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불온서적 헌법소원 제기 군법무관 파면취소소송 기각판결을 비판하며

2010-04-26 167

[논 평]


불온서적 헌법소원 제기 군법무관 파면취소소송 기각판결을 비판하며


 


2010. 4. 23. 서울행정법원(제3부 부장판사 김종필 판사 진현섭 판사 최영각)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들이 파면을 포함한 징계처분의 위법부당함을 다툰 이 사건 청구를 사실상 모두 기각하였다. 이번 판결은 국방부의 시대착오적이고 위헌적인 조치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서 인권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스스로 그 책임을 방기하고, 관련 법리 및 사실관계조차 왜곡한 것으로 심히 유감이다. 지난 2009. 4. 5. 헌법소원을 했다는 이유로 파면 등의 징계처분을 받은 군법무관들은 국방부의 시대착오적 보복조치와 기본권과 적법절차의 원리의 침해를 바로 잡아줄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행정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원고들은 국방부장관의 불온서적 금서조치 및 헌법소원에 대한 징계 강행으로 인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기본권과 헌법질서가 사법부에 의해 온전히 회복될 수 있으리라 신뢰하였다. 그러나 담당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하여 기각 결정으로 답함으로써 군법무관 또한 기본권의 주체이며 초헌법적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할 수 없다는 헌법적 원칙을 배척하였다.


 


1. 행정법원은 “불온서적 지시는 국방부 내부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쳐 국군 최고책임자의 지시로 관계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불온서적과 관련한 지시는 금서조치 후 사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기간, 근거, 심의위원, 심의기준 등이 모두 불명하여 적법한 심의를 거쳐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 과정에서 드러났을 뿐 아니라, 행정재판 과정에서도 국방부와 군이 이 점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채 일방적 주장으로 일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아무런 근거 없이 이를 사실로 인정하였다.


 


2. 재판부는 또, “지시와 관련된 행정소송을 구한 뒤 그 재판에서 위헌제청을 신청하거나, 지휘계통을 통해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다”며 “법률에 정통한 전문가인 군법무관이 선택한 이번 방법은 적절치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판단은 이 사건 법원이 행정소송의 가능성 여부를 법리적으로 면밀히 검토하지도 않았음은 물론 이미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시정조치를 명백히 거부한 점에 비추어 지휘계통을 통한 건의가 군 내부에서 합리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을 완전히 간과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헌법상 보장된 재판청구권의 행사인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이 명령불복종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헌법과 기본권의 행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결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사건 재판부가 사실관계에 대한 충분한 심리와 기본권의 보장이라는 법원의 역할에 대해 깊은 고심을 하였는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3. 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모든 국가 통치권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것이고, 헌법재판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국가작용의 분야는 있을 수 없다는 헌법 원리를 부인한 것이다. 또한 판결문에서 “위헌 여부에 대해 예단을 강하게 가지고 비위행위를 주도했고, 언론을 통해 군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점 등을 보면 비행 정도가 결코 가볍지 않다”며 파면이 적법하다고 설시함으로써 사실상 군을 헌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이 아닌 치외법권 지역으로 설정하였다. 특히 언론을 통해 군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은 애초에 징계사유로 인정할 사실관계가 전혀 없다는 점에 비추어 명백한 오판이다. 특히 “군 장교는 군대조직의 특성상 그 지시․명령권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고 함부로 거부할 수 없다”며 “만약 지시․명령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면 그 자체로 법령 및 군 지휘관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하게 하고 불복 모양을 띠게 될 여지가 있는 만큼 이를 고려해 기본권 침해 정도와 긴박성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부분은 정당한 지휘권 행사의 기초는 당연히 합헌성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도외시한 판결이다.


 


4.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퇴행을 걱정하는 현 시국에서 행정법원이 이렇듯 군을 사실상 헌법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설정하고, 군법무관의 기본권 행사를 명령불복종으로 판단한 것은 심리의 충실성 면에서나 헌법과 법률의 해석의 면에서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급심의 판단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직 남아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헌재는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더 이상 결정을 미루어서는 아니될 것이며, 모든 공권력 행사와 법 해석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원칙에 비추어 올바른 판단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한다.


 


 


2010년 4월 2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백 승 헌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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