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차] 이재용 1심 판결로 살펴보는 디지털증거에 대한 증거능력 판단 법리 ①

2024-06-28 84

 

이재용 1심 판결로 살펴보는 디지털증거에 대한 증거능력 판단 법리 ①

 

  1. 들어가며

 

지난 2월5일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거래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 1심에서 ‘전부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2. 5. 선고 2020고합718, 920(병합) 판결}. 많은 언론들은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해 ‘범죄 증명 없어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1심 판결문 내용을 검토해보면 재판부가 수십개의 공소사실 전부에 대해 자신 있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검찰이 제출한 주요 디지털증거자료에 대해 모두 증거능력을 부정하였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 재판부가 위 판결에서 설시한 디지털증거의 증거능력 관련 법리의 적용은 다른 형사재판에서 쉽게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왜 유독 재벌회장들에 대한 재판에서, 특히 삼성그룹 총수에 대한 재판에서 매우 엄격한 법리적 기준을 적용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적용된 법리와 내용을 다른 사건들에서도 활용해보자는 취지에서 ‘이재용 1심 판결문의 디지털증거 판단 부분’을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겠습니다.

 

  1. 공장 바닥에 은닉해 놓았던 서버 등에 대한 증거능력 부정 판단 부분

 

가. 2019. 5. 7.자 삼성바이오로직스(약칭 ‘로직스’) 18TB 백업 서버 등 관련 경위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5. 7. 로직스, 피고인 김태한(2008.경부터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신사업팀 부사장 바이오사업 추진 업무 담당, 2011. 4. 22.부터 로직스 대표이사) 등에 대한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위반 및 증거인멸 혐의사실로 압수·수색영장 발부

 

2) 검찰 2019. 5. 7. 로직스 영장 집행하면서, 로직스 3공장 회의실과 1공장 통신실의 엑세스 플로어 아래에서 메인 및 백업 서버, 외장하드 2대, 업무용 PC26대 등(이하 통틀어 ‘이 사건 로직스 서버 등’) 발견, 저장매체 자체 봉인 후 반출

 

3) ㉠ 검찰 2019. 5. 16.부터 대검 디지털수사과에서 18TB 백업 서버에 대한 복제본 생성 시작, 2019. 5. 17. 백업 서버의 HDD 12개 중 2개(B-3, B-4)에 대하여 복제본 생성 후 원본 동일성 확인. ㉡ 2019. 5. 20. File Server Storage(NETGEAR NAS)에서 12개 HDD 분리하고 이 HDD 장착한 뒤 디렉토리와 폴더 살펴보고, ㉢ 2019. 5. 24. 사본 HDD에서 재경팀 폴더로 보이는 3개를 2개 HDD로 나누어 복사한 뒤 DRM 해제(복호화) 작업 진행. ㉣ 2019. 5. 27. 위 3개 폴더에 대한 DRM 해제 작업 완료, 같은 날 복제본에서 추가로 1개 폴더(finance)를 HDD 복사 후 DRM 해제 작업. 로직스 변호인 각 과정 참여

 

4) 검찰 2019. 5. 22. 로직스측에 이 사건 로직서 서버 등은 증거은닉죄의 증거물에 해당하므로 저장매채 자체와 그 안에 저장된 전자정보 일체를 압수하겠다고 통지, 그 대신 저장매체에 저장된 파일 내용을 확인할 기회를 제공하여, 2019. 5. 28., 2019. 5. 29. 로직스측 변호인에게 DRM 해제 절차가 완료된 재경팀 3개 폴더 내 전자정보에 대한 열람 기회 제공

 

5) 검찰 2019. 5. 28. 사본 HDD에서 폴더 8개를 1개 HDD로 복사한 뒤 DRM해제 작업 진행, 2019. 6. 4., 2019. 6. 10. 변호인으로 하여금 폴더 내 9개의 데이터 내용 확인할 수 있는 기회 제공

 

6) 검찰 2019. 5. 30. 변호인에게 압수물건명을 “전자정보(삼성바이오로직스 파일 백업서버 폴더(FT_ms, FT_fs, A-pjt))”로 작성한 압수목록교부서를 교부, 2019. 6. 11. 변호인에게 “전자정보(삼성바이오로직스 18TB_폴더 ‘Finance’, ‘Biz_Innovation’, ‘EAI-Project’, ‘Finanace-Management’, ‘Finance-OM’, ‘I-PJT’, ‘IR’, ‘Legal_Compliance’, ‘Planning’)”로 작성한 압수목록교부서를 교부. 변호인은 이를 받고 2019. 5. 30.자 현장조사확인서 및 2019. 6. 11. 현장조사확인서 각 서명

 

7) 검찰 2019. 6. 24. 위 18TB 백업서버의 복제본에 있는 파일 전부(약 778만개)를 5개로 나누어 압수, ‘압수물건명’에 “1.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일서버 Backup 원본파일(DRM해제 전 ‘A-PJT’ 등 39개 폴더) 논리이미지, 2.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일서버 Backup 원본파일(DRM해제 전 ‘Innovation’ 등 6개 폴더) 논리이미지, 3.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일서버 Backup 원본파일(DRM해제 전 ‘Manufacturing-Collabo’ 등 13개 폴더) 논리이미지, 4.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일서버 Backup 원본파일(DRM해제 전 ‘Quality’ 등 13개 폴더) 논리이미지, 5. 삼성바이오로직스 파일서버 Backup 원본파일(DRM해제 전 최상위폴더의 4개파일) 논리이미지”라고 기재된 압수목록 변호인에게 교부

 

나. 서울중앙지방법원(1심)의 판단

 

1) 정보저장매체 자체가 증거은닉의 증거물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저장된 전자정보 일체가 증거은닉의 증거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증거은닉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은닉하였을 때 성립하는 범죄로, 은닉 정보저장매체 내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전자정보’만 형사소송법 제106조 제1항 ‘피고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해당하고,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과 무관한 증거를 은닉한 것을 보여주는 데 그치는 은닉 정보저장매체 내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과 무관한 전자정보’는 ‘피고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2) 검찰은 로직스 측 변호인에게 DRM 해제작업 참관 기회 및 압수된 전자정보 폴더 내 파일들을 확인할 기회만을 부여하였을 뿐, 검찰이 임의로 특정한 12개 폴더 내 파일 일체를 별도의 선별 절차 없이 모두 압수하였다. … 전자정보의 선별은 정보저장매체에서 유관정보와 무관정보 중 유관정보만을 가려내어 압수대상을 특정하는 절차로서, 적어도 전자정보의 내용이나 그 내용에 대한 단서를 바탕으로 유관정보를 골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적법한 선별 절차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 전자정보 압수 시 선별된 유관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는 폐기․삭제하여야 함에도 아무런 선별 없이 취득한 위 전자정보를 압수하여 계속 보유하고 있어, 검찰이 당초부터 선별절차를 예정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로직스 백업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은 유관정보를 선별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포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위법하다고 봄이 상당하다.

 

3) 또한 이 사건 로직스 영장 집행과정에서 저장매체의 복제 및 DRM 해제 과정에만 변호인의 참여가 허용되었을 뿐, 피의자와 변호인 측은 전자정보의 탐색 및 선별과정에는 참여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 형사소송법이 정한 피압수자 측의 참여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4) 법원은 영장 집행에 관하여 범죄혐의사실과 관련 있는 전자정보의 탐색·복제·출력이 완료된 때에는 지체 없이 영장 기재 범죄혐의사실과 관련이 없는 나머지 전자정보에 대해 삭제·폐기 또는 피압수자 등에게 반환할 것을 정할 수 있고, 그 경우 수사기관이 범죄혐의사실과 관련 있는 정보를 선별하여 압수한 후에도 그와 관련이 없는 나머지 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지 아니한 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면, 이는 압수의 대상이 되는 전자정보의 범위를 넘어서는 전자정보를 영장 없이 압수하여 취득한 것이어서 위법하다(대법원 2022. 1. 14.자 2021모1586 결정 참조) … 기업경영이나 임직원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자료 다수가 이 사건 로직스 영장에 의하여 압수·수색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검찰은 위와 같은 자료를 삭제·폐기하거나 반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형사재판 변론에서 활용가능한 내용

 

(ⅰ) 증거은닉행위의 대상이 정보저장매체(PC HDD/SSD, USB, 서버, 테블릿 등)인 경우, 그 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자료는 매체 자체가 아니라 매체 안에 저장되어 있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전자정보’에 한정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당 정보저장매체가 증거은닉이라는 범죄행위에 제공된 물건으로 몰수의 대상이 되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수사기관이 구체적으로 압수할 수 있는 대상은 그 매체 안에 저장되어 있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전자정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압수목록(전자정보상세목록) 교부절차, 선별절차, 무관정보 삭제·폐기절차, 참여권보장 등이 모두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ⅱ) 선별·압수절차의 구체적 의미와 관련하여, ‘적어도 전자정보의 내용이나 그 내용에 대한 단서를 바탕으로 유관정보를 골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적법한 선별 절차’라고 설시하였습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의 선별절차가 ‘무관정보를 배제시키고 유관정보만을 골라내는 과정’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이는 선별절차 자체를 거치지 않은 중대한 위법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ⅲ) 공장 바닥에 은닉되어 있던 서버 대부분의 파일들은 일종의 암호화가 되어 있었고, 이를 복호화하는 절차에는 변호인이 참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복호화 이후 다시 선별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고, 여기에 피압수자측의 참여권도 보장되어야 하는데 이행되지 않은 것이 절차위법 사유로 지적되었습니다. 즉, 이미징·복호화·선별절차 이 세 단계에 참여권이 모두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ⅳ) 무관정보의 삭제·폐기 의무 불이행 ‘상태’ 자체를 증거능력을 판단하는 주요한 절차위법 사유 중의 하나로 삼았습니다. 대법원 2022. 1. 14.자 2021모1586 결정 이후,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주요사건에서 이와 같이 무관정보 삭제·폐기 의무 불이행을 증거능력을 불인정하는 절차위법 사유로 설시한 거의 첫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2편에 계속)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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