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밖의민변]-민사소송의 집행절차와 관련 감치제도의 도입, 과연 필요한가

2001-12-28 206


다음은 법률신문 [법조광장]에(2001. 11. 26) 유중원회원이 감치제도의 도입에 관한 주장을 담은 글입니다.
“민사소송의 집행절차와 관련 감치제도의 도입, 과연 필요한가”에 대한 회원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1. 현재 국회에서 심의중에 있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에서는 집행절차와 관련하여 재산조회제도를 새로 도입하고 있다. 법원에서 채무자에게 재산목록을 제출하라고 지정한 재산명시기일에 채무자가 출석하지 않거나 그 목록만으로는 채권자가 변제를 받기에 부족한 경우에 공공기관·금융기관이나 단체에 재산조회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에서는 언제든지 개인의 부동산·금융 재산이나 신용상태에 관한 전산망을 전국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이들 기관에 대해 일괄적으로 재산조회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동안 승소판결을 받고도 채무자가 숨겨놓은 재산을 알 수 없어 집행을 하지 못하던 고질적인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채권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획기적인 제도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에서는 채권집행의 실효성과 재판의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재산조회제도와는 별도로 감치제도를 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감치제도란 원래 법정의 존엄과 질서유지를 위한 제재의 일종이다. 법원 및 재판장은 법정내외에서 법정의 질서유지를 위한 재판장의 명령을 위배하는 행위를 하거나 폭언·소란 등 행위로 법원의 심리를 방해 또는 재판의 위신을 현저히 훼손한 자에 대해 직권으로 결정에 의해 20일 이내의 감치 또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법원조직법 61조 1항). 그런데 집행절차와 관련하여 감치제도를 또다시 신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채무자가 법원에서 정한 재산명시기일에 불출석한 경우 또는 재산목록을 제출하지 않거나 그 목록이 진실하다는 선서를 하지 않은 경우에 법관의 재량으로 최대한 2개월까지 즉시 채무자의 인신을 구속할 수 있도록 하되, 채무를 변제하거나 재산목록을 제출한 경우에는 석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신구속제도를 통하여 채무이행 강제의 효과를 높이는 한편, 채무자가 명시기일에 불출석하는 등 고의적으로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최대한 신속한 재판과 집행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2. 그런데 이와 같은 감치제도가 과연 필요한 것이며 실효성이 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구체적인 타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감치대상의 대부분은 채무자가 명시기일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일 것이다. 왜냐하면, 채무자가 명시기일에 일단 출석을 한 이상 판사 앞에서 재산내역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선서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채무자가 출석하지 않을 경우가 문제가 되는데, 감치재판을 한다 한들 그의 출석을 당장에 강제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므로 집행절차를 신속하게 진행시키고 채권자로 하여금 집행의 만족을 얻도록 해 주겠다는 당초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수 있을지 의문이고, 결국 별 실효성이 없는 감치재판으로 인하여 절차가 더 지연되는 결과만 낳게 될 것이다.

법원에서는 채무자가 불출석한 경우 대법원의 규칙으로 궐석재판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재판의 당사자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의 신체를 구속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을 허용하는 것은 당사자가 불출석한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에 대해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이므로 형평에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인신구속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법률도 아닌 법원의 내부규칙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법률이나 헌법 위반의 소지는 없는 것인지 심사숙고해볼 일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불출석한 채무자에 대하여 법원에서 직권으로 재산조회를 실시하면 그의 부동산이나 금융재산을 즉각적이고 손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인권침해의 소지를 제거하면서 재판의 신속이나 집행의 실효성 확보라는 목적을 훨씬 효과적이고도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감치제도는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할 때까지 최대 2개월간 그의 인신을 구속하여 둠으로써 사실상 채무변제를 강요하려는 데에 실질적인 목적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는 구속된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할 경우 즉시 석방하도록 한 대법원의 개정안 내용을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런데 감치제도가 이와 같은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면 채무자에게 인적 집행을 허용하는 결과가 되어 현재 우리나라도 가입하고 있는 UN 인권규약의 정신, 즉 “누구도 계약상 의무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어긋나게 된다.

3. 이에 대하여 법원에서는 현행 민사소송법은 명시기일에 불출석한 채무자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하도록 규정(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하고 있어 불필요하게 전과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이러한 불합리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감치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형사처벌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수사 및 기소절차와 법원의 확정판결 이후에야 형이 집행되므로 당사자에게 충분한 변명의 기회가 주어지고 또한 불구속수사가 원칙이므로 국민들이 어느 정도 이를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치제도는 명시기일 불출석만으로 바로 인신이 구속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중대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국민들로서는 형사처벌에 있어서의 형량의 많고 적음보다는 당장 자신이 구속되는지 여부가 더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수표부도나 사기사범 등의 경우에도 불구속 수사 및 재판의 범위를 확대해 나아가고 있는 추세에서 불과 수백만원의 채무를 변제하지 않은 채무자에 대하여 명시기일 불출석만을 이유로(심지어 불가피하게 출석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판사의 재량에 따른 결정으로 즉시 인신을 구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다.

나아가, 실효성의 면에서 보더라도 현행 민사소송법상의 형사처벌제도는 채무자가 수사기관의 소환에 불응하는 경우 지명수배라는 절차를 통하여 그의 소재를 전국의 수사기관이 체계적·정기적으로 파악하게 되므로, 채무자의 출석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 감치제도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결국 감치제도는 재판절차의 신속을 도모한다기 보다는, 법원의 업무편의를 위하여 채무자의 인신을 구속함으로써 채무변제를 사실상 강요하는 방향으로 운용될 위험성이 크다. 더욱이 대기업이나 카드회사에서 감치제도의 인신구속 효과만을 노려 소액 채무자를 상대로 일률적·기계적으로 명시신청을 할 경우 오히려 법원업무는 폭주하고 출석기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상당수 사람들이 감치집행의 대상이 될 우려도 다분히 있다.

따라서 재판절차의 신속과 집행의 실효성 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법원으로서는 다소 수고스럽더라도 새로 도입될 재산조회제도를 통하여 채무자의 부동산과 금융재산 등을 일괄적으로 조회하여 채권자에게 알려주고 채권자도 이러한 정보를 활용하여 자신의 채권을 스스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으로 보이며, 불필요하게 채무자의 인신을 구속하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은 제도를 시행할 필요성은 없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