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9.11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에 테러방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테러방지법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기에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음은, 현재 차관회의에서 의결된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우려를 담은, 정종섭회원(서울대교수)의 글입니다. -문화일보 12월 4일자(화)-
봄이면 생명이 움트는 소리를 들으며 대지의 박동을 느끼고, 가을이면 낙엽을 밟으며 삶의 결실을 음미하고, 자기 일한 만큼 충분히 대접받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즐거운 삶이리라. 그러나 현정부 들어 이념적 갈등이 증폭하고 적대감에 찬 공격들이 난무하면서 국민은 이 땅에서 사는 것조차 불안해하고 있다. 테러까지 우리 곁을 악령같이 떠돌고 있다.
[국정원 전북지부 앞 / 오마이뉴스]
지난달 26일 차관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는 안건이 의결됐다. 9.11 미국 테러사건과 아프가니스탄사태를 기화로 우리에게도 테러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이러한 때 정부가 테러를 방지하고 테러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체계적인 대테러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차관회의에서 의결된 테러방지법안의 내용에는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테러방지법의 골격은 대통령소속하에 국가대테러대책회의를 설치하여 대테러정책·활동을 총괄하되, 국가정보원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해 경찰과 군 헌병이 가지는 수사권까지 부여하여 대테러활동의 구심점으로 삼고, 관계기관에는 분야별 테러사건대책본부를 운영하며, 필요한 때 대통령이 군병력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 사회일각에서는 국정원이 강력한 힘을 쥔 이런 구상은 인권침해의 위험이 크다고 반대하고 있다.
오늘날 테러의 행태와 활동양상이 워낙 다양하고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없이 언제나 무차별적으로 가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응은 대단히 치밀하고 체계적이어야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이러한 테러가 국제적인 연결망을 가진 조직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으며, 우리와 같이 체제를 달리하며 분단된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이상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과 활동은 국내적 수준 뿐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으로도 체계적이고 강력한 것이 필요하다.
●인권침해 우려, 檢·警으로 충분●
이런 점에서 보면 대통령제 정부하에서 관계부처 장관과 핵심 책임자들로 구성되는 대테러대책회의를 대통령직속으로 설치하는 것은 필요하고 타당하다. 오늘날 광범하고 고강도로 계획되고 자행되는 테러를 감안하면 단순히 경찰력으로 이에 대응하는 것은 대단히 미약하다. 따라서 대테러활동에는 경찰력 이외에 필요한 경우에 군병력의 동원이 요구된다. 심각한 테러사건의 경우는 사실상 전시상태와 같으므로 이에는 대응력이 가장 강한 군병력이 지원돼야 함은 당연하다. 현재 군병력의 동원은 계엄으로도 가능하지만 이는 국민의 일상적인 자유와 권리에 심대한 제한을 가져오므로 테러에 계엄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군병력 동원상의 남용에 대한 통제장치는 세밀하게 마련돼야 한다. 법안에는 사후 국회의 군병력 철수 요구제도를 두고 있으나, 이에 더하여 군병력 발동의 요건과 해당 경우를 명시적으로 열거해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편 테러의 방지에는 그 징후를 탐지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한 바, 이러한 활동에는 국제조직을 통한 협조와 외교활동 이외에 여러 정보기관의 활동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따라서 국정원이 이러한 정보활동과 대테러활동지원에 나서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국정원이 대테러활동과 관련하여 수사권을 갖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테러활동과 관련된 수사는 경찰과 검찰로도 충분하므로 국정원은 원래 기능데로 첩보 및 정보활동에 중점적인 무게를 두는 것이 옳고, 국가기능상의 체계에서도 옳다.
●軍동원 요건도 구체적 명시를●
국정원은 대테러정책과 활동을 기화로 수사권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원래의 대공업무와 정보업무의 기능을 회복할 일이다. 이 정권에서 국정원이 대북사업에 너무 깊이 개입하면서 간첩 하나 잡지 못할 만큼 기능상의 심대한 왜곡이 있었고, 따라서 대공활동과 정보활동의 축이 심하게 무너졌다. 만에 하나 이런 힘의 빈 자리를 수사권확보로 메우려고 하면 또 한번 국정원의 기능이 왜곡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국가의 대테러시스템은 대통령직속의 체계로 구축하되, 각 기관은 그에 요구되는 자기 역할만 하는 것이 타당하고, 경찰·검찰·국정원은 원래의 자기 기능에 합당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면 될 것이다. 이런 국가시템을 구축하는데 기관간의 힘겨루기는 절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