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의 합법노조전환추진지침 관련
민변 성명 발표해
2006. 3. 23. 행정자치부는 각 시군구에 “불법단체 합법노조 전환(자진탈퇴) 추진지침”이라는 지침을 시달하였다.
우리 모임은 위 지침이 민주적 노사 관계를 저해하고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망령을 되살아나게 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자 한다.
첫째, 민주적 노사관계의 출발점은 노사 쌍방이 상대방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노사관계의 안정은 상호 실증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주장을 제시하고 충분한 대화와 설득, 즉 실질적인 단체교섭을 통해 비로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부가 입안하였던 공무원노조특별법은 단체행동권 금지는 물론이고, 단결권·단체교섭권마저 심각하게 제한하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제도조차 그 기능을 제대로 다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기본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수 있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서는 조정신청권 및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권 등의 법적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특별법상의 노조로서의 신고를 거부하고 법외노조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39만여 가입 대상 공무원 중 14만 여명이 가입하고 있는 거대 노조가 법외 노조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 노사관계의 제도적 기반이 얼마나 부실한가, 그리고 정부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얼마나 소홀히 하였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공무원 노사관계의 사용자이자 동시에 공무원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장기적으로 법외노조가 제도권 내부로 들어와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의 불완전성을 시정하는 한편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노력을 선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위 ‘합법노조 전환 추진지침’은 뜬금없이 공무원노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나아가 ‘합법노조 전환’, ‘자진탈퇴’를 추진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노사관계의 일방이 상대방과의 대화와 그에 대한 설득의 노력을 스스로 포기해버리겠다는 통고와 다름 없다는 점에서, 그것도 사회의 통합적 노사관계를 주창해 온 정부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다.
더구나, 학설·판례는 법외노조라고 하더라도 단결권 및 제한적이나마 단체교섭권을 보장받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법외노조 가입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할 것이다. 곧 행정자치부가 ‘합법노조 추진, 자진탈퇴 명령과 이를 어길 시 징계를 하겠다’는 것은, 사용자가 ‘근로자가 노동조합에 가입 또는 가입하려고 하였거나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그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제1호)’,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제81조 제4호)’에 해당할 수 있고, 결국에는 부당노동행위 시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정부는 위 추진지침에서 공무원 개별 면담·가정방문·전화 등을 통해 본인 및 가족을 설득할 것이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징계까지 하겠다고 언명하고 있는바, 이 또한 인권침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노동조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어떤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인지, 특정 노동조합을 탈퇴할 것인지 등등은 근로자들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성질의 것이며, 근본적으로 양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공무원노조를 탈퇴하도록 가족까지 설득하겠다는 발상은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독재 시절의 시각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 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지난 2004년 공무원노조의 파업 당시 행정자치부는 ‘특별교부금 지급 중단’ 운운하며 자치단체장들의 고유 권한인 징계 재량권까지 제약하고 ‘지방자치제’의 골간을 침해하는 과도한 지침을 남발한 바 있고, 이에 대해 일부 자치단체장들이 권한쟁의 심판까지 청구하면서 반발한 바 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의 권한 남용 행위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지방공무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법외노조와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는 임용권자이자 사용자인 자치단체장들의 소관이다. 말 그대로 노사 자치 영역의 문제인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무슨 근거로 사용자들의 개별권한마저 침해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정부에게 14만 여명의 공무원노동자가 법외노조의 길마저 선택하며 반대하고 있는 공무원노조특별법의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진정한 민주적 노사관계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정부는 ‘합법노조 전환(자진탈퇴) 추진지침’을 과감하게 걷어치우고 공무원노조의 실체를 인정하라. 그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OECD 등 국제기구로부터 노동탄압감시국으로 지적받는 불명예를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는 첩경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