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국가보안법 농성에 부쳐

2001-09-10 232

국가보안법은 그동안 인권침해 문제를 야기하여 왔고,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수없이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심지어는 정치권 내에서 진지한 토론조차 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 알다시피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1948년 당시는 냉전과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던 시점이었으나, 반면에 50여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크게 변화하였다.
또 국제적으로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우리 나라의 인권문제의 핵심이었고, 국제사회는 여러 차례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권고하기도 하였다. 1998년 말에는 국제연합 인권이사회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국내 재판절차를 통하여 유죄확정된 박태훈, 김근태씨 사건에 관하여 우리나라가 비준, 가입한 인권규약에 위반한다는 결정을 한 바 있다.
또한 국민의 대다수는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측면보다 인권침해와 정치적 악용가능성에 대하여 우려를 하고 있고,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80% 이상의 국민이 국가보안법의 개,폐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치권은 이러한 국내외로부터의 개폐 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여당은 김 대통령 취임 당시부터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 중의 하나가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의 개정이었음에도 임기를 반 이상 넘긴 현 시점까지 이러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김 대통령은 인권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것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음에도 정작 우리 사회 인권문제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개정하겠다는 원칙만을 되풀이할 뿐 어떠한 구체적 개정안도 제출하지 아니하고 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들리는 바에 의하면 여당 일부에서 국가보안법의 처리를 금년도 국회 회기에서 처리하지 않으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행되지 못할 보안법 개정 주장은 책임있는 공당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며국가보안법 문제의 해결 없이 인권대통령을 지향한다는 공언을 계속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일 뿐이다.
국민들은 지금 실천없는 개혁이라는 모토에 지쳐가고 있고, 현실적인 개혁을 더 이상 미루고 있을 시간도 없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인권문제에 있어서 국가보안법을 실제 개폐하는 실천 외에 정부와 여당에는 달리 요구되는 것이 없다. 그 외에 다음 회기에 처리하겠다는 약속은 또 다른 기만이며, 다른 당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과 무능력을 보여 주는 것일 뿐이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당내 일부에서 제안되는 것으로 보도되는 바와 같은 제7조 5항, 제10조의 삭제 정도로는 국제사회의 요구와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남용되어온 제7조 제3항을 그대로 존치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적용 현실의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힘든 것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태도는 더욱 한심스럽다. 시대착오적인 일부 의원의 발언을 감싸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당 총재가 수일전 공식적으로 국가보안법 개정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한다.
국민의 대다수가 국가보안법을 개폐하는데 찬성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여야 하는 정당과 의원들이 이를 외면하는 것은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없고, 국민 의사가 반영되지 아니하는 대의정치는 존재의의를 상실하는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의 요구에 답하여야 하는 것은 집권당만의 몫이 아니다.
더구나 이회창 총재는 대법원 판사 재직시 국가보안법 해석에 있어 소수의견을 통하여 국가보안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법원의 국가보안법 해석은 당시의 다수 견해와 전혀 달라지지 아니하고 있고, 따라서 최소한의 인권보장을 위한 해석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국가보안법의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지난 10여년의 적용 사례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이 총재가 앞장서서 국가보안법의 개정조차 반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행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만약 국가보안법의 완전폐지에까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아니하다면 적어도 이번 국회에서는 고무·찬양과 이적단체 구성·가입죄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제7조의 삭제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문제점 중 그 핵심에 있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은 그 구성 형식이 죄형법정주의 등에 위반될 뿐 아니라 국제연합 인권이사회에서 폐지할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조항이고, 현재 국가보안법 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이 조항이 유지될 경우 개정의 실효성이 거의 없으며, 제7조 제5항만을 폐지할 경우에는 개인의 행위를 처벌하지 아니하면서 단체에 가입한 사람만을 따로이 처벌하게 되어 법논리 상으로도 문제가 있다.

국가보안법 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할 경우 문제해결의 지체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역시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문제에 대하여 정치권은 문제해결의 회피와 상대방 정파에의 책임전가로 일관하여 왔다. 그 결과 문제 해결의 요구가 사회 안에서 제기된 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전체에서 책임있는 논의와 해결책이 제시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논의되고 해결되어야 할 주제가 매우 많은 우리 사회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고 있으며 비생산적인 논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임은 창설 이래 국가보안법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여 왔으나, 이와 같은 정치권의 책임 방기로 인하여 21세기에 이른 이 시점까지도 조금도 변화되지 못하는 현실에 항의하고자 오늘 농성에 들어간다.
오늘의 농성은 정치권 전체에 대하여는 국민의 의사가 정치권에 반영되어 실질적인 민주 정치가 실현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 정부 여당에 대하여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라는 촉구이며 , 야당에 대하여는 당리당략에 따른 모순적인 언행을 중지하고 국민과 국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비판이다.
이러한 촉구와 비판에 또다시 귀를 막는다면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며 사회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여야 하는 정치 과정이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2000년 12월 1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