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밖의민변]-인터넷등급제와 청소년

2001-11-27 157

1일부터 인터넷에서 청소년 유해매체물의 전자표시제도가 전면적으로 시행된다.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인터넷 검색기(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익스플로러)에 설치되어 자동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물을 차단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배포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조만간 도서관이나 학교는 물론이고 피시방에도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검열 반대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는 이 제도에 대해 반대하며 지난달 22일부터 60일 동안의 예정으로 릴레이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하지만 반대운동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차갑기만 해서 안타깝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 `도대체 인터넷 등급제가 뭐야?’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둘째 `청소년 보호를 하지 말자는 거야’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상당하다는 점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터넷 내용등급제는 말 그대로 인터넷 게시물을 몇 가지 기준(성 표현이나 폭력의 수준 등)으로 구분하여 등급을 매긴 뒤, 이 등급을 인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컴퓨터에서는 일정 등급의 인터넷 게시물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영화에 등급을 매기는 것과 유사하나, 접근금지 조처를 기계가 자동으로 수행한다는 점, 등급 미표시 게시물이 무한히 존재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반대의 견해도 상당하기는 하지만 세계 각국이 인터넷의 내용규제 모델로 인터넷 등급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왜 반대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등급제라고 하여 다 같은 등급제가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매체 중 가장 자유로운 인터넷의 성격상 그리고 인류복지 향상에 핵심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인터넷의 순기능을 해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 등급제의 구체적인 시행방법은 민간 자율로, 다양한 기준에 따라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대강의 세계적 합의방향이다. 특히 법적으로 강제되는 인터넷 등급제는 결과적인 검열을 수행하는 것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

정통부는 유해매체물 전자표시제와 자동차단 소프트웨어는 인터넷 등급제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앞에서 말한 인터넷 등급제의 개념에 정확히 일치하는 제도이다. 그것도 다양한 유형의 인터넷 등급제 중에서 가장 질이 낮은 형태, 즉 단일한 기준에 의한 2단계 등급(유해매체와 비유해매체)과 법률(청소년보호법 및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강제되는 등급제이다. 이 제도와 등급제가 서로 다르다는 정부의 주장은 거짓말이거나, 적어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청소년 보호에 관하여 보자. 유해매체물 전자표시제에 반대한다고 하여, 당연히 `청소년 보호’나 청소년보호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반대론자 중에는 청소년보호법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는 논자가 있으나, 전자표시제와 청소년보호법 개폐 주장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나는 청소년에 대한 보호제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어떻게’에 있다. 정보통신망법에는 인터넷상 청소년 유해매체물에 대해 `유해매체 표시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이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현실 매체와 달리 그 한계가 없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강제적인 등급’을 부여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우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근거법인 청소년보호법에도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서는 `유해매체 표시의무’만 부과하고 있다. 그런데 정통부는 갑자기 법률이 위임하지도 않은 사항인 `전자표시제’를 대통령령에 삽입하여 지금과 같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정기국회 때 국회는 정통부가 마련한 강제적인 인터넷 등급제를 삭제하였다. 결국 정보통신부는 교묘한 방법으로 국회의 입법의사를 무시하고 강제적인 인터넷 등급제를 사실상 관철시킨 것이다.

한국 정부의 검열에 대한 욕망은 참으로 끈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