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비전향장기수 추모행위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의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을 환영한다.
[논 평]
비전향장기수 추모행위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의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을 환영한다.
오늘(24일) 대법원(2부)은 파주 보광사 내에 비전향장기수의 묘역을 조성하고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 연화공원’이라는 표지석을 묘역 입구에 건립하였다는 이유로 검찰이 국가보안법 이적동조 혐의로 기소한 사건[대법원 2008도235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등)]에 대하여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여 1, 2심의 무죄를 확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애시 당초 인도적 차원에서 비롯된 비전향장기수의 유해 안치 및 이 사건 묘역 단장이 국가보안법위반의 문제가 될 소지 자체가 없었다. 2005년 5월 이 사건 묘역을 조성하였을 당시 뉴스 보도까지 되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 묘역 조성 후 반년이 지난 2005년 말에 이르러 보수단체, 보수언론, 한나라당이 합작이나 한 듯이 이 사건 묘역의 표지석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이라는 문구를 넣어 남파 간첩과 빨치산 출신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 자들을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고 찬양하였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정체성 훼손’ 운운하며 색깔시비를 일으켰다. 색깔론이 일파만파로 부추겨진 결과, 결국 백주대낮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 사건 묘역을 파헤치는 만행을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비전향장기수 묘역을 조성하는 추모행위에 대하여 인도적 활동의 일환 내지 죽은 사람에 대한 추모의 차원에서 당연히 허용된다고 판단하였다. 묘비에 망인들이 조국통일을 위해 활동하였거나, 전향하지 않고 지조를 지켜냈다는 취지 등이 적혀 있으나 죽은 사람을 위한 묘비에는 그의 생전 활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을 적지 않고, 그가 생전에 스스로 인정받고 싶어 했던 바에 따라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취지의 내용을 적어 주는 통상의 관례에 따른 것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도 판단하였다. 북한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을 가리켜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고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 연화공원’이라는 표지석을 건립한 것 또한 인간의 기본권인 사상의 자유를 위해 장기간의 수형생활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사상, 신념을 지켜온 망인들의 생전의 뜻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망인들이 스스로 불리고 싶어 하는 표현을 표지석에 새겨 망인들을 추모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비전향장기수들의 행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취지의 내용이 적힌 묘비 및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하는 추모행위에 대하여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지 않고 원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하였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계기로 이를 문제 삼아 보수단체, 보수언론, 수구정당, 공안기관이 합심하여 종북좌익세력 척결이라는 광기어린 소동을 벌이고자 획책하고 있다. 수구보수세력의 색깔종북론 여론몰이를 그대로 방치하였다가는 비전향장기수 묘역을 문제 삼아 묘역을 파괴하고 유골을 파헤치는 현대판 부관참시의 만행이 언제든지 재발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우리 사회가 분단체제 하에서 냉전적 관행과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수언론과 공안기관의 색깔론 여론몰이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성이 마비되는 순간 2000. 6. 15. 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사문화되어 가는 국가보안법이 살아나 수구공안세력의 무기가 되어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백히 위태롭게 하는 역설적 상황이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다.
망자들의 묘비에 새겨진 글자조차 두려워 경계하며 이를 파괴하는 만행이 저질러지는 우리 사회의 서글픈 현실의 극복을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의 발전과 함께,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을 부추기는 국가보안법의 폐지, 그리고 국가보안법에 기생하는 수구공안세력의 청산이 하루 속히 실현되어야 한다.
2012년 5월 2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 장 장 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