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행정지도를 통한 노동통제를 중단하라
행정지도를 통한 노동통제를 중단하라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이 타결되었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검찰은 조종사노조의 파업이 중앙노동위원회의 행정지도를 위반한 불법파업이라는 이유로 조종사 노조 간부 14명을 체포할 것이라 한다. 이번 조종사 노조의 파업은 불법파업인가?
1999년 이래 민변은 노동쟁의 조정절차에 대한 행정부의 해석이 사실상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제약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조정 신청에 대하여, 교섭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장의 불일치가 없어 노동쟁의 상태가 아니고, 따라서 조정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행정지도는 결국 근로자의 파업권을 제약하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와 같은 비판을 수용하여 산하 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미진을 이유로 한 행정지도 결정에 신중을 기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번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조정 신청에 대하여 스스로 교섭미진을 이유로 행정지도를 함으로써, 행정지도는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7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된 노동쟁의에 대한 조정전치제도는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를 합리적이고도 평화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위와 같은 행정지도가 남발됨으로써 노동위원회가 행정지도라는 이름으로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마음대로 통제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2001. 3. 9. 교섭안을 보낸 이후 5차례 교섭을 요구하였으나 회사측이 거부하자 노동조합이 4. 6. 조정신청을 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는 5. 11. 교섭미진을 이유로 행정지도를 하자, 노조는 이를 받아들여 5. 25.까지 6차례 더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회사측의 불성실한 교섭태도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다시 5. 25. 조정 신청을 하였다. 그 후 2차례 교섭이 더 있었음에도 중앙노동위원회는 또 다시 교섭 미진을 이유로 행정지도를 하였다. 더구나 “총파업 일정에 맞춰주지 않기 위해 교섭일정을 최대한 연기하고, 합법적인 파업이 되지 않도록 중노위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아내…”라는 대한항공의 내부 문건까지 발견된 상황이다. 결국 행정지도는 합법적인 파업을 막기 위해 남용된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행정지도의 남용은 비단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조정신청에 한정되지 않는다. 노동위원회는 동일한 논리로 최근 코오롱 노동조합, 한국중공업 및 15개 사업장의 정상적인 임단협에 대하여 행정지도를 내리고 그 파업을 불법이라고 몰아 붙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법원은 파업의 정당성을 주체, 목적, 수단, 절차 및 기타 제반사정에 비추어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법원은 노동위원회의 행정지도가 내려졌다는 사정만으로 후속되는 파업이 불법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수 차례 판례를 통하여 밝힌 바 있다. 조정제도는 쟁의행위에 대한 완충장치와 절차적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지 궁극적으로 쟁의행위를 제한하려는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행정지도에 대한 노동위원회와 검찰의 이와 같은 해석은 노사간의 단체협상을 파행으로 치닫게 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검찰과 중앙노동위원회의 위와 같은 잘못된 해석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성실히 하기보다는 오히려 “행정지도 결정을 받아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용자는 노동조합과의 교섭에 어떻게 대응하느냐(행정지도 대상이 될 것인지 여부)의 선택을 통하여 노동조합의 파업권 행사 여부를 직접적으로 조절하고, 정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위원회를 통하여 파업에 대한 사실상의 허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인가.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노동3권은 노동자가 사용자와는 대립적인 관계에서 행사하는 권리이다. 노동3권의 평화로운 행사는 오로지 노사 당사자들간의 적극적인 대화와 교섭에 의하여서 구현될 수 있다. 그 중 파업권은 노동자의 이익을 증진하고 방어하는 본질적인 수단이며 노동3권의 최후의 보루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정부가 노동위원회를 통하여 노사관계를 제어하려는 기도를 중지할 것을 요청한다. 조종사노조의 파업이 불법 파업임을 전제로 한 노조 간부 14명에 대한 체포 등 강경 대응을 철회할 것을 요청한다. 노사관계의 안정은 정당한 법치주의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지 임의적인 법 해석과 강제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그동안의 우리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2001. 6. 14.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