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 2. 이영미 작성
1961년생. 79학번(학번이 좀 이르지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 대학과 대학원 모두 재수도 안 하고 쭈욱 올라가서 논문도 깨끗하게 4학기만에 쓰고 석사학위를 받은 1985년 이후로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 후 박사코스를 아예 안 들어갔고요(우선 돈이 없기도 했고, 그때는 마당극과 민중가요 등을 따라다니며 전국을 누비느라 너무도 바빴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권 부근에 왔다갔다 하기는 했고, 이후에도 문화운동이란 데에 오랫동안 몸담기도 했습니다만, 학생운동 할 때에도 남들이 정세분석 하고 있을 때에 저는 “왜 요즘은 비장한 단조의 노래가 유행할까?”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고, 문화운동 쪽에서 일할 때에는 조직이나 정책 일은 안 하고(잘 못하니까) 아예 작품 열심히 보고 글 쓰는 일만 하리라 마음 먹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하면서 평론과 연구를 하며 살아야겠다고 작심한 터라, 이미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 평론을 써서 글 팔아 먹고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24살짜리 평론가들을 만나기가 정말 힘들지만, 그때 저는 겁없이 뭣도 모르면서 글을 써갈기기 시작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글 쓰고 연구하는 것을 업으로삼고있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런 전업 연구자로서 박사학위 없는 몇 안되는 연구자(그냥 평론가도 아니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교수직에 미련이 없다면 연구자로서 학위란 그다지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단 우리나라의 연구 지원제도가 학위와 교수직에 매어있어 대학 먹여살리기에 급급하다는 게 흠이지만요.
글 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노래(대중가요, 민중가요)에 대한 평론, 그리고 연극평론을 처음부터 같이 했고요. 그시절에 노래에 대한 본격적인 평론이 거의 없던 때라 사람들에게는 노래평론가로 먼저 인식이 되었죠. 그러다가 90년 즈음부터는 연극평론 쪽에 더 열을 올렸고요(90년대 중반 일주일에 5편의 연극을 보고, 한 달에 10개의 평론을 쓰기도 했습니다. 거의 미쳤다고 할 수 있지요.) 대중가요에 대해서는 평론은 좀 적게 쓰고 대신 대중가요사 강의 같은 것을 하면서 생각을 축적했고, 그것이 1998년 [한국대중가요사]로 나오게 됩니다.(지금은 민속원에서 재출간한 책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글을 많이 썼으므로, 책도 많습니다. 1991년 첫 평론집을 내기 시작하여, 이제는 몇 권인지 세지도 않게 됐습니다. 아마 공저를 빼고 단독저서로만 세면 9권, 공저,편저서까지 치면 열댓권 될 겁니다. 평론도 쓰고 연구도 할 수 있는데 굳이 ‘쯩’ 때문에 돈 들이고 시간 들여 학위 따는 것이 좀 자존심이 상해서 30대 초반에 박사를 안 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속으로 “마흔 될 때까지 저서 한 열 권 정도 내면 되지, 뭐.” 이렇게 맘먹었는데, 그건 그럭저럭 해낸 것 같습니다.(질은 잘 모르겠지만.)
학교의 학과 체계에 억매이지 않으니, 남들이 안 하는 연구를 하게 됩니다. 민중가요나 마당극에 대한 연구는 80년대 내내 ‘필드’를 누비면서 얻어낸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였고요. 한국대중가요사라는 처녀지에 깃발 꽂은 것도, 그리고 앞으로 해야겠다고 맘 먹고 있는 한국방송드라마사에 깃발 꽂을 일도 다 그런 일입니다. 남 안하는 연구를 하는 것은, 참으로 불안하고 힘든 일이기는 합니다. 맨땅에 헤딩이지요.(그래도 저는 학교 체계에 매어있지 않아서 남의 시선에 눈치를 보지는 않는 게 가장 큰 복이지요) 하지만 혼자 뛰어서 일등 하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구소에 소속되어 아이들 가르치고 연구하는 직장일을 했습니다. 12년 있고 보니, 대학교수란 게 연구를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연구소 소속이니 학과 소속보다는 대우가 좀 낮은 계약직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계속 재계약하는 철밥통인데, 그냥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나왔습니다. 연구도 건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고, 지금 머릿속에 구상하는 연구들을 환갑 이전에 끝내려면 전속력으로 매진해야 하는데, 황금 같은 내 40대를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5년 말에 사표 던지고 1년 넘게 백수생활을 했는데, 생각보다 무지하게 바쁘네요. 일의 절대량은 늘었는데 하지만 희한하게 스트레스는 덜 받아요.
제 관심사는 한국의 대중예술입니다. 흔히 대중예술 연구자와 평론가들이, 대중예술안에서허접한 것 빼고, 나름대로 ‘예술성’이란 것을성취한 ‘작가’에 관심을쏟는데, 저는 그 허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왜 당시에 그토록 인기를 끌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더 큽니다. 즉 이는 작가가 허접해서가 아니라, 수용자들이 그 허접한 것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게제 생각이고요, 그 허접한 것 속에서도 시대적 변화가 있는 것은 수용자의 욕구와 사유구조가 시대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가요사도 그런 관점에서 서술되었고요.
취미는 음식 만드는 겁니다. 1992년 경기도 이천 시골마을로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 텃밭도 조금 일구고, 김장독도 묻고, 심지어 장도 담그고 맥주도 만들어 먹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저의 엄청난 식욕 이야기를 써서 책도 한 권 냈습니다.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 황금가지, 2006) 만약 제 머릿속의 지식창출능력이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것이 되는 시기가 되면(분명 이런 날이 오겠지요), 그러면 저는 제가 최대한 즐겁게 할 수 있는 육체노동을 하면서 먹고살려고 생각합니다. 된장 만들어 팔고, 맛있는 고깃국 된장국 끓여주고, 빈대떡 맛있게 부쳐주면서 돈 벌어 먹고살면 참 좋겠습니다. 다 낡은 지식을 지위와권위로 포장해서 사기치고 사는 짓은 안 하고 살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든 이천에놀러오십시오.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구운(숯불도 아니고 장작에 구운) 돼지고기와 땅속에서 갓 꺼낸 김치에 집에서 만든 맥주 한 잔 드시면 참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