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 평 ]
근시안적이고 체계성 없는 정부의 성폭력 대책을 중단하고,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모든 성폭력 범죄에 대해 친고죄 규정 폐지해야
체계적인 성폭력 예방시스템 구축을 위해 법률을 정비해야
1. 정부는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 상영으로 장애인 성폭력 및 장애인 복지시설 운영 부조리가 큰 사회이슈로 대두되자, 지난 7일 ‘장애인 대상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대책은 ▶인화학교 폐교 및 관련 교원 교단배제 ▶가해자 처벌 강화 ▶수화가능자와 같은 전문인력 보강 등 피해자 보호 확대 ▶사회복지시설 이용 장애인 인권 보호를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성폭력 범죄 모니터링 강화 및 사회적 인식개선을 주 내용으로 한다. 정부가 발표한 이번 대책 중 일부 내용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무엇보다 인화학교 사건이 발생한지 무려 6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여론의 질타에 의해 대책을 급조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며, 그동안 정부가 주요 성폭력 사건 때마다 되풀이 하여 보인 태도와 같이, 이번에도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대책만을 강구하여 근시안적이고 체계성 없는 대책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번 대책은 그 실효성이 매우 의심된다. 정부는 최근 더욱 심각하게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이상 전시용 대책이 아닌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2. 정부는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 대신,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해당 사건유형에만 적용될 수 있는 근시안적이고 자극적인 대책만을 급조하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최근 몇몇 아동성폭력 사건들이 대거 사회이슈화 되자 오로지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책만을 발표하고 관련 법률들을 개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된 친고죄의 경우, 이미 학계 및 여성단체들은 몇 십 년 전부터 전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친고죄 규정의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왔으나, 정부는 최근 아동성폭력 범죄가 크게 사회이슈가 되자 이에 대해서만 친고죄를 폐지하였을 뿐이다. 이번 대책에서도 다른 성폭력 유형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이 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만 친고죄를 폐지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는데, 정부는 이와 같이 근시안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성폭력 범죄 전체에 대한 친고죄 폐지를 추진하여야 한다. 그동안 성폭력 범죄 전체에 대한 친고죄 폐지는 기본법인 형법 개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는데, 현재 법무부에서 50여년만의 전면적인 형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반드시 성폭력 범죄 전체에 대한 친고죄 폐지가 논의되어야 한다.
3. 2011. 9. 15.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는 19세 이상의 사람이 19세 미만의 장애 아동·청소년을 간음하거나 추행을 하면 어떠한 강제력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3년 이상의 징역(간음),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추행)으로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었다(제11조의 2). 이는 장애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범죄자를 처벌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규정이지만, 위 규정에 의하면 장애 아동·청소년이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 성관계를 가지더라도 그 상대방이 처벌될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안이다.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법률개정안이 성폭력 관련 단체나 장애인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고 국회를 통과하였다는 것이며, 이번 정부 대책에는 위 개정내용이 소개되지도 않을 정도로 성폭력 관련 대책이 체계성 없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이다.
4. 정부와 국회가 성폭력 사건이 이슈화될 때마다 특별법들을 마구 쏟아내며 각종 대책들을 도입하는 바람에, 우리나라는 소위 ‘화학적 거세’라고 불리는 약물치료법, 전자발찌 감시제도, 성폭력 범죄자 신상공개(온라인 공개, 우편 고지제도 포함), 성폭력 범죄자 취업제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엄청나게 가중된 법정형 등의 제도들을 모두 갖추게 되어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이 강력한 처벌 위주의 성폭력 대책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법률전문가들조차도 성폭력 법체계 및 개정내용을 숙지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결과가 발생하였다. 강력한 처벌 위주의 성폭력 대책은 성폭력의 문제를 범죄자 개인의 문제로만 치환하여 실제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실효성을 가지지 못한다. 정부는 더 이상 여론에 편승한 전시용 대책을 새롭게 마련하는 대신, 형법을 비롯한 성폭력 관련 특별법들을 전면적으로 정비하여 체계적인 성폭력 법체계가 구축하여야 하며, 성범죄자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교육시스템 구축, 실효성 있는 피해자 보호제도 마련 및 예산지원, 성폭력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지역안전망 구축과 같은 근본적인 성폭력 예방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또다시 문제된 성폭력 범죄자들에 대한 형량과 관련해서도,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진 법정형을 또다시 높이는 근시안적인 대응보다는 최근 대법원에서 마련한 양형 기준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양형 실무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특히 아직까지 추상적인 기준만 마련되어 있어 재판부의 개인적인 가치관이 잘못 개입될 가능성이 있는 집행유예 기준에 대해서는 각계의 의견을 모아 더욱 기준을 구체화하여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집행유예가 남발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5.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는 일부 범죄자에 대한 일벌백계식의 강력한 처벌 또는 정부의 깜짝 종합대책 마련만으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그 문제가 심각하고 복잡하다. 정부는 반성폭력 단체들마저 찬성하지 않는 성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및 감시 강화와 같은 근시안적인 대책들을 양산하기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마련해온 성폭력 대책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하고, 성폭력 관련 법제를 체계적으로 재정비하여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성폭력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교육시스템과 같이 그 효과가 즉시 확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성폭력 대책에 대해 예산과 인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경찰, 검찰, 법원, 법무부, 여성부 등 관련 기관이 각각의 대책과 예산을 남발하여 피해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 아니라 위 관계 기관들 및 학계, 시민단체로 구성된 성폭력종합대책특별위원회(가칭)와 같은 상설기구를 마련해서 성폭력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경찰 단계에서부터 판결 확정에 이르기까지 2차 피해 등으로부터 일관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 가해자들에 대해서도 보다 전문적인 재범방지책이 도입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구와 그것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사법부와 학계 등의 협조 하에 성폭력 피해 및 처벌사례, 외국의 관련 제도들을 폭넓게 연구하여 가해자와 피해자 특성, 범행발생 특성, 양형실태, 유무죄실태 등이 지속적으로 연구되도록 해야 하고, 그 내용을 근거로 2차 피해 방지대책,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피해자 보호의 조화방안, 친족성폭력의 경우 아동에 대한 지속적인 보호방안 등이 체계적으로 마련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6. 정부가 발표한 대책과 같이 이번 인화학교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성폭력 관련 대책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접근으로는 또 다른 유형의 성폭력 사건이 이슈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없을 것이며, 정부는 또 다시 새로운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근시안적인 행태를 중단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성폭력 대책을 마련하는 방안을 즉각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50여년 만에 기회가 찾아 온 성폭력 관련 법제의 기본법인 형법 개정 내용에 이와 같은 논의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며, 친고죄 규정 역시 폐지되어야 한다. 끝.
2011. 10. 10.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김 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