전신마취를 하기 위하여 마취제를 투여한 후 기관내 삽관을 하고 호흡낭을 조작하던 중 갑자기 기관지 경련을 일으켜 뇌 손상으로 얼마 후 사망하였다.
나. 법원의 판단
부검결과 망인의 심장은 정상인 보다 상당히 비대해 있었고 좌측관상동맥 및 그 분지의 이상주행 및 저형성이 관찰되었으며 관상동맥이 경화되어 있었고 심근에서는 다발성의 지방변성이 나타났으며 상행대동맥에서는 죽종이 나타났다. 우리 법원은 이러하다면 현재의 의료상황에 비추어 전신마취를 실시하는 모든 환자들에게 심전도 검사 외에 심초음파 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할지라도, 전신마취 시술에 부수되는 중대한 부작용의 결과를 감안한다면, 심전도검사나 기타 사전검사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심장이상의 의문을 품을 만한 사정이 발견될 때에는 심초음파 검사 등을 통하여 심장이상의 유무를 확인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다. 소 결
역시 의료수준의 변화를 반영한 판례이다. 임상의학의 현실상 모든 환자들에게 심초음파 검사를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사전검사 과정에서 의심이 가는 환자들에게만큼은 반드시 심초음파 검사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의사의 직관보다는 객관적인 검사가 중요시되는 임상의학과 국민들의 의료에 대한 인식을 깊숙이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심전도 검사상 이상이 발견된 환자에 대해서 정밀검사를 시행하지 아니한 채 전신마취를 시행하여 사망한 경우 의사의 책임을 인정한 사건(1998. 6. 2. 선고 98다32045 판결)보다는 진전된 것인데 전신마취 후 수술도중 심정지가 발생한 사건에서 인과관계에 관한 입증책임을 완화한 기왕의 판례(1995. 7. 27. 95다41079 판결) 등에 비추어 보면 우리 법원이 마취사고에서 만큼은 사고의 특성과 원고쪽 입증의 난해함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 기 타
가. 장애아 출생의 책임(대법원 2001. 6. 15. 선고 2000다17896 판결)
“어떠한 인간 또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존재가 타인에 대하여 자신의 출생을 막아 줄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고, 장애를 갖고 출생한 것 자체를 인공임신중절로 출생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법률적으로 손해라고 단정할 수도 없으며, 장애 자체가 의사나 다른 누구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이상 이를 선천적으로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난 아이 자신이 청구할 수 있는 손해라고 할 수도 없다”. 부모의 청구에 대해서도 역시 같은 논리로 배상 책임이 부정된 사례(1999. 6. 11. 선고 98다22857 판결)가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 이어 프랑스도 우리 나라와 똑같은 사건에서 우리 법원의 인간의 존엄과 손해에 대한 해석과는 전혀 상반되는 판단을 기초로 올해 들어서 두 차례나 의사의 책임을 인정한 최고법원 판례를 내 놓았다.
나. 의료사고 합의의 취소(대법원 2001. 10. 12. 선고 2001다49326 판결)
의사가 맥페란을 주사한 직후 환자가 사망하여 의사가 환자의 유족에게 거액의 손해배상금으로 금 1억1천만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런데 부검결과 치료와는 무관한 심관상동맥류내의 혈전형성으로 인한 심장성 돌연사로 밝혀졌다. 대법원은 원고의 과실을 전제로 한 합의였기 때문에 착오를 이유로 화해계약의 취소를 인정하였다. 1990년이래 일관된 태도이다.
다. 치료 채권의 소멸시효(대법원 2001. 11. 9. 선고 2001다52568 판결)
장기간 입원치료를 받는 경우라 하더라도 다른 특약이 없는 한 개개의 진료가 종료될 때마다 소멸시효가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입원치료 중환자에 대하여 치료비를 청구하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으므로 퇴원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해석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