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인권위-의견서]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의견서

2013-04-26 301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의견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민홍철 의원이 대표발의하고자 하는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의견을 개진합니다.

다 음

1.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 처벌의 효과와 문제점

○ 2011. 6. 17. 유엔 인권이사회는 <인권,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라는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이 결의안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성소수자(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등) 개인에게 가해지고 있는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행위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동시에 유엔 인권이사회가 계속해서 이 안건에 우선순위를 두고 검토하기로 결정한다고 하면서, 유엔인권최고대표에게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한 세계의 차별실태를 조사하여 보고서를 마련하라는 것과 2012. 3.에 있을 정기회기에서 패널토론을 실시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 한국 역시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이 결의안에 찬성한 바 있습니다.

○ 위 결의안에 따라 2011. 11. 17.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적 법과 관행 및 개인에 대한 폭력적 행위」 보고서를 작성하여 인권이사회에 보고하였고, 2012년에는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과 관련한 인권 보장을 위한 각국의 핵심적인 5가지 법적 의무를 자세히 풀어쓴 책자를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 위 유엔인권최고대표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한 76개 국가가 성적지향 또는 성별정체성에 근거해 사람들을 범죄화하는 데 사용되는 법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보고서는 그러한 행위를 범죄화하는 법이 시행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관계가 없고, 이러한 법의 존재만으로도 계속적이고 직접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개입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인 동성간의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을 범죄화하거나 차별하는 법률은 그 법률이 직접 적용되는 당사자나 직접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을 훨씬 넘어서는 영향을 미칩니다. 범죄라는 낙인은 심각한 정신건강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범죄화하고 차별하는 법률은 성소수자들이 사회 내에서 완전한 지위를 누릴 자유와 자신감을 억누르고, 벽장 속으로 숨어들게 하며, 사회적․문화적 현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취업과 교육에 있어서의 기회를 제한하며, 심지어 가족들과도 거리를 두게 만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러한 법률들은 사람들이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차별하며 혐오하고, 그럼으로써 본질적으로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무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작용하게 됩니다.

○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군형법상 추행죄는 적용된 사례가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동성애를 죄악시 하는 실질적인 규범력을 지닌 규정으로 존재해 왔으며, 군대 내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에 대한 법적 근거가 되어 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군대 내 성소수자에 대하여 성적접촉 유무와 관계없이 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게 될 가능성이 크게 됩니다. 또한 군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동성애적 성적지향은 범죄와 같이 취급되고 ‘성풍속’을 해하는 것으로 여겨지도록 함으로써 위와 같은 국제인권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 또한 개정안이 이성 군인간의 관계와 달리 합의에 의한 동성 군인간의 성적 접촉만을 처벌하는 것은, 헌법 제11조가 천명하고 있는 평등원칙 및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규율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 「형의 집행 및 수형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군에서의 형의 집행 및 수형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등 국내의 인권보장 흐름에 역행합니다.

○ 따라서 오히려 군형법상 추행죄를 폐지함이 타당하지, 개정안과 같이 동성간음죄로 개정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입니다. 군형법상 추행죄의 개정에 있어서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을 처벌에서 제외하여야만 국제인권기준 및 인권에 관한 국내법에 부합하게 되고 사회적인 인권의식 및 인권상황의 향상에 기여할 것입니다.

2. 군형법상 추행죄의 입법정책상 필요성 부재

○ 2004. 1. 1.부터 2007. 12. 31.까지 군형법상 추행죄(현행 「군형법」 제92조의5, 개정 「군형법」 제92조의6, 구 「군형법」 제92조)가 적용된 사건은 모두 176건입니다. 이 중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적 행위는 4건(3건 선고유예, 1건 기소유예), 나머지 172건은 강제추행 또는 위력에 의한 추행에 해당하나 피해자와의 합의로 군형법상 추행죄가 적용된 사례입니다.

○ 이와 같은 적용실태를 보면 군형법상 추행죄가 적용된 사건 중 98%가 형법 또는 성폭력특별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강제추행․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고, 군형법상 추행죄는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 규정으로 인한 처벌의 공백을 막기 위해 적용되고 있습니다. 결국 형법의 강제추행죄를 비친고죄화하는 기능을 주로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지난 2013. 4. 13. 군형법의 개정으로 성폭력범죄가 비친고죄됨으로써, 개정 군형법 제92조의6은 실제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만을 규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적 접촉에 대한 규율은 연 평균 1건에 불과한 적용례를 보이며 이마저도 선고유예나 기소유예로 처리되는 정도입니다.

○ 이와 같이 실제 적용에 있어 처벌의 정도가 무죄 판결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기소유예와 선고유예라면 처벌을 통한 위하효과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도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적 접촉은 기소유예로 처리된 바 있습니다. 인천지방법원 2009. 2. 18. 선고 2009고단90 판결 참조)

○ 따라서 군형법상 성폭력범죄를 비친고죄화하는 이상, 입법정책의 측면에서 군형법상 추행죄를 유지할 필요성이 인정되기는 어렵습니다.

3. 군형법상 추행죄의 위헌성에 대한 지적

○ 군형법상 추행죄는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위헌성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습니다.

○ 2002년 군형법상 추행죄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헌법재판관 주선회, 송인준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개인주의적·성개방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성에 관한 우리 국민의 법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동성간의 성적 행위가 비정상적이며 사회의 성도덕을 심하게 침해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점차 벗어나 성적 지향성이 다름을 이유로 고용 등에 있어서 차별하는 것을 평등권침해행위로 인정하기까지 이르렀으므로, 오늘날과 같이 성에 대한 사회적 의식 및 제도가 개방된 사정하에서는 공연성이 없고 강제에 의하지 않은 동성간의 추행을 군의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따라서 이를 금지하는 것은 군형법상 추행죄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라면서 위헌 의견을 개진한 바 있습니다.

○ 2008년 제22사단 보통군사법원은 이례적으로 군형법상 추행죄에 대하여 직권으로 위헌성이 있다고 보아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습니다. 이는 군형법 사건을 주로 다루는 군사법원 스스로 군형법상 추행죄의 적용에 있어서 위헌성과 불합리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제22사단 보통군사법원은 이 결정에서 군형법상 추행죄가 죄형법정주의에 위반하고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며,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위 보통군사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에 따른 위헌법률심판사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에 대해 이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며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므로 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 2011년 군형법상 추행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는 3인의 재판관이 “군형법상 추행죄는 강제에 의한 행위와 합의에 의한 행위를 동일하게 처벌함으로써 가벌성이 현저히 다른 행위를 대등하게 처벌하게 되고, 형법상 친고죄의 입법취지를 유명무실하게 하며, 행위자의 예견가능성을 저해하여 자기책임주의원칙에 반하고, 수사기관, 공소제기기관 및 재판기관의 자의적 해석을 초래한다”라고 하면서 그 위헌성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 2012년에 있었던 유엔 국가별 보편적 정례검토(UPR)에서도 군형법상 추행죄의 폐지 가능성 검토를 권고받은 바 있습니다.

○ 2002년과 2011년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위 조항의 합헌성이 인정된 것은 “특히 상급자가 같은 성적 지향을 가지지 아니한 하급자를 상대로 동성애 성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이유가 주요한 것으로서, 이는 강제추행 또는 위력에 의한 추행인 것으로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 처벌의 문제와 별도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위와 같이 위헌성이 문제되는 것은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의 문제로서 ‘강제추행, 위계․위력에 의한 추행, 또는 비동의 간음’ 등의 문제와는 별개입니다. 따라서 군형법상 추행죄의 개정에 있어서는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은 비범죄화함으로써 위헌 소지를 제거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4. 이성간 성관계에까지 확대 입장에 대한 검토

○ 언론보도에 따르면 귀 의원께서는 이성간 성관계까지 처벌을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위헌 소지가 매우 큽니다.

○ 이러한 경우 군인 부부간에 장교 숙소에서 (유사)성관계를 맺는 경우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될 것인데 이는 사생활의 자유 및 가족생활의 권리,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 이처럼 법조문을 아무리 구체화하더라도 합의에 의한 성관계에 대하여 형사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의 문제점은 소거되지 않으며,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부합하는 조문을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가령 영내와 영외를 어떻게 조문에 표현할 것인지, 영내라고 규정하더라도 영내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예를 들어 장교 숙소는 영내에 해당하는지 영외에 해당하는지), 혼인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군기와 관련하여서는 현재에도 군대 내에서 징계로서 규율하고 있고, 이를 넘어 이를 형사처벌이 필요하다는 어떠한 연구나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가의 형벌권행사는 기본권 보장의 차원에서 최소화되어야 하는 것이지 입법부가 자의적으로 그 범위를 넓힐 수는 없다 할 것입니다.

5. 결론

○ 군형법상 추행죄는 국내외의 인권보장의 측면 및 일선 실무의 측면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현행 군형법 제92조의5는 삭제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012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 과제>와 <제18대 대선 정책․법안 의견서>에서 현행 군형법 제92조의5에 대한 폐지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 군형법상 추행죄를 폐지하지 않고 개정한다 하더라도, 합의에 의한 접촉을 처벌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발생하고 국내외적 인권 흐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국민에 대한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크게 합니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이상, 개정을 반복하더라도 헌법상 기본권 침해 및 죄형법정주의 위반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 따라서 군형법상 추행죄에 대하여 개정을 시도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하기 어렵고, 오히려 위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2013년 4월 2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장 주 영

첨부파일

민홍철의원안_의견서_20130425.pdf.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