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밖의 민변]- 방송금지가처분은 검열인가?

2001-10-09 180


다음은 “방송금지 가처분은 검열인가”라는 제목으로 <미디어오늘>2001년 9월 13일자에 기고한 김기중 변호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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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동산 그 후 5년’이 법원에 의해 방영이 금지된 것을 두고, 사법권에 의한 언론검열이라는 시각과 법원의 관여에 의한 사전금지는 검열이 아니라는 시각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사법시스템에 대한 것이므로 상호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아야 할 문제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검열이란 표현물을 미리 보고 그 공개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므로, 재판부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표현물을 미리 보고 그 공개여부를 결정해주는 현재의 방식은 사전적 의미에서 검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이란 헌법재판소의 견해에 따르면 ‘행정기관’의 사전검열만을 의미한다는 것이므로, 이 견해가 타당한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법원에 의한 ‘검열’은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이 아니다.

결국 지금과 같은 ‘검열’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서로 다른 전제를 놓고 벌이는 소모적인 논쟁에 불과하다. 더구나 개인의 권리침해에 대한 최후의 구제장치로 사법제도를 두고 있는 이상 방송금지가처분 결정을 ‘사법에 의한 검열’이라고 무작정 비난하는 것도 그렇게 바람직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개되지 않은 방송에 대한 전면적 방영금지를 명한 ‘아가동산’ 결정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판단주체가 누구이든 표현물을 ‘사전에’ 검토하여 그 공개여부를 결정하는 행위, 게다가 해당 표현물 전체를 아예 햇빛도 보지 못하게 금지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검열’ 논쟁을 유발한 핵심적 원인은 재판부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표현물을 ‘미리보고’ 그 공개여부를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금지가처분절차에서 담당 재판부는 피고 방송사가 임의로 제출한 미편집 방송물이나 그 대본을 보고 신청인에 대한 권리침해의 가능성이 있을 경우 방송금지를 명하게 된다. 하지만 방송물을 미리 보고 권리침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표현물을 사전에 검토하여 공개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검열금지원칙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더구나 가처분신청인이나 법원은 가처분피신청인(방송사)에 대해 해당 방송물의 제출을 강제할 수 없다.

민사소송법 제714조에 의한 가처분은 긴급처분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쌍방의 공방이 오가는 변론(辯論)이 아닌 서면심리에 의하도록 하고 보충적으로 심문(審問)할 수 있을 뿐이며, 엄격한 증거조사가 아닌 소명(疏明)에 의한 입증만 허용된다. 소명절차에서는 ‘즉시 조사할 수 있는 증거’에 한하여 조사할 수 있으므로, 가처분신청인이나 법원은 이미 공개되어 있는 서류가 방송물(예고방송이나 광고방송), 법정에 출석해 있는 증인 등의 증거를 사용할 수 있으되, 문서나 검증목적물의 제출명령과 같은 증거조사(법원의 제출명령이 있으면 문서 또는 방송물 보유자는 그것을 제출해야 한다)는 허용되지 않는다.

즉, 방송금지가처분절차에서 방송사는 해당 방송물이나 그 대본을 제출할 필요가 없으며, 제출해서도 아니된다는 것이다. 제출이 강제되지 않은 대본이나 방송물을 미리 제출하여 ‘검열’을 자초한 방송사가 이를 기초로 한 사법판단을 ‘검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먼저 민사소송법 등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최대한 행사한 후 법률에 의해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때 헌법적 시각에서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방송금지가처분재판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신청인측은 이미 공개되어 있는 방송의 내용, 예를 들면 예고방송, 신문 등의 예고기사, 취재대상자의 진술서나 증언 등을 기초로 소명할 것이고, 법원은 이 자료를 기초로 예견되는 권리침해의 내용과 예고방송 등 공개된 방송내용의 범위 내에서 방송금지를 명하게 될 것이다. 방송사는 법원이 명한 방송금지의 내용을 고려하여 최종 프로그램을 완성, 공개하면 될 일이다. 이런 구조라면 ‘검열’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으며 권리를 주장하는 신청인측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방송사측 사이의 균형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