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안 통과를 환영하며, 조례의 조속한 시행을 촉구한다.

2011-12-27 150

보편적인 국제인권기준에 다가선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안의 서울시의회 통과를 환영하며,


조례의 조속한 시행을 촉구한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안(이하 ‘조례안’)이 지난 12. 19. 서울시의회를 통과하였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광주광역시 학생인권보장및증진에관한조례에 이은 세 번째 학생인권조례가 탄생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인권은 나이,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권리이다. 그러나 유독 학생의 인권만은 유예될 수도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 그 동안의 한국사회에서는 공공연히 통용되어 왔고, 이러한 현실은 국제인권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유엔아동권리협약 가입 20년의 역사를 무색하게 하였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 또한 한국사회의 낮은 학생인권의식과 열악한 현실에 계속적으로 우려를 표하며 아동권리협약에 부합하도록 국내법·제도·관행을 개선하라는 권고를 반복하여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최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등 관련법제도를 헌법과 국제인권규범 수준에 맞추어 개선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최근 각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흐름 또한 헌법, 국제인권조약, 초중등교육법령 등의 상위법에 규정된 학생인권보장의 정신을 학교현장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으로서 교육분야에 보편적인 인권기준을 도입하는 일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다.


 


이번 조례안의 통과로 우리사회가 교육분야에서도 유엔인권이사국의 위상에 걸맞는 인권보장수준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조례안의 서울시의회 통과를 크게 환영하며 인권과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조례안이 갖는 의의를 간략히 되짚어본다.


 


 


첫째, 조례안은 학생은 임신·출산,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비롯하여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교육을 받고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권리가 있으며, 학교는 이러한 소수자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임신·출산, 성적 지향 등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광주광역시 학생인권보장및증진에관한조례,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회안 등에 이미 명시되어 있는 차별금지사유임에도 유독 이번 조례안과 관련하여 이들 사유를 차별금지사유로 넣어서는 안 된다는 반인권적 주장이 일었고, 이는 한국사회의 인권의식수준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현실을 되짚어보게 하였다. 조례안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의 권고에 따라 임신·출산,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비롯한 모든 차별금지사유를 조례에 명시함으로써 소수자 인권의 문제는 정치적 견해에 따라 찬반을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 소수자 학생에 대한 차별예방 및 권리보장이 실효성있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령에 그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시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하였다.


 


둘째, 조례안은 헌법, 국제인권조약, 초중등교육법령 등 상위법의 범위 내에서 학생들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확인함으로써 상위법의 인권보장 규정들을 구체화하였다.


 


학생인권조례의 상위법인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 등 ‘간접체벌’을 포함하여 고통 유발을 의도하는 모든 처벌이 아동에 대한 신체적 처벌로서 금지된다(유엔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8).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는 이러한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최근 개정된 동법 시행령 제31조 제8항은 이에 발맞추어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벌로서의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였다. 한편 초중등교육법 제18조 제1항은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하여 ‘조례’가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지도방법을 제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조례안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는 위와 같은 상위법령들에 근거를 둔 조항으로서,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모든 체벌은 금지되어야 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적인 방법으로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초중등교육법령과 같은 내용을 규정하면서 헌법과 아동권리협약상의 인권보장원칙을 구현하고 있다.


 


조례안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등의 규정 또한 헌법과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정치적 활동을 포함하여 결사와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향유할 수 있다는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규정들이다. 다만 조례안은 복장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은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학교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단서조항을 두어 국제인권기준에 못 미치는 내용을 규정하였는데 이는 앞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개선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셋째, 조례안은 앞선 두 지역의 학생인권조례와 달리 주민발의제도를 통하여 발의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는 서울지역에서 주민발의제도를 통하여 발의된 세 번째 조례안이자, 시의회를 통과하여 제정에까지 이르게 되는 최초의 조례로 기록될 것이다.


 


주민발의제도는 직접민주주의제도로서 1999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이번 조례안은 주민발의 서명운동과 공청회 등을 통하여 9만 7천여명의 서울시민들의 의사를 모아 발의되었으며 서울시의회에서의 적법한 심의와 의결절차를 거쳐 통과되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차례의 기관방문, 공청회, 토론회 등을 통해 학교현장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또한 위 과정에 충분히 반영되었다. 조례안이 발의되고 통과되기까지의 이러한 과정은 지방자치와 지역 안의 직접민주주의가 주민발의제도 도입 후 10여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이제 비로소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한국 지방자치역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시의회에 조례의 재의를 요구해야한다는 일각의 주장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덧붙이고자 한다.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제28조 제1항의 재의 요구 제도는 시·도의회가 권력을 남용하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견제권을 교육감에게 부여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위 조항은 교육·학예에 관한 시의회의 의결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저해’한다고 판단될 때에만 재의요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실체적 요건을 엄격하게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법령에 위반되지 않으며, 오히려 헌법, 국제인권규약, 초중등교육법령 등의 상위법의 범위 내에서 상위법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있는 법규로서 공익에 부합하므로, 애초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실체적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재의 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조례안의 어떠한 부분이 ‘법령위반’ 또는 ‘공익의 현저한 저해’라는 실체적 요건을 충족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실체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의 재의 요구는 무효인 행위에 해당한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존엄성 실현에 있다면, ‘인권’과 ‘교육’은 결코 상충해서는 안 되는, 상충할 수 없는 가치이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안이 9만 7천여명의 서울시민들의 발의로 상정되고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된 사실은 어떠한 이유로든 누군가의 인권을 유예시킬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저물었음을 보여주었다. 교육계를 비롯한 모두는 우리사회가 이미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서 요구하는 인권기준이 준수되는 교육현장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다음 단계의 물음으로 나아갔음을 인정하고 학생인권조례의 원활한 정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특히 서울시 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는 자신들이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따라 학교현장에서의 인권을 보장해야할 국내·국제법적 책임이 있는 주체임을 상기하여야 할 것이다. 근거를 알 수 없는 여론을 명목으로 내세우며 조례안의 재검토를 운운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그만 두고,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을 준거삼아 학교현장에 보편적 인권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학생인권조례의 실행과 정착을 지원하는 책임을 다 할 것을 촉구한다.


 


 


2011년 12월 2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 장 김 선 수

첨부파일

20111227_[논평]서울시학생인권조례안 통과 환영.pdf.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