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가해자 특정할 수 없어도 국가배상책임 인정 판결, 당연하다
[논 평]
가해자 특정할 수 없어도 국가배상책임 인정 판결, 당연하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경찰의 가해행위로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였다. 그러나 정작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고소를 하여도 지금껏 가해 경찰이 기소된 사례가 없었다. 대개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거나 경찰의 행위로 인한 것임을 확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맞은 사람은 있으나 때린 사람은 없고, 책임지는 기관이나 사람은 하나도 없는 기이한 상황이 계속되어 왔다.
국가배상청구를 하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2008년 6월경 민변 회원으로 인권침해감시 활동을 하던 이준형 변호사가 성명불상 전경의 방패에 가격당하여 두개골 골절상 등을 입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변호사의 국가배상청구에 대해 법원은 지난 12일 피해자의 부상이 전경의 가격행위로 인한 것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서울중앙지법 2008가단307630).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다친 사람은 있는데 아무도 책임질 자가 없다는 것이다. 혹시나 있을 지 모르는 경찰의 시민에 대한 불법행위를 감시하려고 나선 변호사를 그러면 누가 구타했다는 것인가, 당시 상황을 적극적으로 살펴 보지 않으려는 법원의 소극적인 판결에 매우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가해 경찰을 특정할 수 없더라도 연행 도중 경찰들 사이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에 대해서 국가가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판결을 확정하였다(대법원2010다 35732). 1심은 가해자가 경찰이라는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패소판결을 내렸지만, 항소심은 당시 상황에서는 ‘성명불상 경찰관에 의해 상해를 입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면서 배상책임을 인정했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국가배상 제도의 취지가 개별공무원의 위법행위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이런 판결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촛불집회 당시의 급박한 상황은 도외시한채 가해자의 특정과 구체적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을 모두 원고에게 요구하면서 결과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면제해주어 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법원이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장이라는 본분에 충실해지기를 기대한다.
2010년 8월 1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 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